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테크놀로지리뷰

독일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조업강국이 된 이유를 특유의 직업훈련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아우스빌둥'(Ausbildung)으로 불리는 독일의 직업훈련은 직업학교에서의 이론교육과 기업현장에서의 실습교육으로 이루어진 이원화 시스템이다. 아우스빌둥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산업현장에 바로 적용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실무와 이론을 연계시키도록 이끈다.

MIT테크놀로지리뷰(MTR)가 최신호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자동화의 시대에도 독일의 아우스빌둥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살펴 눈길을 끌었다. MTR은 독일 뮌헨시 외곽 지멘스 본사를 찾았다. 이곳에는 10대 예비 노동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교육의 초점은 제조업 자동화 시대에도 독일의 경제기적을 이어가는 데 맞춰져 있다.

한 교실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자동차 공학기술자로 훈련받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한 주 자동화 생산라인을 본뜬 소형 작업모델을 프로그래밍했다. 센서와 컨베이어벨트, 도구 등으로 인간의 조작없이 일하는 생산라인을 완성하는 과제였다. 이들은 놀랄 만큼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며 작업 내용을 토론했다. 미국의 경쟁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16세로,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지멘스에 들어왔다. 수업료를 내는 대신 훈련공들은 학습을 하면서도 소정의 월급을 받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그같은 질과 양의 기계전자공학 프로그램을 이수하려면, 1년에 한 학생당 2만5000~4만4000달러를 내야 한다.

지멘스 훈련은 독일 아우스빌둥 실습교육의 일부다. 이같은 직업교육을 통해 독일은 한 해 약 50만명의 젊은이들을 전 세계 일터로 내보낸다. 독일은 지난해 사상 최고액인 1조2790억유로(약 1658조원)의 수출을 기록했다. 노동단가가 매우 높지만 그같은 신기록을 달성했다. 아우스빌둥이 그같은 성공의 원천이라는 지적이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정치인 모두 독일식 직업교육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우스빌둥 옹호자들은 많은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기술 격차'(skill gap)를 지적한다. 기업들은 관련 전문기술을 가진 노동자를 적시에 적소에 배치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술 격차를 없애고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2억달러를 들여 미국의 직업훈련 과정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15년 비슷한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독일식 직업교육 시스템이 인공지능(AI)과 로봇 시대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AI가 오랜 기간 지지부진했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독일식 직업교육은 조만간 구식이 될 기술로 노동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상황을 부를 수 있다는 것.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인 에릭 하누셰크는 "독일은 현재와 미래 수십년 간 다양한 직업에 적합한 노동자를 준비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지 못한 것은 AI와 로봇의 등장으로 경제가 변화하는 데 따라 필요한 유연한 노동자들"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직업교육의 기원인 아우스빌둥은 수세기 전 강력한 길드가 출현해 교역을 장악했던 시기에 등장했다. 독일의 일부 목수들은 지금도 여전히 초기 시대 전통을 이어간다. 장인 목수가 돼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전통 복장을 하고 3년하고 하루 동안 직업 여행을 떠난다.

오늘날 독일의 젊은이들은 대학을 가거나 아우스빌둥을 선택하면서 경력을 쌓아나간다. 양자를 선택하는 때는 대략 10살이 되면서다. 직업훈련을 택한 이들은 16살 즈음에 일과 훈련을 병행한다. 대략 3년 동안 수습 자격으로 지멘스와 같은 고용주로부터 훈련과 월급을 받는다. 견습들은 교실이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실수한다 해도 경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같은 프로그램을 돌리는 데엔 만만치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기업들은 1명의 견습생을 교육하는 데 연간 평균 1만8000유로(약 2300만원)를 쓴다.

