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지도부 중심 박수 안 치고 빠른 퇴장 '관행화'

반성 없고 오히려 조직적으로 '대통령 망신주기'

국회법 '품위유지 의무' 사문화된 지 오래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본회의장 시정연설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야유와 비난을 담은 고성과 무시전략으로 얼룩졌다. 야당 지도부가 직접 나섰다. 반성이나 성찰은 없었다. 국회는 그렇게 '혐오의 시대'를 앞서갔다.

'야유'는 두 차례 이어졌다. "핵과 미사일 위협이 전쟁의 불안으로 증폭되던 불과 2년전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국민들에게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고 말한 뒤였다.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조국사태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된다.

X자 그려보이는 자유한국당 |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2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도중 공수처 관련 내용을 말하자 두손으로 X자를 그려보이며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발언 중간 중간에 고성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공수처는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 기구로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엄정한 사정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국정농단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하자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가 큰 소리로 나왔다.

"사과부터 하세요" "협치를 하세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야당이랑 협의를 하든가" 등이 나왔고 "조국, 조국"을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공수처법과 수사권 조정법안 등 검찰개혁과 관련된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하자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이 양팔을 들어 '엑스자(X)' 표시를 했고 귀를 막기도 했다.

◆무언 항의표시, 구호 부착부터 현수막까지 = 대통령의 연설 중 이같이 고성과 야유, 구체적인 행동으로 '망신주기'에 나선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갈수록 심해지는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단 한번만 국회로 와서 시정연설을 했다. 임기 첫해인 2008년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광우병 파동이 일던 시기였다. 민주당 의원은 빨간 넥타이와 머플러를 착용하고 앉아있었다. 무언의 항의 표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중 3번이나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돼 있던 2015년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민생우선'이라고 적힌 종이를 의석마다 설치된 모니터에 붙여 단상에서 볼 수 있게 했다.

문 대통령의 첫 예산안 시정연설이었던 2017년엔 한국당 의원들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 '근조'라는 리본을 착용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유린, 방송장악 저지' '북핵 규탄 UN결의안 기권 밝혀라' 등이 적힌 종이와 현수막도 등장했다.

대통령 연설 때 야당의원들이 박수를 치지 않거나 악수를 거부하고 먼저 퇴장하는 것은 '관례'가 돼 버렸다.

◆사라진 '품위' =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상임위, 교섭단체대표 연설, 대정부질문 등에서 나오는 의사진행 방해, 욕설 등 막말이 대통령 시정연설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상임위에서의 막말은 자주 볼 수 있게 됐고 대정부질문에서도 의원석에서 고성이 나오는 것은 일반화된 지 오래다. 지난 3월에는 "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에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방과 비난, 발언 끊기 등이 이어지는 것은 '다른 의견'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풍토가 확산돼 있고 '비난'을 주요 공략수단으로 삼는데다 이를 당 지도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국회에서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설명하던 중 '거짓말이야'라고 소리친 공화당 조 윌슨 의원이 결국 여론과 공화당 지도부의 비판에 밀려 백악관에 사과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윌슨 의원은 '의회 프로토콜을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우리나라 국회에도 '의회 프로토콜'이 있지만 전혀 가동되지 않는 '사문화된 규정'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국회법 제4장 25조에는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품위유지의 의무'가 명시돼 있다.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가 원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무례함의 극치였다"면서 "대통령의 악수를 마다하고 나가버리는 야당의원들의 행태,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직'으로 국회에 온 손님인데 국민들이 보고 있는 데서 연설 도중 야유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것은 의회 프로토콜에 맞지 않다"며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하면서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것도 이율배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가 좀더 전통과 품위를 지켜야 매력이 생기는 것"이라고도 했다.

[국회의원을 감사한다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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