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판정 후 가정 돌아가는 아이들 80% 넘는데 양육자 변화 끌어내기 부족

촘촘히 짜이지 않은 아동보호체계 하에서는 '놓치는 아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아이들과 사회의 접점을 마련해 학대징후를 발견하고, 해당 가정의 위기.위험도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하거나 압박을 가하고, 끊임없는 모니터링을 통해 가정의 위기도 경감 등을 체크해 아이의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예방.발견.모니터링.지원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아동학대가 치명적인 사망사건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는 단계마다 끊어진 분절화된 체계여서 학대아동들이 '시스템의 구멍'에 빠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동학대 사망사건 때마다 '살릴 수 있었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2013년 10월 24일 '소풍에 가고 싶다'고 했다가 계모에게 맞아 숨진 8살 서현이는 숨지기 2년 전인 2011년 5월에 아동보호체계에 잠시 들어왔었다. 유치원 교사는 서현이 몸에 반복적으로 상처가 나는 것을 보고 학대를 의심해 신고했다.

'발견'은 있었지만 이후의 모니터링이나 지원은 부족했다. 당시 서현이 사례에 개입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학대판정은 했지만 아동의 신변 위험이 높지 않다고 보고 원가정 보호와 지속관찰 조치를 취했다.

원가정 보호가 단순히 '학대 방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학대행위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상담이나 교육 등 가족 지원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2017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피해아동의 초기조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원가정보호로 80%가 넘는다.

아보전은 당시 계모 박씨를 상대로 한 13차례의 상담을 실시했지만 11번은 전화상담이었고 2번만 대면상담이었다. 대면상담 2번 중 1번은 임상치료사의 상담이었는데 양육 스트레스 상담에 그쳤을 뿐이었다.

학대 판정 이후 2개월 만에 서현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면서 그나마 서현이 사례는 중간에 종결 처리되고 말았다. 사례 종결 이후에도 사후관리하도록 돼 있는 지침에 따라 이사 간 지역의 아보전이 박씨와 두 차례 연락했지만 박씨의 거부로 상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학대행위자가 기관의 개입을 거부할 때 개입을 강제할 수 있는 조치가 없기 때문인데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후 서현이는 2년간 아동보호체계의 사각지대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신체학대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사망하기 1년 전 대퇴부 골절, 화상 등 심각한 부상이 이어졌지만 학교 선생님 등 주변 어른들은 '계단에서 넘어졌다' '샤워하다 화상을 입었다' 등의 박씨 거짓말에 속아넘어갔다.

학대 판정 경험이 있는 아동이라는 정보공유가 있었더라면 서현이의 상처를 좀 더 다르게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 지역 아보전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상담사는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교육현장에서 아동보호체계가 작동해야 하는데 학교는 아동보호체계의 '섬'인 경우가 많다"면서 "학대 피해 아동이 현재 학교에 출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이 건강하려면 가족이 건강해야 하고 가족이 건강하려면 지역사회가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아동복지와 가족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면서 “위기가정을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한 서비스와 함께 보존하면서 아동을 보호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보호체계가 연계 통합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적절한 아동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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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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