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스타트업들 파산신청 많아" … 조선 협력업체 무너지면서 감소하던 개인파산 다시 증가세로

지난해 전국 법원의 법인 회생·파산신청 건수는 2006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 제정 이후 가장 많았다.

서울회생법원은 법인 파산신청이 급증한 반면, 법인 회생신청은 오히려 줄었다. 다른 지방법원은 파산신청 사건에 큰 변동이 없었지만 회생신청 사건이 증가했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뚜렷하게 벌어졌다.

14일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최근 서울지역에서 파산신청을 하는 법인들은 기반시설이 별로 없는 스타트업들이 많아서 회생 보다는 파산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회생 보다는 아예 문을 닫겠다는 것이다.

법인 파산 신청건수는 굴곡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증가추세다. 2015년 587건, 2016년 740건, 2017년 699건, 2018년 806건, 2019년 931건을 기록했다.


법인 파산과 마찬가지로 법인 회생신청도 증가추세지만 둘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의 법인 파산 신청건수는 2015년 307건에서 2019년 445건으로 138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법원의 증가건수(344건) 중 40.1%를 차지했다. 대전·창원지법이 각각 5건 증가했고 울산지법은 2건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른 곳은 감소했다.

반면 서울회생법원의 법인 회생 신청건수는 2015년 390건에서 2019년 343건으로 47건이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 법원에서는 78건 증가했다.

법원 관계자는 "법인 회생은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제조업체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신청을 하지만 파산신청은 새로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주로 신청하기 때문에 업종별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법인 회생신청 155건, 파산신청 145건으로 2018년 각각 86건, 87건인 것과 비교하면 급증했다. 급증 이유는 관할지역 변경 때문이다. 그동안 경기도 지역에 위치한 업체들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파산신청을 하는 게 가능했지만 지난해 수원고등법원이 생기면서 수원지법에만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법인 파산·회생, 개인파산에 시간차 영향 = 조선 협력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부산지법과 울산지법 관할지역의 법인 회생신청 사건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 감소했다.

부산지법은 2016년 45건, 2017년 48건, 2018년 51건으로 사건이 증가했지만 2019년 38건으로 줄었다. 울산지법은 2016년 21건에서 2017년 26건, 2018년 40건으로 증가했지만 2019년 36건으로 감소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8년 성동조선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STX조선은 산업은행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협력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창원 부산 등 경남지역 제조업체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파는 시간을 두고 개인파산의 증가로 이어졌다.

전국 법원에 접수된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은 4만5642건으로 전년(4만3402건) 대비 5.1% 증가했다. 서울회생법원에 신청된 사건은 2018년 9406건에서 2019년 9383건으로 줄어든 반면 창원지법 사건은 2018년 2947건에서 2019년 3499건으로 18.7% 증가했다. 부산지법은 7.4%, 울산지법은 11.9% 증가했다. 다른 지방법원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 지역의 증가율이 눈에 띈다.

2018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많았던 지역이 1년이 지난 이후 개인파산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대전·충남과 대구·경북지역의 법인 회생신청이 증가하면서 올해는 이들 지역의 개인파산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기업 구조조정 크게 줄어 = 중소기업들의 파산·회생 신청은 증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대기업 구조조정은 크게 줄었다. 기업 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부장판사에게 주심을 맡기는 사건의 기준을 변경했다. 당초 부장판사가 담당하는 법정관리 기업의 부채기준은 3000억원이지만 기준을 총족하는 기업이 없어 1000억원 이상으로 변경했다. 부채기준을 낮췄지만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회사는 10건이 채 안된다. 비교적 큰 기업으로 분류되는 곳도 부채규모는 대략 500억~600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들이 실시한 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된 210개사 중 대기업(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은 9곳에 그쳤다. 부실징후기업은 전년 대비 20개 증가했지만 대기업은 1개 감소하고 중소기업은 21개 늘었다.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는 "기업 M&A를 위한 정책자금이 증가하고 사모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력있는 기업의 경우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기 전에 시장에서 M&A가 이뤄지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자금이 자본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법원에서 매각이 결정된 일송개발은 레이크힐스용인컨트리클럽(CC)와 레이크힐스안성골프클럽(GC)을 운영하는 업체다. 일송개발의 매각을 놓고 채권자들이 의견조율에 어려움을 겪을 당시 시장에서는 일송개발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외부에서 인수할 자금이 충분하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법원으로 들어오는 사건은 파산 직전이거나 권리관계가 상당히 복잡해서 법원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라며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상당수 마무리된 반면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회생신청 증가 전망 = 또 하나의 위기 신호는 자영업자들의 회생신청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채무액 10억원 이하는 개인회생신청으로 법원에 접수를 하지만 채무액이 10억원 이상 30억원 이하인 경우는 별도의 사건번호(회단)를 부여받는다.

이들 사건의 전국법원 접수추이를 보면 2015년 855건에서 2016년 741건, 2017년 573건으로 감소하다가 2018년 683건, 2019년 719건 등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대출 등으로 버티고 있던 자영업자들도 무너지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대전·대구·울산·창원 등 조선·자동차 협력업체들의 회생신청이 증가한 곳과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구조조정 전문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가 건물 등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등의 영향으로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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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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