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낙태죄,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정부 “헌재결정 존중” … 후속조치 착수

헌법재판소는 11일 임신 초기 낙태까지 전면 금지한 현 형법조항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여성단체는 ‘여성인권의 큰 진전’이라며 환영했다. 정부는 즉각 ‘헌재결정을 존중한다’며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헌재는 11일 임신기간에 구분없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형법조항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임신시기를 구분하여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여하는 방식의 입법이 가능하다며 그 시한을 2020년 말까지로 제한했다.

헌재가 지적한 시기는 두가지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은 임신 22주까지를 ‘결정가능기간’으로 제시했다. 산부인과 학계는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생존이 가능한 시기를 임신 22주 내외로 판단했다. 그 이전시기까지는 임신 유지와 출산에 대한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임신 14주까지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 없이 여성이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임신 12주 미만인 때에 의사가 시술한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대체로 임신 12주까지는 임부의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임신 12주부터 22주까지는 의사와 상의를 통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22주 이후는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는 양상이다.

헌재는 △임부의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언제까지로 할지 △결정가능기간 중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은 입법재량으로 판단했다.

법무부는 11일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관련 부처가 협력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항에 관한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11일 성명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제적으로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상충하는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를 국가가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안전한 낙태 조건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국회 입법과정에서 적극적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3개 단체가 모여 만든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은 11일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경제개발과 인구관리의 목적을 위해 생명을 선별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대상으로 삼아 그 책임을 전가해 왔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중대한 결정”이라며 “임신 당사자의 자기 결정에 의한 임신중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처벌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1일 성명에서 “헌재의 이번 선고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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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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