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연령(Consent Age)이란 성관계를 가져도 상대방이 처벌되지 않는 최저 연령인데, 우리나라는 형법 305조 미성년자의제강간 규정에 의해 13세입니다.

나이지리아, 일본과 함께 몇 안 되는 낮은 연령이지요. 전 세계적으로 보면 16세 전후 국가나 주가 가장 많은데, 미국은 17, 18세인 주도 많습니다. 일본은 실제로는 조례 등으로 높게 보호된다 하고 북한만 해도 15세라 하니, 우리가 얼마나 낮은지 짐작되시죠.

우리나라 형법 305조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돼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 꾸준히 있어 개정안이 18, 19대 국회에 반복해 올랐고 20대 국회에도 올라 있습니다.

혹자는 형법 외에 아청법(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으로 우리도 아동 성보호 입법을 꽤 갖추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기본조항인 형법 305조가 12세까지만 보호하고, 13~18세 아동들은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리고 이번에 시행된 아청법 8조의 2 궁박한 상태 이용 요건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보호받지 못합니다.

게다가 떡볶이라도 사줘서 대가관계라고 볼 만한 뭐라도 제공되면 단박에 '성매매'로 포섭되어 '대향범'으로 취급되고 보호처분에 처해지며 상대방의 가벌성은 낮아집니다.

특별형법 또는 특별법상의 특별 구성요건이나 가중처벌 정도로 충분치 않은가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형법 305조의 의제강간 연령 자체를 올리는 것만이 제대로 된 아동 성보호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상담소, 경찰, 검찰, 법원을 거치며, 성관계에 관한 상세한 얘기를 고통스럽게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는 단지, 몇 월 며칠 어디서 성교가 있었다는 것과 그때 내가 15살이었다는 것, 이것만 말하면 됩니다.

현행 규정 하에서는 아이가 신고를 하면, 성교에 이르게 된 행위가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리고 궁박한 상태의 이용 등 구성요건에 해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신뢰하고 사랑한다고 여겼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세세한 일들을 하나 하나 소환해서, 그게 상대방 입장에서는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궁박한 상태의 이용이었다는 것으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기억을 일일이 소환하는 과정에서 상대는 나를 성욕 해소 수단으로 이용했고 나는 범행대상일 뿐이었다는 자기부정의 고통스런 내적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폭행이면 폭행이고 위력이면 위력이지, 신뢰는 뭐고 사랑은 뭐냐구요?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유전적으로 자신을 돌봐주는 자에게 순응하도록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어른들 말을 잘 들으라고 교육받기 때문에 '순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아동의 순응하는 특성상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궁박한 상태의 이용'과 '자발적 동의'의 경계는 주관적으로 모호할 수 있습니다.

소위 그루밍이라고 일컬어지는 '유인, 설득, 조종 기타' 행위들과 '신뢰, 애정에 기초한 자발적 동조' 사이의 경계도 주관적으로는 모호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성교 상대로 삼는 성범죄자들을 보면, 아빠, 새 아빠, 큰 아빠, 아빠 친구, 삼촌, 오빠, 동네 오빠, 애인...... 많은 수는 오빠나 애인이라고 부르는, 가출했을 때 데리고 살아주는 성매매 알선자인 포주, 그리고 선생님, 학원 선생님, 교회 선생님, 목사님...... 이런 관계에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납니다.

누우라면 눕고 벗으라면 벗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 안 해도 가만히 있습니다. 무서워도, 걱정돼도, 싫어도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왜 아이가 가만히 있냐면, 그게 나를 위하는 행위이겠거니 하고 그냥 참고, 그냥 오빠를, 아빠를, 선생님을, 목사님을 믿고 견디고 있는 겁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아니라, 그냥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러, 겨우 신고를 하게 되더라도, 앞서 본 구성요건들을 입증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견뎌야 합니다. 상담소, 경찰, 검찰, 법원을 거치며 여러 차례 반복해서요.

거길 왜 따라갔던 거야? 그때 아빠가(또는 그 오빠가/삼촌이/그 선생님이/ 그 아저씨가) 뭐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한 거야? 그리고 나서 또 어떻게 했어? 바지 쟈크를 니가 내렸어? 넌 가만히 있었어? 왜 가만히 있었어? 그때 넌 뭐라고 말했어? 싫다고 말은 안했어? 그때 왜 바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7개월이나 지나서 신고한 이유는 뭐야?

아이 자신은 답을 알까요. 자신도 모르겠는데 자꾸 물으니, 왠지 내가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잘못했다는 죄책감만 들게 하지 않을까요? 아이가 누군가와 성교를 한 것이 무엇 때문인가를 밝힌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려운 겁니다. 연예기획사 사장이 15살짜리 아이 임신 시키고도 무죄 난 사건도, 결국 '위력'이 아니라고 무죄가 되었잖아요.

나아가 설령 그 구성요건 입증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아이는 고통스런 과거의 소환과 기억·신념의 재구성, 그리고 분열적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지옥을 수사기관에서 법원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데, 아이를 이렇게 두 번, 세 번 죽이는 극심한 고통을 줄 이유가 있을까요.

아이의 성이 온전하고 건강하게 성장·발달하도록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잘 보호해야 합니다. 18세까지 아이들에게 술 한잔, 담배 한 개피의 선택권도 안 주면서, 13세만 되면 성적 자기결정권 존중이란 미명하에 책임을 아이 자신에게 떠넘긴 채, 아이를 성교 대상으로 삼은 어른을 손쉽게 면책해 버리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요.

[특별기고│임수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