옛 대우전자 매각 관련

대우조선, 한국GM 이어

정부가 6일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에서 첫 패소 판정을 받으면서 99년 대우사태로 인한 악재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11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긴급 분쟁대응단을 구성해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ISD 사건은 2000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당시 금융기관들로부터 대우전자(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사명 변경)의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캠코는 보유채권 중 일부를 출자전환해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은 3차례나 무산됐고 2010년 4월 채권단은 이란 가전회사인 엔텍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엔텍합은 이란 다야니 가문에 속한 회사다.

당시 캠코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분 47%를 보유하고 있었다. 엔텍합과 채권단은 당초 5778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엔텍합이 제출한 투자확약서(LOC)는 필요자금 대비 1545억원이 부족했다.

또한 엔텍합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해외 거래처들이 최소 5년간 거래를 유지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거래처가 5년 거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하자 엔텍합은 이를 빌미로 매각대금의 감액을 요구했다. 캠코는 매매가격을 깎아줄 수 없다며 매각에 반대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엔텍합은 계약금 578억원을 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다야니 가문은 계약금 몰취에 따른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가 이란이 맺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 및 공평한 대우 원칙 등을 위반해 인수계약을 해지했다고 주장하며 약 935억원(보증금 반환, 이자포함)을 요구했다. 국제 중재판정부는 다야니측의 손을 들어주면 정부가 730억원 상당을 다야니측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국제 중재판정부는 캠코가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는 점과, 당시 이란이 경제제재를 받고 있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서 한화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이행보증금을 몰취했다가 법원에서 패소한 사건과 유사하다. 산업은행과 캠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보증금 약 1260억원을 한화에 돌려줬다. 법원은 계약이 한화에 불리하게 돼 있었고 실사 기회도 갖지 못했다고 판단, 이행보증금 전부를 돌려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매각하지 못하면서 투입된 공적자금은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7조1000억원이다. 2017년 공적자금 투입으로 대우조선의 위기를 넘기자마자 찾아온 것은 올해 한국GM 사태다. 한국GM의 전신은 대우자동차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는 GM과 채권단이 공동으로 GM대우라는 신설법인을 만든 후 매각됐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발목이 잡혀있다. 미국 GM본사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하자 고용과 지역경제 등을 고려해 한국GM에 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미 GM이 36억달러(3조88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지만 대부분 대출 형식이고 우리는 지분 투자 방식이다.

향후 10년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지 않기로 했지만 10년 이후 다시 공적자금 투입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또한 대우조선해양 역시 정부가 매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조선업이 어려워지면 또다시 공적자금이 들어갈 수 있다. 산은은 대우건설 매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반건설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건설업계의 불황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건설회사들의 영업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우 관련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큰 리스크로 남게 된다"며 "하루빨리 민간에 매각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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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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