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미경 KOICA 이사장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대한민국. 그러나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의 대표기관인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얽히면서 오명으로 얼룩졌고,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조직은 침체됐고, 7개월 동안이나 이사장 자리도 공석이었다. 지난해 11월말 12대 이사장에 취임한 이미경 이사장. 주로 대사를 지낸 전문외교관 출신들이 도맡아오던 자리에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출신이 그것도 여성이 이사장에 취임한 것은 27년 KOICA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양성평등, 인권, 평화 등의 가치를 앞세운 이미경 이사장 취임 1년이 KOICA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그리고 ODA 최일선에 있으면서 느낀 한국형 ODA의 문제점과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취임하신지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와 소회가 어떠신지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KOICA 가족들과 함께 오로지 혁신을 위해 뛰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2016년은 KOICA에게 굉장히 아픈 한해였습니다. 모두가 의기소침해 있었고 7개월이나 이사장은 공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 전에 제가 취임하면서 '위기가 기회'라는 각오로 열심히 뛰어왔습니다. 당시 내걸었던 기치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국제개발협력 기본법 정신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인권증진, 성평등, 평화증진 등이 법에 나와 있는 기본 정신입니다. 또 KOICA가 채택하고 있는 기본 정신이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이라는 '3P'입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포용적인 사회,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빈곤탈피, 성평등, 평화를 위해서도 3P는 필수적입니다.

■ 문재인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정책과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나라 국제개발협력 중 유상협력은 기획재정부가 주관기관이며 집행기관은 한국수출입은행입니다. 반면 무상협력은 외교부가 주관하며 KOICA는 그 집행기관으로 우리나라 무상원조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국제개발협력사업 전반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KOICA를 이끄는 사람이 다른 기관이 내세우는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재인정부 출범을 계기로 KOICA에서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ODA 정책과 제도 개선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KOICA는 '3P'를 조직의 미션으로 채택했습니다. 3P는 우리 정부 외교정책의 핵심가치이자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기본 정신이기도 합니다. KOICA는 3P에 기반을 둔 비전을 세우고 슬로건을 변경했으며 기관경영체계를 수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KOICA는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개발도상국에 지원할 수 있는 교육(SDG4), 보건의료(SDG3), 물과 위생(SDG6), 기아와 농업(SDG2) 분야에 대한 전략적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평등(SDG5), 평화·인권·민주주의(SDG16), 기후변화대응(SDG13)에도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미경 KOICA 이사장이 2018년 9월 나탈리 카넴 유엔 인구기금(FPA) 총재(왼쪽), 훔질레 믈람보-응쿠카 유엔여성기구(UN Women) 대표 등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KOICA 제공


■ 성평등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인 화두입니다.

KOICA가 성평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지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평등은 여성 역량을 개발함으로써 보편적인 개발협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KOICA는 지난 9월 뉴욕에서 SDG5 이행을 위한 글로벌 플래폼을 구축하고자 유엔여성기구(UN Women), 유엔 인구기금(UNFPA)과 3자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평등 실현을 위한 기본 프레임워크 수립 및 관련 사업을 발굴해 추진할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성평등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개발도상국 발전을 함께 이끌어 가는데 있어 여성에 대한 지원을 했을 때 더 큰 성과와 발전을 이뤘다는 많은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평등'이라는 목표를 잡은 것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평화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것과 ODA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국제사회에서는 '평화 없이 지속가능한 발전이 없다'는 명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서울 ODA 국제회의에 참석한 패트릭 베런 세계은행 취약·분쟁·폭력(FCV) 아시아 고문은 "분쟁이슈는 현재 인도주의적 지원 수요의 80%를 차지하며 매년 GDP 성장의 2%를 감소시키고 있다"며 평화를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행정역량, 투명성, 법에 의한 통치 등 건전한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발도상국의 지속적인 경제사회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KOICA는 이런 점을 반영해 2019년 상반기 '부산민주주의포럼', '평창평화포럼' 참여를 통해 SDG16과 관련된 정책적 담론을 형성하고 교육 및 워크숍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분쟁 후속조치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소득격차 △계층갈등 해소 등 예방조치에 ODA가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지역별 맞춤형 ODA를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요.

많은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개발경험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도 토양이 어떤지 봐야 잘 자랄 수 있을지 없을지 예측하는 것처럼 우리의 경험을 그대로 전해줄 수는 없습니다.

