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동안 13번 만세운동

3.15 의거의 정신적 토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경남 창원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창원은 어느 만세운동보다 격렬했던 4.3 삼진의거가 일어났던 지역이었고, 3~4월 두 달 동안 무려 13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만큼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이 거셌던 도시였다.

창원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찍이 침략의 거점이 됐다. 일제는 마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마산출장소를 설치하고, 마산항을 대일 수출입항으로 삼아 경제적 침탈을 본격화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획도시 진해가 건설된 것도 1910년대다.

이러한 시대상황 때문에 창원지역 사람들에게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3월과 4월 두 달 사이에 무려 13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애국지사와 시민·학생들이 목숨을 잃거나 체포·구금됐다.

하지만 창원 사람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이 높아졌다. 이런 배경은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과 조직을 성장시키는 토대가 됐다. 또한 이 정신이 이어져 1960년 3월 15일 자유·민주·정의를 외쳤던 3.15 의거의 정신적 토대가 됐다.

창원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100년간 이어져온 불굴의 독립정신을 이어받고 자랑스러운 민주성지의 자긍심을 알리기 위해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3월 1일 애국지사 추모제와 추념식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서 범시민 동시 만세운동이 재현되고 거리행진이 펼쳐진다.

허성무 시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어느 해보다 더 경건하게 우리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려 한다"며 "창원 시민들도 잘 모르는 창원의 역사를 다시 되새겨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발전의 새 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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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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