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처벌 중심에서 사과·화해 중심으로 방향 전환

교육부, 지난달 개선안 발표 … 13일 담당자 워크숍

2012년 2월 정부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을 처벌 중심의 강력한 형태로 개정했다. 학교안팎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행위를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 심의하고 의결하게 했다. 가장 낮은 단계인 서면사과 건도 모두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도록 했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된지 6년, 정부는 처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이런 내용의 시스템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안에 대한 학부모와 현장교사들의 주장과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학폭위에서 모든 사건을 심의하고 결론을 내리는데, 가해자나 피해자측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심의 결과 가·피해학생과 부모들까지 원수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사과는 한다지만 형식적인 것이고요." 지난해 대전 ㅇ중학교에서 아들이 친구들과 사소한 다툼으로 1년 넘게 학폭위와 경찰서에 다닌 황재윤(가명)씨. 황씨는 가해자 부모가 됐고 결국 사건은 법원까지 갔다. 학폭위 심의 의결 과정에서 경찰과 변호사가 개입했다. '남은 건 상처뿐'이라는 학부모들은 자식 미래를 위해 생기부에 남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13일 강원도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청(지원청) 학폭예방 근절을 위한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이 우수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전호성 기자


피해자 부모 역시 가해자에 대해 무거운 처분을 요구한다. 교사는 중재권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학폭위가 제 기능을 잃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시도교육감과 교육부는 특별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했다. 부모들과 교육단체들이 나서 '처벌부터 하는 학폭예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12월 교육부는 학교장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사안이 경미하고 가피해자가 화해할 경우 학교장 종결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낮은 수준의 처벌(1,2,3호)은 생기부에 기록하지 않도록 검토했다. 그러나 학교현장은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사건은 학폭위가 주관했고, 교사의 재량 판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거론된 학폭법 개정 법률안은 총 26건에 이른다. 그러나 법안심사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부는 여야 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위기학생 치유 프로그램 설명


◆경미한 가해, 기록 안남긴다 = 지난달 30일 교육부는 학교폭력 시스템 개선안을 발표했다. 큰 사건은 엄중처리하고 가벼운 사안은 관용으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다. 학폭 시스템 개선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정책숙려단과 시민참여단을 가동했다. 개선책은 이들의 의견수렴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셈이다. 정책숙려제 결과, 숙려 대상인 학교자체해결(제1안건)과 생활기록부 기재 완화건(제2안건)에 대해 60%가 찬성입장을 나타냈다. 학생, 학부모, 교원 및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제1안건에 대해서는 찬성 51.4%, 반대 48.6%, 제2안건에 대해서는 찬성 40.2%, 반대 59.8% 의견을 제시했다.

따라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는 교육지원청으로 넘긴다. 다만 교육적 해결이 바람직한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화해와 사과, 치유를 중심으로 교사가 적극 개입해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현행 학교폭력 대응절차는 교사의 교육적 해결의지를 약화시키고 학교의 교육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는 가·피해자 간 소송을 부추기는 등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교사 및 학부모, 국민의 비판과 제안을 수용한 것"이라며 학폭 개선안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 교육력 회복'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게 학폭 담당 교사들의 반응이다. 교육부는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안을 9단계로 나눠 마련하고 올해 1학기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중 가벼운 사안으로 분류된 1~3단계 조치는 학생부에 남기지 않기로 했다. 1단계는 서면사과, 2단계는 접근금지, 3단계는 교내봉사를 의미한다.

◆ 자치위 이관, 학교-교육지원청 갈등 = 학폭 개선책 중 학폭자치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는 문제에 대해 '학교-교육지원청' 간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교사들은 당연한 조치라며 교육의 본질이 살아날 것이라고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 교육지원청은 '업무과다와 민원폭주'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13일 강원도에서 진행한 시도교육청(지원청) 담당자 학폭예방정책 워크숍에서 학폭자치위 이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날 지원청 참석자 대부분은 학폭관련 규정강화와 개선, 민원 폭주 등을 거부이유로 내세웠다. 아예 교육지원청에 학폭 전담기구(전문가 중심)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사법적 의미만 커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원청에서 맡으면 엄정하고 공정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며 "정부 고민이 부족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 한 지원청 장학사는 학교와 거리가 멀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자치위 이관을 반대했다. 학폭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자치위를 지원청으로 이관하면 학교(교사)는 하는 일이 무엇이냐"며 따져 묻기도 했다.

교육청으로 이관했을 경우 은폐, 공정성 시비 등을 해소할 교육부 대안은 충분한지 물었다. 반면 경기도 한 지원청 소속 교사는 "자치위를 이관한다고 교사들의 업무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교단에서 교권을 회복하고 아이들과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현장 교사들은 "학폭자치위를 지원청으로 이관하는 것은 '교육신뢰회복'의 지름길"이라며 "낡은 교육시스템을 개선하고 불필요한 업무를 대폭 줄여나가는 방안을 시도교육감과 정부가 고민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단체들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교총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개정안을 크게 환영한다"며 "학교는 형사적 처벌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사노조연맹'도 '학교폭력 대응절차 개선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특히, 지원청 이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학생 폭력상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을 법률로 인정받는 입법화'를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학폭예방우수사례공유


◆ 학폭예방 우수사례 공유, 서로 격려= 교육부는 학폭 개선책을 들고 소통에 나섰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책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육관련 정책을 만들어 발표만 하고 끝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교육부는 13일 '학폭 예방과 근절을 위한 우수사례 발표와 정책 공유'의 자리를 만들었다. 특징은 학폭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유관단체와 기업, 교사양성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이다.

이날 시도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예방정책과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부산시교육청은 관계회복 중심의 교원역량강화 연수를 어떻게 성공시켰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원격연수와 집합연수로 매년 기본·심화 과정 2000명을 길러낸다. 이는 소통과 공감의 대화 역량을 키워 자율적인 학교폭력 예방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병원 Wee센터 운영 사례. 사진 전호성 기자


특히 참석자들은 대구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병원 Wee센터에 관심을 보였다.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적극적인 대처로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게 대구 병원 Wee센터 추진 목적이다. 정서행동에 문제가 나타나는 초기단계부터 치유와 회복,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총 5개 병원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와 간호사, 상담사 등이 활동 중이다. 지난해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6589명이 병원Wee센터를 찾아 상담과 심리검사를 받았다.

광주시교육청은 부르면 즉시 출동한다는 '부르미' 운영과정을 발표했다. 대전시교육청은 '대전친구사랑 3운동' 성과를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세종시교육청은 청소년 '근로와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로 사례발표를 해 관심을 끌었다. 피로누적과 학업곤란, 학교흥미 상실 등이 악순환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경기도 군포의왕교육지원청이 운영하고 있는 '학생갈등조정 위기관리지원 통합시스템'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발표를 맡은 안주연 장학사는 갈등조정, 학폭 사안처리 위기학생 사안처리, 학교생활교육 방안을 지원하는 사례와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한국교육개발원, GS칼텍스, 열린의사회 등 시민사회 단체들도 지원과 활동내용을 공유했다.

이상돈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장은 "학교와 교사의 학생생활지도 폭을 넓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시도교육청과 모색해 나가겠다"며 "학교를 '교육력 회복'이라는 큰 틀에서 지원하고 시민 유관단체와 기관 등이 융합전략으로 관계회복의 실행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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