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임차기간 1→2년 연장 후 개선내용 없어 … 정부.여당 법개정 합의하고도 소극 대응

설 명절 직전인 22일 오전 광화문광장. 주거세입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세입자·청년·노동·주거 시민사회 등 100여개 단체로 구성된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꼭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4명(38.3%)은 세입자다. 2018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3.1%는 월세, 15.2%는 전세에 살고 있다. 특히 수도권 자가점유율은 49.9%에 불과하다. 절반(50.1%)이 남의 집에 세살고 있는 셈이다. 청년세대의 경우엔 5가구 중 4가구가 임차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2월 임시국회 세입자 보호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거약자를 위한 보호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다. 1989년 이후 30년째 큰 내용 변화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산이 세번이나 바뀌었건만 법은 변화된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30년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법무부와 민주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계약갱신청구권'이 포함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처리를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가 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현행법 세입자 보호에 취약 =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민법의 특별법이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민법보다 우선하는 법이다. 1981년 3월 제정 당시에는 ‘대항력’ 부여가 주목적이었다. 임대차 등기가 없어도 임차인이 주택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치면 다른 권리에 비해 우선보호하는 내용이다.

1983년 개정을 통해 차임 등의 증감청구권, 소액보증금 우선변제권이 추가됐다. 1989년엔 임대차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다.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보증금 우선변제권과 소액보증금 최우선변제권을 이때 도입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이후 지난 30년간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세입자 보호의 핵심은 ‘임대기간 보장’과 ‘임대료 규제’다. 이 기준에서 볼 때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매우 미흡하다.

우선 보장하는 임대기간이 짧다. 보장기간 2년이 30년간 유지되고 있다. 계약해지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기간제한 없이 계속 거주할 수 있는 독일, 계약기간을 3년으로 하되 사실상 갱신을 인정하고 있는 프랑스 등과 비교할 때 턱없이 짧다.

우리 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권’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적극적인 계약갱신 대신 ‘묵시적’ 갱신만 인정하고 있다.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1개월 전까지 갱신을 거절하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한다는 통지를 하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연장된다. 2년의 임대차기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계약이 끝난다.

그러면 임차인은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여 재계약하거나, 이사해야 한다.

임대료에 대해서도 현행법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임대차보호법도 임대료 인상을 규제하고는 있다. 1년에 5% 범위에서만 인상토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계약갱신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들 규정은 무용지물이다. 2년 계약기간이 끝난뒤 임대인이 마음대로 5% 이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임차인이 인상안을 수용하면 재계약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

김대진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무주택자의 실질적인 주거안정을 위한 보호장치가 전무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세입자보호 핵심은 ‘기간’과 ‘임대료’ =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인상 상한제 도입요구가 거세다. 이들이 세입자 보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UN사회권규약위원회는 2017년 10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권고문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민간부문의 치솟는 주거비를 규제하기 위한 매커니즘 도입, 임대차계약갱신권 부여를 권고했다. 2018년 5월 방한한 레일라니 파르하 UN주거권 특별보고관도 정부에 계약갱신권 보장과 임대료 상한제 도입을 주문했다.

정부 용역보고서도 계약갱신권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2018년 12월 나온 법무부의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 관련 연구’ 보고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처럼 갱신청구권 규정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주택임대차 갱신청구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횟수나 기간 제한없이 인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내고 있다.

임대료 인상과 계약갱신은 동전의 양면이다. 2년마다 재계약하거나,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하면서 임대료를 새로 책정하다보니 그때마다 임대료가 오른다.

임대료 상한 제한은 갱신청구권 도입의 필요조건이다.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과 계약하더라도 보증금과 월세를 함부로 올릴 수 없다면 굳이 기존 임차인을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계약기간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고, 갱신청구권에 강하게 반발할 이유가 줄어든다.

유기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임대인이 계약기간을 가능한 짧게 설정했던 것은 결국 보증금 및 월임대료를 인상하기 위함”이라며 “임대료 인상 상한제 등 임대료 기준을 명확히 한다면 계약기간 논쟁은 필요없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제출 법안 자동폐기 위기 = 국회에는 현재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인상 상한제를 담고 있는 12개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대부분 계약갱신청구권 1회를 인정, 총 4년(2+2년)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총 6년( 2년 2회 또는 3년 1회)이나 제한없는(임차료 연체 등 일정한 사유가 없는 한) 갱신청구권을 인정하는 개정안도 있다.

임대료 인상률 제한에 대해서는 법에 일정한 상한선을 두되, 구체적인 수치는 하위법인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통계청 월별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비율의 2배와 약정한 차임이나 보증금의 연 5% 중 낮은 금액을 선택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 이들 법안이 자동폐기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2월 임시국회가 마지막 기회다. 이를 넘기면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정부와 여당이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야당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선거법, 공수처법, 유치원3법 등을 처리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정부 진의가 의심받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이달 중순 언론 인터뷰에서 “토대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시기상조론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박효주 참여연대 간사는 “2월 국회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의 의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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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주택임대정책 현안점검" 연재기사]

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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