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등 유지요건 완화, 중소기업계 "보완 필요" … 입법과정에서 진통 예고

정부와 여당이 11일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중소·중견 기업이 고용 인원, 업종, 자산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축소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다만 가업상속공제대상 기업의 매출액 기준은 현행 '3000억원 미만'을 유지하기로 했다. 공제대상 기업을 확대했다간 '대기업의 부의 대물림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여론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재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실효성 제고를 위해 매출액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중소기업계는 사후관리기간 중 고용인원 대신 급여총액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입법과정에서 진통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당정협의에서 발언하는 이인영 원내대표 |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왼쪽 두번째)가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재계 요구사항 수용 = 이번 개편안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중소·중견 기업이 10년 이상 경영을 유지하도록 한 '사후관리 기간'을 완화한 것이 골자다. 현행법은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은 기업은 10년 동안 고용 인원을 100% 유지(중견 기업은 120% 이상)해야 하고 업종을 변경할 수 없으며 기업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업종·자산·지분 등의 유지 기간을 7년으로 줄이고 요건도 일부 완화한 것이다.

재계는 그동안 "경제 생태계가 급변하는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실제 가업상속공제의 연간 이용 건수와 금액은 2017년 기준 91건에 2226억원에 머물러 제도 활용이 저조했다. 독일의 경우 7년(100% 공제 시), 일본 5년 등 사후관리 기간이 우리나라보다 짧은 점도 고려됐다.

사후관리 기간 도중 업종변경을 허용하는 범위는 기존의 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에서 앞으로는 '중분류' 내까지 확대된다. 비슷한 업종으로의 전환은 허용한다는 의미다. 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점을 고려, 가업 승계 기업의 유연한 대응을 지원하려는 취지다


◆업종변경 등 유지요건도 완화 = 사후관리 기간 도중 20% 이상 자산 처분을 금지한 현행 조치도 완화된다. 자산 처분이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허용하는 사유가 시행령에 추가될 예정이다.

고용유지 의무는 중소기업의 경우 지금처럼 상속 당시 정규직 근로자 수의 100% 이상을 유지토록 했다. 그러나 중견기업은 현재 '120% 이상'인 통산 고용유지 의무를 중소기업과 동일하게 '100% 이상'으로 낮춰 부담을 덜어줬다. 기재부는 "생산설비 자동화 등 기업 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기존 고용 인원 유지를 넘어 증원하는 것은 상당히 무거운 부담임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개편안에는 기업 부담 완화에 상응해 불성실한 기업인에 대해서는 조세 지원을 배제하는 방안이 신설됐다. 피상속인·상속인이 상속 기업의 탈세, 회계부정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공제 혜택을 배제하거나, 공제액을 추징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대상 기업의 매출액 한도는 현행 '3000억원 미만'을 유지했다. 당정협의 과정에서 여당에서 매출액을 5000억원 또는 7000억원까지 확대하자는 요구가 나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8년 기준 전체 중견 기업의 숫자는 4014개로, 이중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은 3471개(86.5%)다. 3000억∼5000억원 미만은 282개, 5000억∼1조원 미만은 172개, 1조원 이상은 89개였다.

◆매출액 기준 확대 쟁점될듯 = 다만 향후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매출액 기준 확대'가 쟁점으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회에는 매출액 기준을 5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까지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

한편 중소기업계는 당정 차원에서 가업상속 지원 확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환영하면서도 정작 정책 대상자인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다만, 고용과 자산유지 의무의 경우 중소기업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음에 안타까움을 표한다"며 "고용의 경우 독일의 사례처럼 급여총액을 유지하는 방식을 도입·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중소기업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중소기업 현장에서 계획적인 승계를 위해 '사전증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활성화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이에 대해 “그간 기업들이 요구한 내용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며 “기업승계를 추진하려는 기업들이 규제완화 효과 자체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경총은 “기업상속은 ‘부의 세습’이 아니라 기업가정신, 기업문화, 고유기술 같은 기업핵심역량의 영속적 발전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 독일, 일본 같은 우리 경쟁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은 상속세가 없거나 세부담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기업들이 세대를 거친 국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해 나갈 수 있도록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의 적용대상 및 사전·사후관리 요건 대폭 완화 등을 실질적으로 반영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관련기사]
중소기업 가업상속 공제요건 완화

김형수 성홍식 한남진 기자 king@naeil.com

성홍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