중남미 국가는 상대적으로 아시아·아프리카보다 고중소득국(1인당 국민총소득(GNI) 기준 4126~1만2745달러인 개발도상국)이 많습니다. 페루는 이미 고중소득국에 올라섰고, 파라과이도 곧 고중소득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콜롬비아는 OECD에 가입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중남미 경제상황이 비교적 좋다 보니 산업화사회로 들어섰고 이곳에서는 보건사업, 농촌개발사업보다는 고도화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이에 반해 아프리카는 농촌사업에 많은 비중을 두게 될 것입니다. 경제성장과 빈곤퇴치의 기본조건이라 할 수 있는 교육 및 보건의료에 힘쓸 것입니다. 특히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30 지속가능개발의제'에 맞춰 국제사회 개발방향에 부합하는 사업을 발굴해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친밀한 아시아는 최우선 중점지원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KOICA는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연계된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해 나가고자 하는 정책방향에 힘을 보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ODA사업은 중국, 일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평화, 인권, 민주주의와 관련된 가치들을 복합적으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 DAC 회원국에 비해 시민사회와 전략적 파트너십이나 장기적인 예산지원 합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2년에 이어 2017년에도 OECD DAC 동료검토를 받았습니다. DAC은 첫 번째 동료검토 이후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의 개발협력 전반에 대한 개선노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여전히 시민사회와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프레임워크 마련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ODA 분야에서 국민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당장 내년부터 시민사회의 ODA 사업 참여 확대를 위해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소통 강화 △국민의 이해·지지 증진을 위한 정보공개·접점 확대 △민간의 ODA 참여기회 다각화를 위한 민간협력사업 발굴 등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 KOICA는 정부차원에서 추진 중인 시민사회와의 협력강화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 ODA 사업수행 관련 기관이 2013년 44개에서 2015년 64개로 증가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더욱 복잡해지는 문제점도 지적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분절화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시며 대안은 무엇입니까.

ODA 분절화에 따른 비효율성 및 원조효과성 저해 문제는 계속 지적받고 있는 사안입니다. 우리나라 ODA 사업은 30년 가까이 분절화 된 집행구조로 인해 중복현상, 연계성 및 사후관리 부족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42개 정부기관이 1200여개 ODA 사업에 참여해 무상원조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6%를 집행하는 반면, 대한민국 대표 무상원조 전문기관인 KOICA는 54%밖에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무상원조 통합과 체계화 요구는 KOICA의 밥그릇 지키기가 아닙니다. 물론 다양한 국민들과 민간영역, 그리고 공공영역에서의 ODA 사업 참여 욕구는 나쁜 현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ODA는 그 나라와의 외교관계, 역사, 경제·통상, 외국 원조기관의 ODA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파트너 국가의 필요에 기반해 전략적 지향성을 갖춘 상태로 이뤄져야 합니다. KOICA가 '무상원조 플랫폼'을 지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기업 등 민간부문과 협업을 획기적으로 늘려나갈 구상과 계획이 있는지요.

제가 작년 11월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혁신위원회를 구성한 것입니다. 내·외부 인원으로 구성된 혁신위원회가 올해 2월에 발표한 'KOICA 혁신 로드맵'의 10대 중점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시민사회, 기업, 학계 등 모든 파트너와의 협업 강화입니다. 위원회는 5년 내 민간 파트너십 예산을 2배로 확대하라고 제언했습니다. 도전적이지만 꼭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동료검토에서도 '한국의 민간부문 파트너십은 초기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때마침 정부차원에서도 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긴밀하고 체계적인 협력이 기대됩니다.

■ ODA를 경험한 청년 인재들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ODA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가 양성이 관건이라고 보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KOICA는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인재발굴·인재양성(경력사다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경력사다리'는 KOICA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국제기구, NGO에 진출할 수 있게 돕는 제도입니다. 1단계로 청년들이 KOICA 봉사단원, ODA 영프로페셔널(YP : 청년인턴) 파견을 통해 경력을 쌓게 한 뒤 2단계에서 초급전문가에 해당하는 봉사단 프로그램 총괄자인 월드프렌즈코리아 코디네이터 또는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다자협력전문가(KMCO)로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글로벌 인재들이 국내외 공공분야로 진출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번에 선발된 정규직 공채 직원 37명 중 32명이 KOICA 봉사단, YP 등 '경력사다리' 출신이었습니다. 86.1%가 KOICA가 제공한 근무기회를 통해 개발협력 분야의 경력을 쌓고 이를 토대로 KOICA의 정직원으로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KOICA는 글로벌 인재 중 적극적 구직희망자를 위해 'KOICA 개발협력 커리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센터에서 KOICA 봉사단을 대상으로 1443회, 청년인턴을 대상으로 1225회의 컨설팅을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봉사단의 3년간 평균 취업률은 48.8%로 상당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 끝으로 내년에 특히 관심 갖고 집중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취임 후 혁신과정에서 내부 반발을 우려했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외부적으로는 KOICA가 일을 잘 하고 중요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일도 잘 하고 소통도 잘해서 좋은 뉴스들이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년에는 KOICA 본연의 사업에 대한 홍보를 많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농촌사업이 얼마나 지역에 도움이 됐고, 보건사업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교통사업이 교통체증을 얼마나 줄였는지, 비용대비 효과가 컸는지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남방정책 연계 ODA 등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고, 개도국과 한국에 모두 도움이 되는 사업 성과들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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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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