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 일반 직장으로 생각하면 오래 못 버텨"

"내년 총선 앞둔 의원회관은 '상시적 비상체제'"

"의원과의 신뢰관계 없으면 고용안정성 '제로'"

"지금은 내 일상과 인생의 계획이 가능해요. 그 전엔 몸조차 못 챙겼습니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30대 A씨. 그는 전직 국회의원 비서관이다. 10년 가까이 수도권 야당 중진의원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다 얼마 전 건강 문제로 '자진 퇴사'했다.

그가 보좌하던 '영감(국회의원을 보좌진이 부르는 은어)'은 지난해까지 주요당직을 맡을 만큼 국회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의원실 안팎에서는 성품과 요구가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국회의원 보좌진들 '줄넘기' | 21일 여의도 국회 운동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체육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주5일제? 주6일도 힘들어" = 면접에서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라"는 명을 받고 시작한 국회 생활은 힘들었다. 주5일은커녕 주6일도 보장되지 않았다. 주중에는 국회로 매일 출근했고, 토요일에는 지역사무실에서 아침 8시마다 열리는 회의에 참석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휴가를 내려면 불호령을 각오해야 했다.

쉬는 날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밤이건 새벽이건 영감이 언제 전화를 해서 행사·자료준비나 기차·비행기 표 예약을 지시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혹여 깊이 잠들어 전화를 못 받으면 이 역시 불호령 감이었다.

명절연휴를 챙기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설 연휴 무렵은 늘 2월 임시국회가, 추석 무렵은 국정감사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피감기관 질의내용을 만들다 보면 밤을 새기 일쑤다. 집에는 명절 당일에만 얼굴을 비치는 게 고작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밤샘 근무 후 지역구 행사에 동원될 때였다고 한다. A씨는 "국회 선진화법 도입 전 새해 새벽 3시 예산 통과 때까지 뜬눈으로 버티다 지역구 행사용 고사상을 차리러 지역구 산 정상을 오르내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A씨는 비서관으로 일하는 동안 신경·관절계통 난치병을 얻고 퇴직을 결심했다. 그는 "(일을) 관두겠다고 할 때 빈말이라도 '어디가 안 좋으냐' '고생했다' 할 줄 알았는데 돌아온 건 배신자 취급이었다"며 "곧장 다음날 보좌관한테 채용공고 띄우라고 하는 모습에 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성향 떠나 '고강도 업무환경' = 근무환경이 A씨 수준인 의원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긴 쉽지 않다.

취재 과정에서 "보좌진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음식을 시킨 대로 사오지 않았다고 벽에 집어던졌다" "전화로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직원을 면직했다"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가 마음에 안 든다며 심부름한 보좌진을 면직했다" 등 진위마저 의심스러운 일부 의원들의 상식 밖 행각에 관한 전언이 적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무난한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른바 '덕장'을 만났다 해도 A씨에 비해 감정의 소모가 덜할 뿐, 근무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A씨는 "주 52시간 도입으로 가장 박탈감이 큰 곳이 아마 국회일 것"이라며 "국감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조사, 게다가 내년에는 총선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상시 비상체제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16년차인 영남권 야당 중진의원 보좌관인 B씨는 "나는 영감을 잘 만난 편이고 성향도 잘 맞다"면서도 "이 곳을 일반 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래 못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야당 보좌관 C씨도 "제도화된 근로조건이라는 게 없다"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여줘야 의원실에 계속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회 일이 역동적이고 시간과 장소 구분 없이 생기니 긴장감이 돌고 힘들다"며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일하고 가족과 지방에 내려가다가도 서울에서 부르면 바로 돌아간 적도 있다"며 "의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게 일"이라고 설명했다.

12년차 야당 비례대표 비서관인 D씨는 "일반 회사처럼 6시 출근 9시 퇴근이 보장 안되고 과다근무를 해도 보상 시스템이 없다"며 "그나마 직급 높은 보좌관들은 드라마처럼 다양한 곳을 돌며 일할 수 있지만 비서나 인턴은 잡무 하느라 의원실에서만 하루를 다 보낸다"고 말했다.

여당 6년차 비서관인 E씨는 "저녁·주말이 어디 있느냐"며 "의원에 따라 주말에도 같이 다녀야 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강도 업무환경은 희박한 고용안정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좌진들 "업계 특성상 불가피" = 다만 눈에 띄는 것은 고용불안을 직업적 특수성으로 받아들이는 목소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B씨는 "일반 기업과 비교하면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점에서 확실히 불안하다"며 "의원이 고용주로서 좋은 사람이라도, 선거에 떨어지거나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잃거나 혹은 불출마 선언을 하면 보좌진으로서는 회사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9년차 여당 비서관인 E씨는 "보좌진의 고용 불안정성은 업계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임기 내 선거를 통해 승부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 필요한 인력을 쓰는 것을 탓할 수 없다"고 말했다.

D씨는 "의원과의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고용안정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며 "이직이 잦은 원인은 보좌진과 국회의원 양쪽 모두에게 절반씩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직 케이스를 보면 전에 있던 방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관두는 경우, 외부 직장에서 일하다 새로 온 분들이 의원회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했다"며 "스펙만 보고 보좌진을 채용한 의원도 책임이 있지만 국회 또는 의원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들어온 사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E씨는 "의원과 맞지 않아 쫓겨나는 보좌진도 있지만 별정직인 만큼 자신의 스펙을 쌓기 위해 또 승진하려고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게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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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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