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환경으로 피해확산 위험 커 … 산재사망사고 40%,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

#1. 지난 4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 누출로 20대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숨지고 1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2014년 3월에도 같은 사업장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살포돼 50대 협력업체 노동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에는 황산이 누출돼 작업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1명이 얼굴과 목 등에 1∼2도 화상을 입었다. 화성사업장에서는 2013년 불산 누출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다. 같은 해 5월에도 배관철거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3명이 배관 밖으로 흘러나온 잔류 불산에 노출돼 다쳤다.

#2. 올해 8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금호석유화학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고무 제조 설비가 크게 파손됐다. 또 폭발 충격으로 지름 2미터의 철판이 공장 바로 옆 도로로 날아가 배관이 부서지고, 사고 현장을 지나던 화물차는 바퀴에 전선이 감겨 사고가 날 뻔했다.

전날에도 같은 공단의 또 다른 공장에서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열교환기를 청소하기 위해 투입된 150톤 크기의 유압 크레인이 가스관 밸브와 부딪히면서 발생했다. 사고가 나자 방독면 등 안전장구를 착용한 현장 노동자가 밸브를 잠그는 등 안전조치를 해 추가 가스누출은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있던 작업자 4명이 가스를 흡입해 병원치료를 받았다.

#3. 2012년 경북 구미시 소재 휴브글로벌 공장에서는 탱크로리에 실려 있던 화학물질을 저장소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가스는 불산가스로 불리는 맹독성 물질이었다. 누출된 불산가스는 인근 마을 전체로 퍼졌다. 이날 사고로 사망자 5명, 사상자 18명 등 23명의 인명 피해와 554여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화학물질 관련 사고(화학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와 관계없이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다. 화학사고는 공장 노동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피해가 미치는 등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형사고 위험이 높은 노후화된 화학관련 산업시설이 곳곳에 있어 국민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화재, 폭발·파열, 화학물질 누출·접촉 등 화학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793명에 달했다. 이는 한 해 평균 79.3명이 화학사고로 사망하는 것이다. 화학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같은 기간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1만827명)의 7.3%에 달한다.

이에 대해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화학사고는 인근 주민이나 환경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적인 재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예방이 중요하다"면서 "예견할 수 있고, 막아야만 하고,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학사고 감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맞춤형 대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국내 화학물질 관련 설비 중 8.9%가 설치 30년 이상 된 노후 설비다. 안전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화학제품, 의약품, 코크스 및 석유정제품제조업 등 3대 화학업종(2017년 말 현재) 사업장만 보더라도 3만6503곳 중 1352곳(3.7%)이 가동 30년 이상 된 노후설비다. 20년 이상 30년 미만 사업장도 1871곳이나 되고 10~19년 미만 사업장은 9420곳에 달한다. 반면 설치한 지 10년 미만의 설비를 갖춘 사업장은 2만3860곳이다.

업종별로는 화학제품이 3만3652곳 중 1142곳이 30년 이상 설비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또 20~29년 1735곳, 10~19년 8813곳, 10년 미만 2만1962곳이다. 의약품은 2455곳 중 30년 이상 사업장이 167곳이었다. 20~29년 100곳, 10~19년 504곳, 10년 미만 1684곳이다. 또 코크스는 396곳 중 43곳의 시설이 30년 이상됐다. 20~29년 36곳, 10~19년 103곳, 10년 미만 214곳이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최근에는 지진의 안전지대로 인식되던 한반도에도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면서 "지진 다발지역 내 노후 화학설비 보유빈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은 만큼 대형 화학사고의 발생위험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설계사용연수를 초과한 화학설비 중 자체적으로 비파괴 감사 등을 통해 연장사용이 가능하다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설비는 즉시 교체 등으로 잠재위험을 제거해 나갈 것"이라면서 "노후 화학설비에 대한 기술지도와 개선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정부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영세사업장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50인 미만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에서 화학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특성상 설비 교체 등 투자 여력이 없는 것이 많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화학사고로 인한 사망자 793명 가운데 307명(38.7%)이 소규모 사업장 사고로 사망했다.

양원백 숭실사이버대 산업안전공학과 교수는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 수가 많고 취급물질이 많아 구조적으로 발생확률 자체가 높다"면서 "실질적으로 시화·반월국가산단 등 소규모 사업장이 많고 화학물질을 다량으로 취급하고 있는 지역이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규모 사업장은 설비관리와 투자여력이 부족해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못하고 설비가 고장나야 보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업주 본인이 생산 설비보전 영업 노무 등 모든 사업영역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만큼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노력과 함께 사업장 노동자와 경영진의 의지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울산 화학산업단지 소재 코오롱인터스트리 울산공장의 경우 노사가 손을 잡고 16년째 무재해 없는 공장을 이어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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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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