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민법전문박사 법무법인 산우

A는 큰 병으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유언의 의사를 밝혔고, 이에 부인 B는 오랜 치료로 기력이 쇠한 A의 상태를 고려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준비했다. 얼마 후 병실에서 증인들이 입회한 가운데 변호사는 B로부터 전해들은 A의 유언취지를 필기해 A에게 낭독해주고, A는 '음', '어' 등 간단한 대답을 했다. 이렇게 작성된 유언서에 증인들은 내용의 정확함을 확인하고 A와 함께 각각 유언장에 서명했고 법원의 검인까지 마쳤다. 유언은 유효한가?

사망한 사람의 재산상 모든 권리와 의무는 일정범위의 유족들에게 승계되는데, 이것을 '상속'이라고 한다. 상속에는 크게 '법정상속'과 '유언상속'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주로 '법정상속'에 따른 상속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법정상속'의 경우 피상속인의 사망 후 민법에 정해진 방식대로 상속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피상속인의 의사가 존중되기 어렵다. 하지만 '유언상속'의 경우 피상속인이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마지막까지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유언은 '요식행위'로서 법에서 정하고 있는 요건과 방식을 모두 갖추어 작성된 경우에만 유효하게 인정된다. 유언의 종류와 작성방법은 민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유언의 작성방식에 따라 크게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관한 유언'과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등 총 5가지가 있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연월일, 주소, 성명 등을 모두 직접 작성하고 날인하면 된다. 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의 경우 유언자의 의사표시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격을 갖춘 증인이나 공증인 등 해당 유언을 보증할 수 있는 참여인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앞의 4가지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 한 경우에만 가능한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언자는 스스로 자신의 유언 취지를 말로써 유언서를 작성할 자에게 전달하는 '구수'를 해야 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판례다.

유언의 방식이 이처럼 까다롭게 규정된 이유는 유언자의 사후 법적분쟁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엄격한 규정을 두고 신중하게 작성하게 해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유언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절차나 요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사례의 A의 유언에 대해 법원은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A가 직접 구수하는 과정이 없이 B에 의해 유언서가 작성됐고, B가 대신 구수해 작성한 유언서를 변호사가 읽어주고 '음', '어'등으로 간단하게 대답한 것만으로는 해당 유언이 A의 진의라고 볼 수도 없어, A의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상 방식을 지키지 못한 유언으로써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임경숙 변호사의 가족법 이야기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