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워싱턴포스트

첫 번째 파장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1918년 봄 새로운 독감이 1차 세계대전을 치르던 유럽의 군부대를 강타했다.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전선 양편의 군인들이 감염됐다. 하지만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해도 영국과 프랑스, 독일, 기타 유럽 정부들은 독감 발병 사실을 감췄다. 약점을 드러내면 적국의 사기를 높여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반면 스페인은 1차 대전 때 중립국이었다. 독감이 발병하자 정부와 언론은 정확하게 그 사실을 알렸다. 심지어 국왕까지도 독감에 걸렸다.

몇달이 흘렀다. 더 거대하고 치명적인 파장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러자 독감이 스페인에서 발원한 것처럼 인식됐다. 스페인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바이러스는 결국 '스페인독감'으로 명명됐다.

현재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급속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한 역사학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최악의 대유행병 중 하나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진실을 감추지 말라"고 경고했다.

'엄청난 독감 :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이야기'(The Great Influenza: The Epic Story of the Deadliest Plague in History) 저자인 존 M. 배리는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상황에 가장 그럴듯한 구실을 대려고 노력하고 있고, 정보를 통제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페인독감의 2차 파장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유럽에선 전면적인 언론검열이 진행됐다"며 "미국에선 그만큼 강도가 높진 않았지만, 부정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말라는 압력이 거셌다"고 말했다.

배리에 따르면 1차 대전 소식은 미국 공공정보위원회(CPI)가 주도면밀히 통제했다. 독립적인 연방기구다. 당시 위원회를 설립한 아서 벌라드는 "정보의 힘은 감동을 주느냐 여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며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CPI는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는 내용의 긍정적 보도자료를 수천건 생산했다. 신문들은 종종 자료 그대로 보도했다. 1918년 가을 스페인독감이 미국 전역에 퍼지자 정부와 언론은 사기를 북돋기 위해 장밋빛 홍보전략을 지속했다.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그 어떤 대국민 담화문도 발표하지 않았다. 미국 보건총감이었던 루퍼트 블루는 "적절한 예방이 시행된다면, 대중에 경고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건당국의 또 다른 고위인사도 "일반적인 독감에 다른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스페인독감 치사율은 2%였다. 일반적인 계절독감보다 훨씬 높았다. 사망자의 연령대도 달랐다. 계절독감은 보통 영유아나 고령층에 집중됐다. 반면 스페인독감은 청년층에 치명적이었다. 군대에 징집된 군인들이 대표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언론들은 정부의 정보통제 지시를 따르거나 자기검열을 시행했다. 배리에 따르면 이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경우 시청 관료들이 도시 역사유적을 순회하는 대규모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예정된 이벤트 직전, 1차 대전 전장에서 돌아온 약 300명의 군인들이 시내 곳곳을 돌며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배리는 "모든 의사들이 기자들에게 '퍼레이드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이를 기사로 썼지만 데스크 간부들이 '킬'했다"며 "결국 필라델피아 언론들은 아무것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48시간 뒤 스페인독감이 필라델피아를 강타했다. 학교는 폐쇄됐고 대중 집회는 금지됐다. 배리에 따르면 그때까지도 시청 관료들은 '이는 공공보건조치가 아니다"라며 "특별히 독감을 경고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 됐다.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수습되지 못한 채 여러 날 자기집 침대나 거리에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공동묘지에 집단으로 묻혔다.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에 따르면 당시 1만2500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했다.

어떤 한 신문이 진실을 보도하려 하면 정부는 그 언론사를 위협했다. 위스콘신주 언론 '제퍼슨카운티유니언'이 1918년 9월 27일 스페인독감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며칠 뒤 한 군사령관이 해당 언론이 보도가 군대의 사기를 꺾었다며 '전시반란법'을 적용해 고발했다.

그해 10월 팬데믹(세계적 유행 감염병)이 거세지면서 미국인들은 정부에서 말하는 상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됐다. 배리는 "신뢰의 위기는 가짜 치료법, 과도한 경계심으로 이어져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지적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스페인독감은 결국 전 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 미국에서만 67만5000명의 사망자를 양산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을 논의하던 윌슨 대통령마저 감염됐다.

배리는 "스페인독감의 첫 번째 교훈은 감염증으로 인한 패닉을 막으려면 일단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코로나19와 관련, 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을 최상의 시나리오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질환연구소 앤서니 포치 소장이 아니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사령탑으로 내세운 것에 우려했다. 그는 "1918년' 정부가 신뢰를 잃은 것을 봤을 때, 펜스의 사령탑 임명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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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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