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은 아세안(ASEAN)과 인도이다. 특히 베트남에서 박항서 열풍이 불면서 아세안 열기는 더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지난 10일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신봉길 주 인도대사는 이전에 비해 '쌍방향 소통'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가 지난 2014년 총리에 당선된 후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지만 한국은 미국과 중국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도는 지난 5월 표준교과서 세계사에 한국 관련 내용을 대폭 보강하는 등 성의를 다했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 인도 국빈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우호협력관계는 한 차원 높아졌다. 신 대사는 "인도는 한국을 일본, 독일과 함께 경제개발을 함께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나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에 열린 필리핀 비사야스 주립대학 톨로사 캠퍼스의 본관동 및 기숙사 개원식 (우측 첫번째 신명섭 코이카 필리핀 사무소장, 네번째 한동만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 여섯번째 에드가르도 툴린 비사야스 주립대 총장) 사진=코이카 제공


◆사람 중심이라는 공통 가치 추구 = 인도가 문 대통령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말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신남방정책을 처음 선보인 계기는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순방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순방에서 4강 중심의 외교 틀을 다변화해 세계 경제회복의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와 아세안을 상대로 전면적 협력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신남방정책은 사람 중심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국과 아세안이 미래 공동체, 즉 사람(People), 평화(Peace), 상생번영(Prosperity)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비전 아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전면적 협력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신남방정책이 과거 아세안·인도 관련 정책에 비해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라는 뚜렷한 철학적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차별성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주변 4강 위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외교 지평과 경제 영토를 넓히겠다고 밝혀 온 문 대통령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인도와 아세안 정상들은 지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이 지역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우군 역할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지난 7월 인도 국빈방문과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방문한 것까지 포함하면 인도 및 아세안 지역 방문이 다섯 번째다. 문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많이 방문한 지역이다.


◆아세안 중국 투자액 초과 =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 이후 아세안의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남방정책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06년 618억달러(약 66조원)에 그쳤던 한-아세안 교역 규모는 2016년 1188억달러(약 127조원)로 2배 가까이 늘며 2위를 기록했다. 아세안의 향후 잠재력은 더 크다. 경제통합을 이뤄낸 아세안 전체 인구는 6억4000만명으로 세계 3위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또한 2조8000억달러(약 2997조원)에 달한다.

2014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동남아에 대한 투자액은 중국에 대한 투자액을 초과한 상태다. 2017년 3/4분기까지 535억달러(약 57조원)가 투자됐다. 같은 시기 진출 기업은 1만3600여 개에 이른다. 2017년 3/4분기까지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5200여개로 한국 기업은 아세안 진출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도 2050개나 된다.

정부는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김현철 위원장(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이를 총괄하고 있다. 신남방정책과 연계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익을 위한 정부 경제·외교안보정책에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ODA 사업을 활용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ODA 사업에서 국익을 배제할 수는 없다.

무상원조 사업이 인도적 정신에 입각하고는 있지만 우리의 경제적 지원이 수혜국 발전뿐 아니라 우리나라 번영으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도 상생과 번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ODA예산 39.0% 아시아에 편성 = 정부가 편성한 ODA 예산은 3조4922억원이다. 올해 ODA 예산보다 4440억원(14.6%) 늘어난 것이다. 지역별로 보면 전체 예산의 39.0%를 아시아에, 20.6%를 아프리카에 투입한다.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데 따른 것으로, 내년도 전체 ODA 예산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보다 각각 2%포인트, 2.3%포인트 늘어난다.

분야별로는 교통(14.5%), 보건(12.6%), 교육(10.2%)사업에 집중한다. 전체적으로는 총 42개 기관이 1472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이 575건(39.1%)이다.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은 정부의 신남방정책 추진에 맞춰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마중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쳐왔다. 아세안 국가에 대한 EDCF의 지원 규모(올해 4월말 기준)는 전체 승인액 가운데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베트남에 대한 지원액은 총 2조9991억원으로 전체의 18.9%에 달한다. 지원 건수도 67건으로 가장 많다.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에 대한 EDCF 지원 규모 역시 각각 8481억원, 7470억원으로 전체 수원국 가운데 4·6위를 차지한다. 올해 수출입은행은 필리핀을 대상으로 세부 신항만 건설 사업에 EDCF 1억7300만달러를 지원하는 차관공여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사업은 EDCF가 지원하는 최초의 항만 건설 사업이다. EDCF 기금이 제공되면 필리핀의 항만 인프라가 확충돼 해상운송 여건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물류비용 절감 등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필리핀에 대한 EDCF 지원규모는 승인 기준 총 20개 사업에 1조76억원(9억5100만달러)이다. 이는 전체 EDCF 승인액 중 6.3%다. 승인 규모로 보면 전체 54개 수원국 가운데 3위에 달한다.

◆코이카 신남방국가 협력 사업 확대 = 무상원조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도 내년에는 신남방정책 연계 사업을 집중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이미경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좋은 사업을 발굴하고 잘 수행해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며 "내년에는 2021년도 사업을 발굴하게 되는데 아시아에 중점을 두려 하고, 아시아의 경우 신남방정책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코이카는 신남방국가 대상 신규 국별 협력사업 발굴을 대폭 확대해 매년 110%씩 증대하는 한편 장애인 정책 개발 등 아세안 대상 특별연수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 참여 가능한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포용적 개발 환경'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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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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