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국학자 "샌더스 대통령 현실화할 수도"

코로나19 감염증이 발원지인 중국 밖으로 확산하면서 전문가들은 감염증 대확산 위기에 있다고, 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극적인 변화를 꿈꾸고 있다. 현대의 대규모 전염병이 이를 촉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탈리아 중국학자로 런민대 선임연구원인 프란세스코 시스치는 26일 '아시아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버니 샌더스는 지금까지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감염증과 그에 따른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은 몇달 전만 해도 그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트럼프 대세론을 경계했다.

그에 따르면 옳든 그르든 좌파든 우파든 미국인은 과감한 변화를 원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반기득권층을 자극했고,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기득권을 대변했다. 현재 민주, 공화 양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트럼프와 샌더스 후보 모두 반기득권을 외치고 있다. 이는 현존 기득권 주류에 신물 난 미국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

트럼프의 지난 대선은 이전 행정부와 비교하면 극적인 전환이었다. 건국 초기 앵글로색슨의 나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트럼프는 미국 총인구에서 수적으로 소수인 백인의 요구에 적극 부응했고, 현재도 부응하고 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인구가 적은 곳은 여전히 백인이 다수다. 시스치 연구원은 "선거인단 독식제라는 규정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영광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그의 호소력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트럼프는 백악관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냉전의 종식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은 경제의 글로벌화를 추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정치적, 군사적 개입을 추진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다소 조정됐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도 비록 미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는 방향이 아니었지만 변화를 알리는 대통령이었다.

사회과학자, 경제학자들은 소득 불평등 심화를 지적한다. 또 중산층의 붕괴를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정치시스템에서 공민권을 박탈당한 느낌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계 미국 철학자로 보스턴대 명예교수인 안젤로 코데빌라는 미국이 공화정에서 제국주의로 전환하는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고 경고한다.

냉전의 승리로 미국은 소련과 나누던 글로벌 패권을 독차지했다고 여겼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무역의 글로벌화는 약속했던 결실을 미국에 100% 제공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에 정치,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거나 미국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열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같은 전쟁은 미국의 금고를 바닥내고 자원을 고갈시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산파 역할을 했다.

게다가 새로운 야심으로 무장한 러시아가 무력했던 과거를 떨치고 다각도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침범하고 있다. 터키와 같은 동맹국들도 과거와 달리 미국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관심사는 오로지 중국인 듯 보인다. 점진적이지만 응집력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이나 중국과 전면적 무역갈등을 택한 트럼프 행정부를 보면 미국의 우선순위엔 확실히 아시아와 중국에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절대적' 초강대국이 아니라 여전히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특히 코로나19와 홍콩 시위의 지속 때문에 중국의 경제 성과가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시스치 연구원은 "결국 미국의 도전과제는 3갈래로 펼쳐진다"고 분석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1950~60년대 부유한 미국을 만들었던 중산층을 재건하는 것, 그리고 냉전 승리에 기여했던 동맹과의 정치적 연계성을 복원하는 것 등이다.

1989년 이후 미국은 마치 냉전에서 홀로 싸워 이긴 것처럼 행동했다. 동맹인 일본이 1980년대 미국 경제와 기술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면서, 그리고 1990년대 초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동맹국들이 달러패권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통화인 유로화를 구상하고 출범시킨 사실도 작용했다.

일본의 경제적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달러에 대한 유로화의 위협도 실제 현실화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새로운 또는 오래된 동맹국과의 관계, 글로벌 전망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했다.

중국과 전 세계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까지 미국 월가의 심리는 여전히 탄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선 본선에서 만날 것으로 보이는 버니 샌더스의 운명이 마치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도전한 조지 맥거번과 닮았다는 분석에서다. 당시 급진적이라 불렸던 맥거번 후보는 본선에서 참패했다. 그처럼 시장친화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주의자 샌더스를 압도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그같은 심리는 월요일 여지없이 무너졌다. 코로나19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시장을 강타하면서다. 백악관은 의회에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긴급자금을 요청했다.

글로벌 경제에 가하는 고통의 충격은 코로나19 위기의 깊이와 기간에 달렸다. 현재 중국에서 새로운 감염자수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전역의 모든 경제활동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일어나는 효과다. 2003년 사스 위기와는 다르다는 분석이다. 당시는 기본적으로 베이징과 광저우에 한정됐다. 코로나19는 중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있다. 중국 내 모든 도시는 각기 다른 수준이긴 하지만 사실상 격리돼 있다.

중국 내 일부 공장이 재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 경제를 사실상 올스톱시킨 대가로 봉쇄되고 있다. 매출은 줄고 가격은 오르고 있다. 거대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중이다. 이미 2019년 하반기 대규모 돼지독감이 발생해 중국인의 주식인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했다. 이는 전체 식료품 공급망을 강타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던 차에 코로나19 상황이 추가된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증은 진단하기 어렵고 잠복기가 길다. 만약 중국이 성급히 현재의 격리와 제한을 해제한다면, 감염은 다시 확산돼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 현실이다. 한국과 이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급속 확산된 건 이 바이러스가 중국 밖에서 여전히 통제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다시 중국 내에 확산될 수 있다.

중국 경제학자들은 현재의 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올 1분기에 이어 2분기 경제활동도 강타할 것이라는 점을 수긍하고 있다.

미국 최고 기업인 애플은 생산과 판매 1/3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중국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의 큰 폭 감소를 선언한 상태다.

중국은 1700억달러 자금을 긴급 지원하며 홍콩시장을 부양하고 있다. 위기가 심각해질 경우 3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허물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월요일 한국 증시가 3% 하락하고 이탈리아 증시가 마이너스 4%로 시작했다가 마이너스 6%로 마감했다. 미 월가는 3% 이상 빠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글로벌 '팬데믹'(대유행 감염증)이 되기도 전에, 전 세계 금융시장을 먼저 강타하고 있다. 이번 주는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미국 역시 극심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대선은 아직 9개월 남았다. 많은 이들은 코로나19가 사그러지면 미 경제가 강한 반등세를 나타내리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2003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이탈리아보다 적었다. 지금은 4배가 넘는다. 당시 미국의 적은 이슬람 테러조직이었다. 이제는 중국이 적이다. 당시 사스 위기는 돌발적 사고로 보였다. 이제 코로나19 감염증과 같은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재발하는 시스템적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변수는 다양하다. 그중 하나는 코로나19가 대확산으로 이어져 미국 시장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스치 연구원은 "그런 상황에다 미국 내 반기득권 정서가 깊어지면, 샌더스 대통령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약 반세기 전 맥거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닉슨을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샌더스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앞서기도 한다. 만약 미국에 경제위기가 닥친다면 트럼프는 떼어놓은 당상처럼 재선을 자신할 수 있을까.

물론 샌더스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위해선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레닌처럼 혁명가 스타일이 아닌, 루스벨트처럼 개혁가 스타일이라는 점을 주류 기득권에게 재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 해도 그는 미국 중산층의 운명을 개선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시스치 연구원은 "샌더스 대통령은 현재 터무니없는 가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9개월 전만 해도 예상치 못한 대규모 바이러스감염증이 발생해 글로벌 경제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는 예상은 샌더스 대통령 가능성보다 더욱 터무니없는 가정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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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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