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 투자에 베팅한 투자자들 위험 직면, 불완전판매까지 더해져 … "금융소비자보호 전면 재점검해야"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에 이어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의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모펀드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불거진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은 만기일에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해, 전체 투자금의 절반 가량이 상환을 연기한 상태다.

시장의 저금리 흐름과 맞물리면서 사모펀드에 투자금이 몰렸고 2016년부터 공모펀드 투자규모를 앞질렀다. 특히 2015년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최소투자금 규모를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완화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저금리와 규제완화, 여기에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모펀드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어졌다. 하지만 고수익률을 얻기 위한 투자는 필연적으로 고위험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사모펀드의 환매중단 사태는 예견된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사모펀드 사태는 단순한 투자 실패의 문제를 넘어서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DLF)와 사기의혹(라임자산운용) 등이 더해져 자본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게 문제다.

독일 헤리티지 DLS 역시 금융감독원이 법규 위반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어 불완전판매 등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70~80대 고령자도 헤리티지 투자 = 독일 헤리티지 DLS는 투자 위험이 적다며 판매한 상품이다. 독일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기념물보존등재건물'을 주거용으로 개발하는 사업(리모델링)에 투자하기 때문에 분양이 이뤄지면 분양대금으로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고, 분양이 원활하지 않더라도 은행대출로 상환이 가능하다는 게 판매사들의 판단이었다.


인허가와 분양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현지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Dolphin Trust GmbH)의 신용을 통해 원리금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들이 가능하지 않게 됐고 건물의 소유권에 대한 질권행사와 선수위 자격을 바탕으로 시장에 재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판매사는 증권 발행사들이 파산하지 않은 한 원금손실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부동산 가격 변동이라는 변수와 함께 건물에 대한 담보권 설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해외금리연계 DLF 사태와 마찬가지로 독일 헤리티지 DLS에도 고령자들이 투자했다. 투자자들의 연령대를 보면 우리은행은 전체 55명의 투자자 중 50세 이상이 46명으로 83.6%를 차지하고 70~80세 미만은 9명, 80세 이상은 3명으로 나타났다. KEB하나은행도 전체 투자자 106명 중 50세 이상이 80명을 차지하고 있다. 70~80세 미만은 15명, 80세 이상은 3명이다.

투자규모가 가장 큰 신한금융투자와 다른 증권사들의 경우 연령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70세 이상의 비율이 20% 가량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금리연계 DLF의 경우 투자자 중에서 70세 이상의 비율이 KEB하나은행은 28.1%, 우리은행은 16.9%를 차지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리는 성장률에 연동되기 때문에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 저금리는 필연적"이라며 "저금리에 투자수익률이 낮아지면 고령자들은 생활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수익 금융상품에 투자하려는 성향이 커진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수익률이 좋다는 것은 반드시 그에 따른 위험이 따르는 것인데, 경제 성장의 둔화로 저금리가 되면 개인들은 고수익을 좇다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투자자산 깜깜히 운용, 기관들도 불안 = 사모펀드의 잇따른 환매중단과 만기연장 사태는 기관투자자들의 불안감도 키우고 있다.

최근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 알펜루트 자산운용의 사모펀드는 비교적 안전한 기업들을 투자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하지만 라임사태로 홍역을 겪은 증권사들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총수익스와프(TRS) 자금 회수를 결정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의 자금회수는 개인투자자들의 자금회수 등으로 이어져 연쇄적인 '펀드런'이 발생할 수 있다.

금감원이 28일 자산운용사와 TRS계약을 맺고 자금을 대여해준 증권사들과 긴급회의를 연 것도 이같은 우려에서다. 국내 증권사들이 자산운용사와 맺은 TRS 규모는 2조원 가량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증권사들은 금감원과의 긴급회의 자리에서 자산운용사들의 자금 운용내역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펀드에 돈을 빌려주는 TRS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이 펀드의 운용내역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아는 것도 현행법상 막혀있어서 불투명하다는 하소연을 했다"며 "돈을 빌려줬는데 운용보고서를 데일리로 주는 것도 아니고 문제없다고 했는데 나중에 부실이 나고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니까, 펀드와 관련된 TRS를 안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사모펀드가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투자했는지 알기 어렵다. 운용보고서와 수익률 등을 주기적으로 투자자에게 보고하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보고의무가 없다.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에 따른 결과다.

판매사의 요청이 있으며 운용보고서를 제공하지만 한달 가량 지난 내용이고 구체적인 투자 내역이 담긴 것도 아니다. 상호 신뢰가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라임 사태 등으로 신뢰에 금이 간 상태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펀드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회사, 소비자 신뢰 회복해야 = 기관투자자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시급하다.

박 선임위원은 "최근 사모펀드 사태 등을 보면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을 오롯이 개인의 탓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투자자들이 자본시장에 돈을 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이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규제"라며 "금융소비자 보호 규제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다른 주요국과 비교하면 아주 미흡한 게 현실이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소비자보호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법(금소법) 제정안은 발의된 지 9년이 흘렀지만 폐기와 발의를 거듭하면서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제정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가 멈춰져 있다. 해당 법률 제정안 마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빠져있어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보호 규제에 대해 금융회사들이 영업을 옥죄고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며 "금융회사들이 수수료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수익을 위해 최선의 권고를 한다는 신뢰가 쌓이면 결국 금융회사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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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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