지멘스 국제훈련 담당 컨설턴트인 프리드리히 바이서는 "기업효용 차원에서 대부분의 견습들이 생산적으로 배운다. 그리고 즉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일학습 병행' 헤드인 토마스 로이브너는 "견습 대부분은 훗날 훈련을 제공한 기업에 고용된다"고 말했다. 수습훈련을 통해 적합한 기술을 습득한 노동자들은 실제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기업에 대한 충성심도 높다. 지멘스 아시아 지점에서 독일식 직업훈련을 받은 직원들의 이직률은 연 3%에 불과하다. 반면 직업훈련 없이 지멘스에 입사한 직원들의 이직률은 그보다 3배 높다. 하누셰크 교수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근 독일의 대학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을 확률은 직업교육을 받은 동년배에 비해 12.9%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문제는 중년 이후다. 노동자들이 40대에 접어들면 실업률이 오르고 한 직업으로 평생 돈을 벌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우스빌둥을 선택한 40대 노동자들 중 일부는 기술이 낙후되면서 노동집단에 계속 남아 있기 어려워진다. 반면 대학을 선택한 이들은 일반 교양 수업을 받았고 분석적 사고가 가능하며 문제 해결력이 높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AI가 주도하는 경제시대에 더 가치 있는 노동자로 대접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마디로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학자인 더크 크뤼거와 크리슈나 쿠마에 따르면 1960년대와 70년대 독일의 1인당 GDP 성장률은 미국을 앞섰다. 이때는 기술적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진 시기였다. 반면 정보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 기업들은 독일보다 신속하게 새로운 기술을 채택했다. 이 시기 미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은 독일을 앞섰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교수인 크뤼거는 "점진적 변화의 시기에는 한 가지 직업교육을 받는 게 유용한 선택이었다. 직업 하나로 평생을 먹고살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기술적 변화가 급진적인 시기에는 한 가지 일에 고정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받은 노동자들이 더 나은 대안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뮌헨대 경제학 교수인 루트거 뵈스만도 "독일 직업교육 시스템은 다가올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며 "독일 젊은이들이 점차 직업교육보다 대학을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독일의 직업교육도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뵈스만 교수는 "특히 AI와 로봇의 시대에 어떤 종류의 직업교육이든 사람들은 특정 직업에 한정된 기술만 갖고는 인생 전반을 영위하기 힘들다"며 "독일의 직업교육에서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식 직업교육이 쓸모 없어졌다고 하기엔 이르다. MIT 정치학 교수인 캐슬린 셀런은 "아우스빌둥은 수세기에 걸친 천지개벽의 기술변화에도 살아남은 저력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AI의 세기를 맞아 아우스빌둥에도 새롭게 혼합된 접근법이 채택되고 있다. 셀런 교수는 이를 '엘리트 듀얼 스터디 경로'라고 불렀다. 학석사 학위와 전통적 직업교육 이수장을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다.

지멘스 기계전자공학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젊은이 중 한 명인 아우렐은 "직업훈련이 끝나면 대학에 가거나 신재생에너지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2세 여성인 레나는 대학 과정을 이수하면서도 직업훈련을 통해 훈련받으면서 소정의 월급을 받고 있다. 레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다"며 "직업훈련을 마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이 패트릭도 대학을 선택했지만 대학에서도 직업교육을 통해 훈련과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지금 다른 훈련생들을 가르친다.
대학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젊은이들은 두 가지 전통 모두에서 혜택을 받고 있다. 이들은 지멘스와 같은 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지멘스는 시류의 변화에 맞게 훈련과정을 업데이트할 능력이 되는 거대기업이다. 지멘스의 바이서 컨설턴트는 "올해말까지 AI 과정을 포함한 새로운 커리큘럼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직업교육만 받는 이들에게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셀런 교수는 "독일 시스템은 지속적인 직업훈련, 즉 중년 이후의 재교육과 관련해서는 성과가 좋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재교육 비용이 워낙 비싼 데다 기업과 중년 노동자 모두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 재교육과 관련한 정부지출도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크뤼거 교수는 "전통적 관점에서 16세 때 무언가를 배우면 향후 40년 동안에 직업을 바꾸지 않고도 먹고 살았고 60세가 되면 은퇴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은퇴연령이 70세 이상으로 올라가고 AI가 점차 많은 산업 부문을 헤집어 놓는 상황에서 그같은 시나리오는 무효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우스빌둥 시스템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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