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유연성' 작동 관심

"진짜 변했다" 보여주나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8일 당선된 지 2주일이 지났다.

아직 꽉 막힌 여의도 정국을 풀어내진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당대표는 극우적 발언과 행보로, 나경원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사과·원천무효를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여당의 운신폭을 좁혀놨다. "원내대표 교체시점이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물건너갔다. 이인영-나경원-오신환 '호프 회동'이 실익없이 끝났다.

◆공은 다시 한국당으로 = 당선 직후부터는 실전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협상은 해법을 찾기 어려운 국면에 놓였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희망도 있지만 새벽이 언제 올지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은 더 짙어졌다.

발언하는 이인영 |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원내대표 선거 기간중 인터뷰에서 이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을 다 밟아버리고 가는데 없던 일로 하자면 국회는 다시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는 것", "패스트트랙 올린 법안들 다 백지화해라는 식의 논쟁만 반복해선 안된다"는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패스트트랙 사과와 원천무효, 검찰고발 취하 등 한국당의 3가지 요구사항이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이미 밝혀놓은 상태였다. "철칙은 단 하나, 의원들의 집단생각에 철저히 근거하겠다"는 약속과 같이 의원총회를 통해 의견을 모았다. 결론은 '수용불가'였다.

23일 원내조정회의에서 이 원내대표는 "국회정상화를 위한 협상에 수많은 난관들이 조성되어 있다"며 "일방적 역지사지는 현 시점에 가능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고 못박았다. "부디 민주당이 국회정상화를 위해 내민 진정한 손길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란다"며 공을 한국당에 넘겼다.

◆원칙과 유연성 사이 = "이 원내대표가 진짜 변했느냐"는 질문에 많은 의원들이 "좀더 보자"고 했다. 머리 염색을 하거나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형식'으로는 감을 잡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당은 '국회를 열지 않겠다'며 앞발에 힘을 꽉 주고 있는 염소같다. 잡아끌어 조금 움직이게 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포용'과 '협치'는 선거승리를 위한 구호였을까. '해법'이나 '전략'은 있는 것일까.

이 원내대표는 출마선언과 정견발표를 통해 "반드시 야당과 공존협치의 정신을 실천하겠다"며 "원칙에 집착했던 만큼 때로는 놀라운 유연성도 발휘하겠다"고 했다. "개혁의 과제를 단호하게 밀고 가되 동시에 공존협치의 정신으로 유연하게 임하겠다"며 "통큰 협상으로 국민은 절대로 손해보지 않도록 정치를 복원하겠다"고도 했다. 언론인터뷰를 통해 "원칙이 강하면 더 자신있게 유연해질 수 있다"거나 "어디까지 가능하고 아니고에 대한 야당의 가이드라인을 잘 알고 있다"는 등 전략적 감각을 강조하기도 했다.

◆'놀라운 유연성'은 뭘까 = 이 원내대표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강고한 원칙과 신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놀라운 유연성', '자신있게 유연해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게 바로 '이인영이 정말 변했나'는 질문의 대답이 될 것이다.

그는 이미 "민주당 원내대표 교체를 명백한 모멘텀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당분간 길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놓은 터다. 그러고는 줄기차게 '민생'을 해결고리로 제시했다. "민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유인책이 아니라 같이 명분있게 해결해야 되는 것", "민생경제로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민생경제로 이동하고 집중해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해 한국당을 국회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통로를 열어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여기까지는 예측가능한 경로이며 '말'로 할 수 있는 해법이다. 이제부터가 '이인영 리더십'이다.

◆첫단추를 잘 끼워야 = '국회정상화'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향후 1년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시험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스텝이 꼬일 수 있다. '원칙'과 '유연함'의 최적점을 찾는 게 이 원내대표의 숙제다.

이 답을 찾지 못하면 "자영업 중소기업 청년대책 등 민생경제에 집중해 내년 총선에 승리하겠다"는 공약은 물거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민생 성과는 입법으로 가능하고 '미래' '개혁' 등 총선승리 아젠다 역시 '여당의 무한책임' 앞에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 '보이콧' '거부' 등 야당이 쓸 수 있는 전략은 상수다. 소통, 설득, 양보 등 여당이 쓸 수 있는 카드 역시 정해져 있다. 어떤 카드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쓸지 '선택'이 '변화'와 '유연성'의 바로미터다. 이 원내대표가 "진짜로 변했다"는 증거를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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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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