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초중고 82개 뮤지컬 동아리 구슬땀 … 노래하고 춤추며 비폭력 몸으로 익혀

"급식과 쉬는 시간을 절대 없앨 수 없다!"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겨울한파를 녹였다. 쉬는 시간을 먹어서 없애버리겠다는 마술선생님과 이를 지키려는 아이들의 콩당콩당 튀는 이야기를 뮤지컬로 엮었다.

12일 서울 강남 도심공항터미널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활동 성과보고회에서 경남 남해초교 학생들이 뮤지컬 공연을 펼치고 있다.


12일 경남 남해초등학교 김민지 외 13명이 "쉬는 시간이여, 영원하라!"는 주제로 무대 위에 섰다. 뮤지컬 제목부터가 톡톡 튄다. 아이들은 급식시간과 쉬는 시간을 사수하자며 목청을 높인다. 마술선생은 어릴 적 학교폭력 피해자다. 과거 피해의식 때문에 쉬는 시간을 먹어 없애려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발상을 뮤지컬로 승화시켰다. 쉬는 시간의 문제를 학교폭력 예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시나리오가 절묘하다.

이 뮤지컬은 남해초등학교 뮤지컬부 '남해상상극장' 작품으로,학교폭력예방 동아리 활동 평가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김주영 교장과 오석주 연극강사가 아이들과 소통하면 만들어낸 걸작이다.


이날 서울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3층 소노펠리체컨벤션에서 '2018 찾아가는 학교폭력예방활동 지원사업' 평가회가 열렸다. 전국 초중고 뮤지컬 동아리 회원 350여명과 교사들이 참석해 지난 1년을 회상하며 즐겼다.

서울시 노원구 노일중학교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학교폭력 예방 영상이 나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노일중학교는 '샤르망 노일뮤지컬' 동아리를 운영하며 폭력예방활동을 펼쳤다. 샤르망 회장을 맡아 뮤지컬 조직을 이끌어가는 홍채은(노일중 2학년)양은 "시나라오, 연기, 촬영 모든 게 힘들었다. 하지만 학교생활이 재밌고 친구들과 관계가 좋아졌다"며 "전 학년으로 뮤지컬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혜원 양도 "학교생활 모든 게 재미있고 설레는 느낌이 남는다. 뮤지컬을 통한 학교폭력 예방정책에 참여할 수 있어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은혜 부총리

지난해 교육부는 학교폭력예방정책 일환으로 문화예술을 접목시켰다. 작전은 대성공. 전국 초중고 뮤지컬 동아리 82개가 1년 동안 구슬땀을 흘리며 다양한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렸다. 뮤지컬 동아리 공동 이름은 '소행동(소소한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동아리)'으로 정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뮤지컬 핵심 요소인 연기 음악 안무 연출 시나리오는 전문 문화예술 멘토의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 뮤지컬을 통해 비폭력 메시지를 전파시켜 나갔다. 친구의 아픔을 들어주고 공감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은 행복한 친구' '아띠 아리아' '샤르망 노일뮤지컬' '지금 이 순간' '가래울' '우리안의 연결고리' 등 동아리 이름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과정에서 학생 1520명, 지도교사 30여명, 멘토 58명, 뮤지컬 전문가,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호흡했다. 경남중학교 A 교사는 "자신의 생각을 뮤지컬로 승화시켰다는 자신감을 넘어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며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들 스스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전우홍 국장


◆규제보다 마음 문 열어주는 예술 프로그램= 교육부는 지난해 단속과 규제에서 벗어나 현장으로 찾아가는 활동 중심의 예방활동에 집중했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인 '함께하는 뮤지컬'과 '푸른가족 캠페인'을 통해 아이들의 변화를 추구했다. 가족이 참여하는 캠페인은 정부, 기업,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학교폭력 예방 활동으로 이어졌고 시너지 효과도 증대했다. '푸른가족 캠페인'은 학교폭력 예방을 주제로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비폭력 문화 확산을 위한 동아리 조직이다. 지난해 전국 92개 동아리, 학생 2579명과 가족 125명이 참여했다. 지도교사 163명도 가족캠페인에 함께하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지난해 교육부는 이러한 가족 캠페인 활동을 벌인 동아리 174개를 지원했다. '함께하는 뮤지컬' 동아리 지도교사는 "평소 학교생활이 힘들었던 학생은 함께하는 뮤지컬 활동으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기적인 친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시간이 됐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뮤지컬과 가족 캠페인은 (재)푸른나무 청예단이 총괄 지휘를 맡아 이끌었다. 청예단은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 학폭예방 청소년 NGO단체다. 학교폭력 예방 뮤지컬과 푸른가족 캠페인은 교육부를 중심으로 울산교육청 KB국민은행 청예단 열린의사회 KBS미디어 등이 지원했다.


◆처벌보다 치유, 화해와 반성 중심 정책 = 교육부는 규제와 처벌중심에서 예방 중심 정책에 초점을 맞춰나간다는 전략이다. 최근 학교폭력에 대한 제도와 조직 정비에 나섰다. 큰 사건은 '엄중'하게 다루고, 가벼운 사건은 반성과 사과의 관점에서 '관용'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정책숙려단·시민참여단 의견을 수렴해 시스템을 개선한다고 밝혔다. 경미한 사안은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는 교육지원청으로 넘긴다. 법리해석 중심으로 이뤄진 사안해결보다 치유와 사과, 반성과 화해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적 관점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현행 학교폭력 대응절차는 교사의 교육적 해결의지를 약화시키고 학교의 교육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는 가·피해자 간 소송을 부추기는 등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교사 및 학부모, 국민의 비판과 제안을 수용한 것"이라며 학폭 개선안을 설명했다.

이날 평가회에 유은혜 사회부총리가 참여해 아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학교폭력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 정부와 민간단체가 손잡고 노력하자"며 "아이들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유 부총리는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웃으면 같이 웃고 아이들이 울상이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 부총리는 참석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손을 잡아주고 한참동안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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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종기 (재)푸른나무 청예단 이사장(설립자)] "비폭력 문화 사회에 뿌리 내려야"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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