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어촌 작은학교에 활력소

평생교육개념으로 자리잡아야

"한겨울에 운동장에서 생존수영 교육이 가능하냐고요?" "가능합니다.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8일 전남 함평군 월야초등학교에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이날 아침 기온은 6~7도로 제법 쌀쌀했다. 잠시 후 인근 대동향교초등학교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월야초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이 운동장 구석에 설치한 조립식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영장 안은 한여름 날씨다. 조립식 수영장에 에어돔을 씌워 실내온도를 30도까지 올렸다. 수영장 물 온도는 23도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샤워시설과 남녀 탈의실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인솔교사들은 "차를 타고 대도시 수영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 시간도 절약되고 무엇보다 가깝고 우리학교 학생들만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문제 등이 해결돼 좋다"고 말했다.


월야초교는 전남교육청이 운영하는 '학교로 찾아가는 이동식 생존수영 교실' 함평군 거점학교다. 1925년 개교한 함평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학교다. 전교생은 병설유치원 12명 포함 124명이다. 10월 15일부터 운동장에 조립식 수영장을 설치하고 한 달 동안 시범운영했다. 관내 초등학교 아이들 수가 적다보니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생존수영 교육에 참여했다.

함평군 거점학교 생존수영을 총괄 지도한 김성주 (사)대한문화체육교육협회 강사는 "올해 시범사업을 통해 조립식 수영장은 불안하고 시설도 떨어진다는 편견을 깼다"며 "한겨울에도 안전하게 생존수영 교육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영장 물 온도를 30도까지 올려달라는 일부 학교측의 요구는 오히려 생존수영 교육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하면 물에서 떠올라요"│물속에서 숨을 참고 떠오르기 훈련을 하는 함평 대동향교초교 5학년 정희진 학생.


이는 교육부가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위기상황에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는 '현장형 생존수영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점과 배치되기 때문이라는 것. 강이나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구조자가 올 때까지 차가운 수온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에 따라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문광호 월야초등학교 교장은 "생존수영 거점학교를 운영하면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지킬 수 있는 안전한 교육훈련을 하게 돼 다행"이라며 "학생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지 않도록 다양한 대응법을 개발해 안전교육에 활용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평소 안전교육도 중요= 수영장에서 생존수영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위기상황에 잘 대처한다는 보장은 없다.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의 질과 교육시간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여기에 교사들의 평소 안전교육도 아이들의 생명을 좌우한다. 우선 교사들이 생존수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위기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해진 시간을 물에서 보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초등학교 3~4학년을 '생존수영 의무교육'으로 지정했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1~6학년까지 전 학년으로 생존수영을 확대했다. 따라서 각 시도교육청별로는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고 있다.

하지만, 생존수영 강사를 배출하는 전문기관에서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생존수영 방안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운영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생명을 얼마나 구할 수 있을지, 교육방법은 맞는지, 시간은 충분한지 등 교육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정확한 교육 매뉴얼을 개발·보급하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생존수영 교육은 강사역량에 따라 모두 다르고 각자도생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영장 강사들에게만 맡길 경우 효율성은 더욱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사고 현장은 수영장이 아니라, 강과 호수 바다이기 때문이다. 높은 파도와 조류, 강물이 흐르는 방향이나 물의 속도 등을 계산한 훈련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불필요한 간섭도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청과 학교에서 주문하는 '구명조끼 착용' 강요다. 정책을 수립하는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이나 학교장 중에는 생존수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남 함평 월야초등학교를 찾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생존수영 교육을 받고 있다.


◆ 생존수영 등급제 도입 검토해야= 전국 대부분 학교는 생존수영으로 총 10시간짜리 운영계획표를 짠다. 2시간은 이론, 나머지는 수영장 실습이다. 물에서 걷기, 누워뜨기, 엎드려 뜨기 등 스스로 물에 뜨는 훈련을 한다. 대략 50%정도가 혼자 물에 뜨고, 나머지는 잡아줘야 뜨거나 허우적거리다 30초도 못 버티고 가라앉는다는 게 수영강사들의 증언이다. '생존수영 등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선진국의 경우 학생들의 재능에 따라 '자가 생존법→영법교육→ 타인구조'까지 이어지는 교육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타인구조가 가능한 단계까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도록 한 학교도 있다.

스쿠버의 경우 14세부터 자격증을 따면 입수가 가능해 등급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킨스쿠버 강사들은 "어린이 청소년 '안전요원 제도'를 통해 익사자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미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등은 수영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수영장 수영강사들에게만 아이들을 맡기는 것도 문제다. 강이나 호수, 바다의 상황을 잘 모르는 수영강사들보다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스쿠버강사들이 지도하는 생존수영 효과성이 높다는 게 수중전문가와 체육교사들의 주장이다.

실제 내일신문과 (사)대한문화체육교육협회는 7~9월 전국 농산어촌과 관심지역 생존수영 교육장을 찾아다니며 생존수영 효율성을 조사했다. 전남지역 한 초등학교 체육담당 교사는 "한 해 10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이 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응력이 생길 때쯤 생존수영 교육이 끝난다"며 "학교에서 가까운 곳(거점학교)에 지속적인 생존훈련을 할 수 있는 종합시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생존수영 교육 확대에 나섰다. 2016년 143개 교육지원청(35만명)에서, 2017년은 177개 교육지원청(80만명)으로 확대했다. 올해는 학생 110만명이 생존수영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올해는 이동식 수영장을 통해 수영장이 없는 농산어촌지역 학생들에게 우선 적용하도록 시범사업에 나섰다.

최근 5년 동안 익사(溺死)로 목숨을 잃은 국민은 3133명이나 된다. 연 평균 620여명이 넘는 숫자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익사자 숫자에 잡히지 않았다. 선박사고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존수영을 평생교육 개념으로 설정하고 전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성주 강사는 "정부나 학교는 교육시설(장비, 수영장 크기 등)에만 관심이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교육훈련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이다"며 "선진국들이 추진하는 생존수영 교육 매뉴얼을 한국 지형과 상황에 맞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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