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내 밀레니얼세대 증가로 이미 '대세' … 저성장·초고령 사회 대안으로 부상

"‘호봉제’ 탈피한 ‘직무급제’ 확산" 에서 이어짐

직무급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은 단순히 급여지급 방식 변화가 아니라 인사관리·성과보상의 기준과 방식 등 인사시스템 전체의 전환을 말한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9월 기존 호봉제 중심의 인사문화를 성과중심으로 개편하면서 승진연한 제도를 폐지했다. 과거 이 회사 소속 과장이 차장으로 승진하려면 3~5년의 근속연수를 채워야 진급 대상자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제는 성과만 좋으면 차장·부장급으로 1년 만에 올라갈 수 있다. 성과보상 체계를 도입하면서 상대평가였던 직원 평가방식도 절대평가로 바꿨다. 단순 평가관점에서 벗어나 직원육성 관점의 성과관리와 상호협업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특히 평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과정에서 동료간 업무역량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연공서열 위주에서 '직무와 역할' 중심으로 인사제도를 바꿨다. 능력 있는 후배가 선배보다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인사제도가 직무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도 빨라졌다는 평가다.

교보생명은 올해부터 금융업계 최초로 직무급제를 일반직 전체로 확대하기로 노사 간에 합의했다. 급여의 일정 부분을 기준 직무급으로 분리해 부장·과장·대리·사원 등 직급이 아닌 직무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높은 직급이어도 자신의 직급보다 낮은 직무를 수행한다면 직무급이 낮아지면서 연봉도 줄어든다. 다만 직무급제의 구체적인 운영체계를 놓고 노사 간에 다툼이 있다.

◆변화에 가속도 붙는다 = 변화 속도는 빨라질 전망이다.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숫적으로도 기업 내부에서 대세로 자리잡은 이른바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중심으로 '연공서열 중심의 낡은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코트라가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직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 참여자 398명 중 315명(79%)이 찬성을 했다. 투표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선배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됨에 따라 젊은층의 참여도가 높았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젊은 세대들은 연공서열 중심의 호봉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지난해 고용부가 실시한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급을 기본급 운영체계로 하는 사업체가 전체의 58.7%로 꾸준히 줄고 있다. 2016년 63.7% 2017년 60.3% 2018년 59.5%였다.

뿐만 아니라 저성장 시대, 노령화로 대표되는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임금구조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호봉제가 과거 고도성장기에 노동자들의 기업 소속감을 높이고 숙련 노동자를 배출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 기업도 함께 성장하며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더라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연 3% 미만인 저성장이 지속되고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켜 청년들의 신규 채용 여력을 감소시키거나 중·고령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호봉제가 더 발달돼 있고 호봉간 격차 또한 더 크다는 점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확대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공성에 따른 임금격차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임금 연공성 국제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년 미만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이 약 3.3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의 약 2배에 이른다.

2018년 6월 기준 고용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100%로 했을때 300인 이상 비정규직 사업장은 63.2% 수준의 임금을, 300인 미만 정규직 사업장은 56.8%, 300인 미만 비정규직 사업장은 41.8% 수준이다. 특히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호봉 때문에 임금격차가 크거나 서로 다른 일을 하더라도 호봉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되는 등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반하거나 임금 공정성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일방통행은 반발만 불러 = 문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반대하는 노동조합과 장년층 직원들의 반발이다. 실제로 코트라의 경우도 노조원 659명 중 투표 참여한 인원이 398명(60%)에 그쳤다. 또 투표인원 중 21%는 반대했다. 처음 시행하는 제도다보니 장년층을 중심으로 부담을 느끼는 직원이 많다는 게 회사측 분석이다. 현재 어떤 보직을 맡고 있느냐에 따라 당장 올해 연봉이 차이날 수밖에 없는 점도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현실에서는 회사의 일방적 추진으로 노사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지어 악독기업주가 직무급제를 임금삭감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또 노·사간 대화를 통해 추진하더라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유·불리만 주장해 협의가 난항을 겪거나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노사간 충분한 소통과 준비 그리고 합의를 문제해결의 열쇠로 보고 있다.

실제로 코트라는 지난해 보수체계 합리화를 위한 외부 컨설팅을 진행하고 5차례의 직종별 공청회와 직원투표를 거쳤다. 삼양사의 경우도 노사간의 신뢰와 합의 그리고 합리적 운영을 위한 지속적인 개선과 보완 노력이 성공의 열쇠였다. 도입 당시 불만이 있었던 직원들과의 대화와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율 과정을 충분히 거치면서 오해와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민간기업의 직무급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데 대해 "노사 대화를 거쳐야 할 문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던지는 것은 문제"라며 "기업은 아직 준비가 안 됐고 노동계는 직무급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성과연봉제를 공공기관에 도입할 당시 정부의 일방통행이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이런 지적을 의식해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기업의 임금체계는 정부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당사자 간 협의와 소통을 통해 노동자들이 수용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바람직한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노·사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사례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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