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의병' 선동, 정치인의 기본소양이 안 돼 있는 것"

"겨울 오는 것 막을 수는 없어 … 내년 4월부터 레임덕"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사진)이 귀국 후 분주하다. 대여 강경투쟁을 이어가던 황교안 체제 한국당이 최근 지지율 정체를 겪는 가운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신촌에서 만난 김 전 위원장은 한일관계 악화에 대해 시종일관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22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정부를 선수, 국민을 관중에 비유해 "선수역할을 하지 못하겠다면 관중석으로 가라"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18일 대면으로 실시한 후 22일까지 전화통화로 덧붙였다.

사진 이의종

■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어느덧 중반을 넘겼는데

가을이 깊어지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데 권력은 겨울을 막으려 한다. 성공한 적은 없다. 지난 20대 총선 때 박근혜 정권이 그랬고 이번 정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년 4월이 지나면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레임덕이 온다.

공천을 어찌 했든, 선거 결과가 어찌 나오든 대통령의 구심력은 떨어지게 돼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현 정권에서 공천 받을 일이 없으니 새 대선주자를 쳐다볼 것이다. 억지 부리면 역효과가 날 뿐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아베 일본 총리는 참의원 선거 과반을 확보했고 문 대통령 지지율은 반등했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적대적 공생관계'다.

한일관계는 민족주의에 호소하면 정부 지지율이 올라간다. 광복 이후 한일갈등이 고조될 때는 양국 집권세력이 다 이익을 봤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정부가 한일관계의 복잡미묘한 현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이순신·의병·죽창이 왜 나오나. 임진왜란 때가 아니잖은가.

지금은 외환·부품소재 등 상호의존관계가 매우 유기적이다. 관계가 나빠질 때는 쌍방이 손해다.

■ 그동안에도 계속 부딪혀 왔잖나

독도·역사교과서 문제는 양국의 기능적 상호의존 관계를 크게 해치지 않았다. 민족감정으로만 부딪힌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본이 과도하게 나오는 게 틀림없는 사실이다. 산업적 의존관계까지 재고하겠다고 나섰다. 정말 해선 안 될 짓이다. 산업경제에까지 문제가 파급됐을 때는 일본도 우리도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일본이 늘 주판을 다 튕겨보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의 축을 흔들려 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희생을 치를 의향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미일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특사든 직접 대화든 일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근거를 대고 설명해서 풀어야 한다.

만일 '대안적 질서'를 원하고 있다 해도 그 그림이 일본과 한국, 동북아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본에 설득해야 한다.

위정자들이 경제적 위기나 사회적 상황이 안 좋으면 적대적 공생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국민정서 위에 올라타려는 충동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건 경제문제다. 충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 정부여당에 '관중석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책임윤리를 말한 것이다. 정치인은 자기가 한 선택에 대해서 어떤 결과 나올지 따질 줄 알아야 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죽창·의병 따위의 말로 선동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이 안 돼 있는 것이다.

주전멤버가 벤치·관중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다 경기를 망치면 어떻게 되겠나. 결국 교체될 것이다. 선수는 많다.

■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평가했는데

남북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겠다고 시도하는 건 좋은 일이다. 전략이나 실행하는 내용은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지만 어쨌든 개선하려 신경 쓰는 것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점점 엉망이 돼가는 것 같다. 이 정부도 성과에 매달려 임기 이기주의에 빠진 것 같다. 그러면 기다려야 할 순간에 매달리고 조급해진다. 자꾸 실수를 한다. 압박해야 할 시점에 거꾸로 달래려 든다.

오히려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미국과 우리의 대선을 적절히 이용하며 키를 쥐려는 모습이다.

■ 경제정책, 어디서부터 문제인가

다음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회복하기 힘들 정도다. 기본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R&D(연구개발) 체계가 꼼짝도 않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시대인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뒤처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인적자원의 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앞서가는 나라들은 기존 근로자들을 지식근로자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고용이 가장 많은 중소기업에서 인력양성을 해야 하는데 대기업과 임금격차가 크다. 열심히 키우면 위에서 빼간다.

무엇보다 정부가 경제정책 전반에 관한 큰 그림이 없다. 수출주도형에 영세자영업자 비율 30%인 나라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꺼내든 것 자체가 성장모델의 빈곤을 반증한다.

