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증권사 배상책임 축소 … "감시역할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대법원 최종판단 남아

2010년 씨모텍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증권신고서에 허위사실을기재한 증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였지만 피해액의 10%만 배상받으라는 판결을 받았다.

투자자들은 항소심에서 손해배상 인정비율을 10%로 제한한 1심 판결의 문제점을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일 법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8부(재판장 정선재)는 박 모씨 등 투자자들이 씨모텍의 유상증자 대표주관회사였던 DB금융투자를 상대로 한 증권집단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투자자들은 2010년 씨모텍 유상증자에 참여했지만 얼마 뒤 외부감사를 맡은 신영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거절했고 씨모텍은 주식거래 정지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결국 상장폐지됐다.투자자 약 4990명은 불과 몇 개월 만에 145억 5000만원 가량의 피해를 입었는데, 법원은 증권사에 14억5500만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 최대쟁점은 증권사의 책임을 축소시킨 소위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논리였다. 1심 재판부는 손해액을 일일이 증명하는 것이 극히 곤란한 경우에 손해부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을 근거로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항소심에서 투자자들은 최소한 피해액의 70%를 증권사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DB금융투자(당시 동부증권)는 증권신고서 허위기재와 투자자가 입은 손실 간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유상증자 후 씨모텍의 주가가 전적으로 이사건 증권신고서 등의 거짓기재로 인해 하락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나모이쿼티(인수자)측의 씨모텍 자산의 횡령·배임과 그로 인한 감사의견 거절, 회생절차개시, 상장폐지 등 이후의 시장 상황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증권신고서 등의 거짓기재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다른 요인과 구분해 증명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증권사의 책임을 제한할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투자자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송성현 변호사는 "증권사가 증권신고서를 작성할 때 법인등기부등본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을 회사의 얘기만 듣고 거짓으로 기재했다"며 "회사에 요구해서 자료를 제대로 받아 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감사인처럼 의견거절을 했어야 맞다"고 말했다. 씨모텍은 2차례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 1차 때부터 기업사냥꾼 논란이 이어졌고, 2차 유상증자에서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거짓 내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증권사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다. 송 변호사는 "증권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도 이런 식으로 책임을 제한하면 앞으로 제대로 감시와 검증 역할을 할 수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금감원과 증권선물위원회는 2012년 씨모텍 유상증자 사건을 조사·심의하면서 자본금변동이 없는데도 차입금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됐다고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것과 관련해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기재'라고 판단했다. 증선위는 DB투자에 4억6620만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DB투자는 과징금부과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법원은 증권사의 기재내용이 중요사항에 해당하고 중과실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손해의 공평부담'을 내세워 증권사의 배상액을 10%로 제한했다.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원칙은 가해자가 잘못한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고 다른 위험책임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반면 투자자들은 자본시장법이 각종 허위기재와 관련한 손해배상에서 연대책임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원의 배상액 제한은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법원은 DB투자증권이 씨모텍의 인수계약과 관련해 받기로 한 수수료 4억8500만원 중 1억원만 받았고, 그 금액을 초과하는 과태료·과징금 처분을 받았다는 점도 배상액 제한의 근거로 제시했다.

송 변호사는 "증권사가 수수료를 받은 만큼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증권사의 거짓기재와 관련해 손해배상 책임 비율을 판단한 대법원 판례는 없다. 투자자들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증권사에 경종을 울리는 결론이 나올지, 아니면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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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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