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목표고객을 '정기예금 선호고객'으로 선정 … "고액·다수 피해자 양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판매에 대한 은행의 배상책임을 40~80%로 결정한 데에는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5일 금감원 분조위는 회의에 상정된 6건의 DLF 투자손실 사건에 대해 모두 은행의 불완전판매로 판단했다.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지켜야 할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적합성원칙에 따르면 '손실 감내 수준' 등 투자자정보를 먼저 확인하고 투자성향에 맞는 상품을 권유해야 하는데, 은행들은 DLF가입이 결정되면 은행직원이 서류상 투자성향을 공격투자형 등으로 임의작성했다. 또 초고위험상품인 DLF를 권유하면서 '손실확률 0%' '안전한 상품' 등으로만 강조했고 '원금전액 손실 가능성' 등의 투자위험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DLF 사태 관련 금감원 분조위 개최에 대한 입장발표 | DLF피해자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사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개최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하나은행의 불완전 판매가 아닌 사기판매를 주장하며 계약 무효와 일괄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금감원은 이같은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배상비율 산정은 기존 분쟁조정 사례와 동일하게 30%로 결정했다. 동양 CP·회사채 불완전판매 사건과 KT ENS 신탁상품 불완전판매 등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추가로 부당권유가 인정되면 10%를 가산해 최대 40%의 배상책임을 지게 했다.

DLF사건에서는 여기에 은행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 부실책임'을 배상비율(20%) 산정에 반영했다. 금감원은 "상품의 출시와 판매과정 전반의 심각한 내부통제 부실이 영업점 직원의 대규모 불완전판매를 초래해 고액·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상품출시부터 판매까지 내부통제 실패 =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그룹차원에서 DLF를 '선취수수료 2·3모작 상품'으로 강조하며 판매를 독려했다. DLF는 만기가 4·5·6개월이라서 선취수수료(08~1.4%)를 연간 2·3번 받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자산관리 수수료수익 목표를 2017년 990억원에서 2018년 1950억원, 올해는 2344억원으로 매년 확대했다. 또한 영업본부장이 고객수와 금융수신 관련 KPI(핵심성과지표)를 일별관리했다. 금감원은 그룹차원의 영업전략이 DLF 불완전판매를 부추긴 내부통제 부실운영 사례라고 판단했다.


KEB하나은행 역시 '금리연계 DLF 세일 포인트'라며 임직원들에게 예금형 선호 고객들의 수요충족을 목표로 DLF판매를 장려했다. 자산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정기예금 선호고객'을 DLF라는 초고위험상품의 목표고객으로 선정한 것이다. KEB하나은행의 DLF상품 판매 고객의 고령자(65세 이상) 비율은 59.6%로 우리은행(27.7%)에 비해 두배 가량 높았다. 노후자금을 정기예금으로 운용하는 고령자들이 집중적인 판매 대상이었던 셈이다.

상품출시 과정을 보면 우리은행은 상품선정위원회 참석위원(평가표 작성거부) 의견을 '찬성'으로 임의기재했고 KEB하나은행은 상품위원회 승인없이(과거 판매한 상품과 기초자산 일부가 동일하다는 이유) 상품을 출시했다.

상품의 위험성을 판단하는 내부통제도 부실했다. 운용사들이 실시한 테스트(손실확률 0%)를 두 은행 자체 검증없이 100% 받아들였다. 우리은행에서는 내부 실무자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무시됐다.

상품을 판매한 직원들도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본점으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PB들이 상품을 판매하면서 원금손실 없는 안전한 상품으로 설명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상품출시와 판매과정 등에서 한번이라도 제동이 걸렸다면 이같은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모든 과정에서 내부통제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확대되는 내부통제 부실 책임 = 내부통제는 미국에서 처음 생긴 개념으로 기업이 공표하는 재무제표의 신뢰성 확보, 업무집행에 관한 법령의 준수를 촉진하기 위해 기업 내부에 설치되는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에는 주로 회계실무에서 재무제표 감사 영역에 국한됐지만 이후 기업경영 전반에 관한 문제로 확대됐다.

초창기 내부통제는 감사인을 위한 성격이 강했지만 기업의 범위와 규모가 확대되고 복잡해지면서 경영활동에 대한 효과적 통제를 위해 내부통제의 책임이 경영진에게 부여됐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규모 부실의 책임을 경영진에게 물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당자들에 대한 제재만으로는 금융회사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2008년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대표이사의 책임을 명시했다. 대법원은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대규모의 회사에서 공동대표이사 및 업무담당이사들이 내부적인 사무분장에 따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전담해 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다른 이사들의 업무집행에 관한 감시의무를 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상법을 기초로 이같은 판단을 내렸으며 금융당국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에 내부통제와 관련된 경영진의 책임을 명시하는 법률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 사례 6가지 유형 분류 = 금감원 분조위는 6건에 대한 배상결정을 내리면서 다른 분쟁사건은 은행과 투자자가 자율조정 방식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밝혔다. 분조위가 밝힌 배상기준을 토대로 은행이 개별 투자자의 배상비율을 산정해 합의를 진행하라는 것이다.

투자자가 은행의 배상비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추후 배상절차를 밟게 된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금감원 분쟁조정을 신청하지 못한다.

분조위는 투자경험이 없고 난청인 79세 치매환자가 DLF에 투자한 사건에 대해 손실액의 80%를 은행이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적금 11건을 중도해지해 DLF에 가입한 투자경험이 없는 60대 주부에게는 손실액의 75%를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은행이 투자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작성했고 '손실확률 0%'라고 강조했을 뿐 손실배수(333배 원금손실) 위험성은 설명하지 않았다.

DLF를 안전한 상품으로만 권유받고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투자자는 과거 투자경험(6회)이 있고 은행직원에게 자산관리 포트폴리오를 일임했다는 점 등이 고려돼 배상비율이 40%로 제한됐다.

11월 30일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DLF분쟁조정 신청은 276건이며 이중 210건이 만기상환과 중도환매로 손실이 확정됐다. 이번에 분쟁조정이 진행된 6건을 제외한 204건은 은행과의 자율조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DLF피해자대책위원회는 금감원 분조위가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책임을 20%밖에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어 자율조정 과정에서 마찰이 예상된다.

한편 금감원은 "현재 관련 수사가 진행돼 금번 분쟁조정은 불완전판매에 한정됐으나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재조정 가능함을 조정결정문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DLF 판매가 사기라는 법적 판단이 나올 경우 계약취소에 따른 투자금의 100% 반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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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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