그러고도 제조업 4강을 운운하니 황당하다.

■ 노동계의 영향력이 부쩍 커졌다

노조를 건드리지 않는 산업정책은 있을 수 없다. 구조조정 후에 노동자도 자본도 신산업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노조가 이동 안하겠다고 바리케이트를 쳐버린다. 이들과 싸워서 이동시키겠다는 의지가 없는 정부에서 신산업 구상이 나올 수 없다.

지난 정부보다 이번이 노동개혁 하기엔 더 여건이 좋았다. 하지만 건드리려 하지 않다가 지금 답답하니까 부딪힌 거다. 기차는 이미 떠났다.

정부는 노조가 아니라 자영업자를 구조조정하고 있다.

■내년 총선 구도 어떻게 보는지

전략적으로 보면 한국당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분열구도다. 선거제가 어찌 변할지 모르겠지만 기존 소선거구제도 하에서는 특히 수도권이 몇 표 차이로 당락 결정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적 쇄신이다. 민주당은 어떻게든 물갈이를 할 것이다. 자리, 사업 등 자원이 많다. 불출마선언이 이어져서 분위기 쇄신도 가능하다. 한국당은 그게 없다. 잘못하면 내부 분열이다.

세 번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상호회담이 될지 흔히 말하는 서울 방문이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현 정부를 도울 것이다.

가장 큰 변수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이다. 숫자가 엄청나다. 겉으로는 비판하면서 속으로는 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타격받으면 수당이 줄어들 가능성 있다.

경제난으로 정부에 대한 여론이 안 좋다고 하지만 여전히 산은 높다.

게다가 확고한 대안을 못 내놓고 있다 내용이 없는 게 아니라 전달을 못하고 있다.

■ 야권분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감한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요즘 대구에 자주 가는 것도 야권통합 문제와 무관치 않다. 대구경북에서 분열구도가 나타나면 안 된다. 어떻게 하든 당과 제 자신이라도 대구시민들 마음을 읽고 설득해야 통합구도를 강화할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 통합구도가 시작되면 전국적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 인적 쇄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쉽지 않다. 다들 자기 기반이 있어 잘 물러나지 않으려 한다. 자원은 물론 YS나 DJ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도 없다. 지역에서 '칼질'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출현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선에서 반드시 당선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후보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여야 차기 주자들의 합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집권하고 나서 얘기하자'는 사후보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가치의 정립을 얘기했었다.

인적쇄신을 위해서라도 확립돼야 할 게 당의 기본 노선과 철학이다.

인적 자원을 선별하는 기준도 '미래' 기준이 확보돼야 한다. 탈당여부나 계파처럼 '과거' 기준이면 안 된다. '너는 뭐가 잘났냐'며 논란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세계 어떤 정당도 철학·가치·비전을 세우지 않고 위기를 극복한 적은 없다.

■ 한국당 이미지가 다시 악화되고 있는데

그동안 정치가 더 격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이 시대에 역사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누가 지도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새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가져갈 것인지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의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철학과 비전, 가치가 있으면 막말이 잘 안 나온다. 역사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뭘 새로 내놓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으면 막말은 줄어들게 돼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정치인 김병준을 어떻게 봤을까

그는 한국정치를 의제 중심의 정치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떤 정당이든 정책정당, 대안정당으로서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정책을 놓고 치고받는 정치를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나에게 정치를 강권했던 게 노 전 대통령이다. 그는 정책정당 출현을 내가 기획해주길 바랐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내가 정치에 나선 것을) 좋아할 것이다.

■ 노 전 대통령이 지금 문재인 정부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노 전 대통령은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한 번은 기자가 아파트 분양 원가공개에 대해 기습질문 하자 "장사의 원리에 안 맞다"고 답했다. 한미 FTA, 영리병원 하자고도 했다. 여론에 두들겨맞긴 했지만.

지금 정부의 지지 세력은 그 때 노무현을 때리던 사람들이다. 철학도 시장에 대한 이해도 완전히 다르다. 분권과 자율을 추구했던 노무현이 문 정부에 도매급으로 묶여 좌파로 매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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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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