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지정학 컨설팅그룹 '지오폴리티컬퓨처스' 분석

중국 덩샤오핑이 1978년 12월 개혁개방 정책을 당의 노선으로 채택한 지 40년이 지났다. 대부분 지표에서 중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경제 기적은 '초자연적'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8억명의 중국인이 빈곤층에서 벗어났다. 국제경제 측면에서도 중국은 '없어서는 안되는'(indispensable) 나라가 됐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성장은 균질하게, 지속가능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중국의 성장을 북돋았던 '따기 쉬운 과일'(low-hanging fruit)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대부분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근본적 문제점을 안게 됐다. 소비주도 경제로 전환을 꾀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 소비자층이 아직 경제적 생산성 수준을 지지하기에 충분할 만큼 부유하지 않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중국의 리밸런싱은 보다 시급한 과제가 됐다.


국제지정학 컨설팅그룹 '지오폴리티컬퓨처스'(GPF)는 12일 "중국을 부유하게 만든 경제모델이 점차 유통기한을 맞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값싼 노동력과 투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풀어야 하는 문제를 오히려 꼬이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리밸런싱을 해야 하는 이유

중국의 경제성장은 크게 세 가지 요인에 힘입었다. 값싼 노동력과 투자 집중, 한 차례 허용되는 토지와 자원의 사유화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표준적인 성장과정이다. 특히 값싼 노동력으로 산업 생산물의 가격을 낮추면서 교역상대국의 부를 손쉽게 자국으로 이전해왔다.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건 두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나라 밖 경제상황에 달렸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역상대국 소비의 주기적인 침체, 보호무역주의 압력에 취약하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 경제가 흔들린다면, 중국 경제도 마찬가지로 흔들린다. 2008년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2009년 2월 중국의 수출은 전년 대비 26% 급락했다. 그해 1월 중국 정부는 글로벌 경기침체 때문에 해외에 거주하는 2000만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실직한 것으로 추산했다.

둘째 중국이 부유해질수록 수출주도 모델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인 삶의 수준이 상승하면서 중국 수출품의 경쟁력은 낮아진다. 중국에 들어와 있는 해외 기업들도 임금 상승 탓에 주변에 있는 대체국가를 찾게 됐다. 중국은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수출품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이 문제점을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이미 수십년 전 그같은 시행착오를 겪고 선진국에 오른 수많은 나라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진국 함정'이다. 게다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의 이웃나라들이 중국처럼 제조업과 수출 인프라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중국의 도전과제는 버거워지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투자 덕분에 중국은 2008년 전 세계적인 소비 침체 위기에서도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용이 대체적으로 안정됐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9년말 4조위안(5860억달러)의 긴급자금을 투입했고, 이 덕분에 서구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중국 내 값싼 신용은 넘쳐났지만, 이 신용이 생산성 있는 부문에 투입되지 못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는 비효율성과 수익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값싼 신용에 힘입어 부동산 가격이 부풀어올랐고 기업과 은행, 지방정부는 지속불가능한 부채에 시달리게 됐다. GPF는 "중국 경제는 여러 개의 시한폭탄을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제 중국은 시간을 다투는 피말리는 경주를 하고 있다. 서구 경제가 침체기에 돌입하기 전에, 중국 내 부채문제와 자산 거품이 위기로 발전하기 전에 저비용 수출투자 모델에서 소비와 고부가가지 제조업, 서비스 등이 주축이 된 경제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점차 고령화되고 줄어드는 노동력은 그같은 리밸런싱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선진국들이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주의 압력을 높이면서 리밸런싱은 더욱 시급해지고 있다. 중국이 성공적인 리밸런싱으로 미국 수출에 덜 의존하게 되면 중국이 자국시장에 접근하는 걸 막으려는 미국의 조치들은 무뎌질 수 있다. 그리고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두텁고 부유한 소비자층에 더욱 의지할수록 중국이 미국에 반격할 수 있는 무기는 더욱 예리해진다.

엇갈리는 결론들

전반적으로 중국의 리밸런싱 과정은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조치들이 상충하는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대해진 수출 부문에 과도한 대출을 못하도록 억제하는 개혁조치들은 내수 소비에 악영향을 줘 실업률을 높인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적 불안, 그에 따른 권력투쟁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따라서 중국은 구조개혁과 현상유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역과 관련한 리밸런싱에서 중국은 지속적으로 수출 의존성을 줄여가며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06년 38%였지만, 지난해 20% 정도로 낮아졌다. 물론 이런 흐름이 수출 의존도를 줄이려는 구조개혁의 결과만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전 세계적 소비침체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단적으로 2006년 중국 GDP 성장률은 12.7%였지만 지난해 6.9%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중국의 성장 둔화세가 서구 나라들보다 가파르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 당국이 원하는 '왕성한 소비지출'이 아니라 투자에서 비롯된 결과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1년까지 중국의 GDP 대비 투자 비중은 37%에서 47%로 상승했다. 선진국 대부분은 약 20% 수준이다. GDP 대비 소비 비중은 2000년 63%에서 2011년 48%로 줄었다가 다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물론 투자가 과도한 역할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10년 동안 거센 투자붐이 일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의 투자는 생산적이고 수익성 나는 부문에 투입되고 있었다.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중국의 수출품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급감하면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은 노동자의 실업, 기업의 도산을 막기 위해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달면 무조건 자금을 투입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거대한 부양책을 쓰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의 '신용강도'(경제성장 1단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채의 양)는 금융위기 직전 1.3대 1이었지만 위기 발발 1년 뒤 4.8대 1로 크게 늘었다. 달리 말하면 중국 내 투자는 더 이상 같은 양의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게 됐다. 2010년 수출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GDP 대비 투자 비중은 2012년 안정됐다.

하지만 중국 내 값싼 신용에의 중독은 완화되지 않았다. 중국 금융시스템 내 과도한 유동성은 효율성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2016년 신용강도는 5배 가까이 올랐다. 이전 최고치인 2009년 수치를 뛰어넘었다.

중국이 그동안 보여줬던 신속한 성장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경제가 커지면 고속 성장률은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심각한 침체가 사회적 불안을 일으킬까 두려워 최근까지도 계속 부양을 위한 가속페달을 밟아왔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의 총부채는 GDP 대비 170%에서 300%로 늘었다.

중국이 수출보다 투자에 더 의존하면서 지금까지는 무역전쟁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중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또는 중국 내 금융위기 발발 위험성이 높아진다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비롯된 수출전선의 타격은 중국 경제 전반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GPF는 "과도한 투자가 부른 넘쳐나는 값싼 신용이 '일시적 완화제'에서 장기 복용하는 스테로이드로 변하면서 수익 저하는 물론 신용과 부동산 거품,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 심각한 공해까지 모든 종류의 문제를 키우게 됐다"며 "이런 문제가 주는 시스템적 리스크는 중국이 시진핑 주석에게 과도한 권한을 몰아줘 연임이 가능토록 만든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8월 14일자 "중국 리밸런싱, 내륙과 해안의 격차 해소에 달렸다"에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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