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2위 기계산업, 핵심기술 일본 의존 여전 … 볼베어링 밸브 등 시장서 중국에 밀려

18세기 말 증기기관 발명은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제1차산업혁명을 촉발시켰다. 1908년에 발명된 세탁기는 인류를 빨래라는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농기계는 식량 생산량 증가와 기아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이렇듯 인류와 사회에 혁신을 가져온 기계를 만드는 산업이 기계산업이다. 기계산업은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등 제조업에 생산설비를 공급하는 자본재산업으로 기업과 국가 제조경쟁력을 좌우한다.


기계는 '제조를 위한 제조장비'로 전방산업의 생산성과 제품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다. 따라서 '산업의 어머니'(Mother Industry)로 불린다.

기계산업은 일반적으로 산업기계(건설기계 농기계 등) 제조장비(공작기계 자동화설비 등) 기계요소(베어링 기어 밸브 등)로 구별되고, 기업간거래(B2B)가 대부분이다.

수요자별 작업환경과 기술적 요구조건 등 다양한 특수성을 고려한 설계와 제작이 요구된다. 수요자별 주문에 따른 다품종 소량생산의 특성으로 기술의존도도 높다. 13대 주력 품목 산업 중 고용유발효과가 가장 높다.

특히 핵심기술은 데이터·노하우 등을 쌓을 장시간의 '축적의 시간'이 필요해 경쟁력 확보 시 고부가가치를 유발한다. 진입장벽이 높아 후발주자의 시장진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오랜기간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도국을 상대로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산업이다.

세계시장은 1조3000억달러(2017년)에서 20130년에는 1조8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혁명 기술발전에 따라 스마트 기계장비의 수요 확대로 기계산업 경쟁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수출 500억달러 달성. 규모는 커지는데 = 한국 기계산업은 1970년대 기계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된 이후, 꾸준히 성장했다.

1970년 214억원에 불과한 생산규모는 2017년 121조원에 이르렀다. 수출은 1970년 800만달러에서 지난해 535억6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8.8%를 차지했다. 반도체에 이어 두번째로 수출액이 많은 주력산업이다. 2006년 세계 10대 수출국에 진입했고, 2007년 첫 무역흑자를 냈다.

하지만 기계산업 성장 이면에는 높은 대일의존도가 자리 잡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기계분야 자체조달률은 61% 수준이다.

반도체(27%) 디스플레이(45%)보다 자체 조달률이 높지만 여전히 정밀제어장비 터빈 정밀제어모터 등 핵심 부품은 일본에 얽매여 있다.

이중 공작기계용 수치제어장치(CNC)는 일본에서 90% 이상을 수입한다. 이 중에서도 일본 화낙(FANUC) 의존도가 높다. 정부는 한국에서 쓰이는 공작기계의 91.3%가 CNC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CNC는 공작기계 등 제조장비의 두뇌 역할을 한다. 제조장비 성능과 제조장비를 사용해 생산하는 제품의 부가가치 및 생산성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부품이다. 만약 일본정부가 수출제한을 할 경우 국내 공작기계는 무용지물이 된다.

정부도 "기계분야 핵심부품 등에 대한 해외의존성은 기계장비 산업의 스마트화 및 고부가가치화에 걸림돌"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정부는 2020년부터 5년간 855억원을 투입해 CNC 국산화를 추진한다.

주요 품목들도 일본비중이 높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디스플레이용 제조용기계의 경우 전체 수입액 중 일본비중이 72.9%에 달한다. 이외에도 금속절삭기계(41.3%) 산업용로봇 (56.7%) 전기탄소제품 및 절연제품(44.2%) 동력전달장치(40.8%) 기타 측정, 시험, 제어 및 정밀기기(40.5%) 등도 일본산 비중이 높다.

◆독일과 제휴로 핵심기술 습득해야 = 세계시장에서도 국내 기계산업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과 격차는 벌어지고,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한 상황이다.

한국기계연구원에 따르면 공작기계 품목에서는 레이저 방전방식 공작기계류를 제외한 모든 품목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의 약 2~5배 규모를 수출하고 있다. 다행히 중국보다는 수출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기계요소 주요품목에서는 우리나라가 중국에도 밀렸다. 주요품목 수출규모는 중국의 1/5 수준, 일본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산업이 상대적으로 수출비중이 높은 품목은 코크·밸브·탭, 전동축·변속기 등 2개 품목에 그쳤다.

국내 산업과 실질 경쟁상대인 중국과 대만의 추격도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국가적으로 CNC를 육성하면서 고부가가치 기계산업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자국 공작기계 CNC 비율을 90% 이상으로 높이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의 기술개발을 주문했다.

지난 8월 창원 재료연구소에서 열린 '기계산업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정책토론회'에서 이규환 재료연구소 부소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대기업에 편중된 연구개발(R&D)의 불균형 구조'를 지적했다.

이 부소장은 "국내 소재개발 역량은 우수한 편이고, 삼성과 LG 등 세계적 수요기업들도 존재하지만, 정작 기술개발과 실용화는 미흡하다"며 중견기업층의 취약한 R&D 투자생태계를 지적했다.

김동수 한밭대 교수는 독일과의 적극적 제휴를 요구했다.

김 교수는 "국내 기계산업 핵심기술이 일본에 너무 편중돼 있다"며 "극일을 위해서는 세계 1위 기술을 가진 독일과 적극적인 제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기계산업의 핵심기술인 광학과 열처리 분야 등은 국내 노력만으로는 일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며 "독일과 기술제휴하면 충분히 국산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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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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