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동등한 인간' 인식 적어 … "사회복지사 정의실천 교육, 전국적 조직 절실"

5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그간의 관주도, 돈 중심, 공급자 위주의 보건복지제도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인권과 편의성을 높이며 자주적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지역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갈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 곳곳에서 혁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나눠 사회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주>


보건복지부 산하 경상북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인 양만재 박사는 2017년 11월 15일 기관 사무실이 있는 포항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엉뚱하게도' 지진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양 박사는 지진 발생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가던 차에 외국자료에서 '지열발전소와 지진'이라는 연관고리를 찾게 됐다.

사진 김규철 기자

스위스에서 지열발전이 원인이 돼 '인공지진'이 발생한 사례를 확인한 것. 이후 양 박사는 여러 추론들을 더 정리해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으로 생긴 인공지진이라고 지역사회와 언론 등에 알리기 시작했다.

포항지역사회와 정부는 발칵 뒤짚어졌다. 포항시민들의 피해 규명과 보상 요구 목소리는 높아져 갔다. 지난 연말 '포항지진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양 박사는 지역토론회 등에서 지역민의 피해 해결에 앞장섰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2시 내일신문 본사 회의실에서 만난 양 박사는 '포항지진사건'을 기자에게 전하면서 한국사회 전문가집단의 비도덕성 문제를 지적했다.

양 박사는 "포항지진은 포항지열발전소의 입지 선정과 운영이 잘못된 결과"라며 "특히 지열발전소를 만드는데 참여한 기업, 학자, 정부와 산하기관 관계자들의 비전문성과 윤리 부재, 그리고 일정기간 내에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업적 지향적 행태(사업 시작 후 2년 내 성과를 내야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양만재 박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018년 11월 26일 커뮤니티케어에서 학대피해장애인 자립 관련 토론회에 참석 중. 사진 양만재 박사 제공


실제 연구와 사업을 추진하다보면 계획보다 늦어 질 수도 있는데, "지열발전으로 인해 지진 위험 가능성을 알고도, 안전을 무시하고 서둘러 밀어붙여 사고가 발생하는 인재의 매카니즘을 그대로 밟았다. 전문가의 윤리의식 결여가 재난 사태를 제공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양 박사는 설명했다.

◆포항지진사태는 전문성·윤리 부재 탓 = 이렇게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이 비도덕적 행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사회부작용은 "사회복지현장 전반에도 자리잡고 있다"고 양 박사는 지적했다.

한국의 사회복지계가 인권과 사회정의, 그리고 민주주의 실천을 내세우지만 현재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양 박사에 따르면, 한국 장애인 인권 지수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 없다. 2018년 비장애인의 인권 수준은 세계113개국 가운데 20위지만 사회권과 노동권은 30위대 순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의 인권 지수는 훨씬 더 낮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장애인의 소득보장수준은 OECD 국가에서 꼴찌이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환경에서 장애인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적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해 사회적 인식개선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양 박사는 "장애인이 돈이 생기면 친인척들이 '장애인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며 갈취하거나 착취한다. 발달장애인을 성적 도구로 대하는 사례도 흔하다"며 분개했다.

장애인인권침해사건을 대처하는 지역행정기관들의 업무행태 또한 인권옹호에 소극적이거나 침해를 무마하는 경우마저 있다.

예를 들면, 경북 A시의 K장애인시설은 친인척들이 운영하면서 장애인 폭행, 횡령, 사기 등 범죄 혐의로 신고 되었으나 수사 기소 처리되는데 무려 2년이 넘게 걸렸고 최근에야 공소장이 제출되어 재판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양 박사는 "장애인 거주시설을 토착유지가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인권옹호기관의 활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있다. 이는 토착유지들이 정치세력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운영자는 변해도 시설은 살아남는다는 이용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사회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양만재 박사(왼쪽에서 두번째)가 2019년 5월10일 포항지진공청회에 참석 중. 사진 양만재 박사 제공


◆지역시민사회, 인권중심 연대 실천 우선해야 = 포항지진사건이나 경북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인권침해 같은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시민들의 인권옹호활동이 강하게 연대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제시됐다.

그 연대활동에 지역 사회복지사의 실천이 강조된다.

양 박사는 "복지현장에서 매일 장애인 등을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이 인권·정의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며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협회가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적인 교육을 진행해야 하며, 예산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실천을 강조하는 사회복지학계에서 '인권과 사회정의 가치에 기반한 실천론' 교육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예를 들면 어느 정신병원에서 정신장애인이 병원남자간호사에게 일반적인 반응적 행동 즉 폭행을 했는데, 그 남자간호사가 장애인을 혁대로 묶고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양 박사는 "인권 교육을 귀로만 듣고 실제 현장에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정신장애인의 반응적 행동이 발생하면 행동을 제지하고 증상을 수습하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맞대응식 폭력이 장애인 관련 시설 등에서 자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양 박사는 끝으로 "한국사회가 자유·평등·평화로운 포용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역시민사회의 연대가 정치권력추구나 이익 챙기기보다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맺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양 박사는 경북대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강사, 대기업 기획실 근무, 언론사 논설위원 등활동을 하다 48세 늦깎이로 영국에서 사회학·복지학을 다시 전공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년째 경북지역에서 시민들의 인권옹호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정희 사회사업 독립연구자는 양 박사에 대해 "나이가 무색하게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열정. 특히 약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들의 권익을 높이고 역량을 키우는 실천에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 연재기사]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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