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짓을 닷새마다 하라는 거냐” … “마스크 조달도 못하는 정부가 무슨 큰일 하겠나”

귀성 티켓 구매 행렬보다 더 긴 마스크 구매행렬 | 2일 오후 마스크 공적 판매처인 서울 양천구 행복한 백화점 앞에서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2일 오후 12시 30분, 은평구 서서울농협하나로마트 앞. 어림잡아 300명 이상 주민이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섰다. 사람들 사이에선 “나까지 살 수 있긴 한가?” “세개씩 들어있는 한묶음에 5800원이라네” 등 이야기가 나왔다. 잠시 뒤 농협 직원이 나와 줄선 사람 수를 한명 한명 셌다. “여기서부터는 오늘 마스크 사실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줄선 이들 항의가 빗발친다. 앞서 마스크를 받아 나오는 한 어르신은 “한봉투에 다섯 개 들었으니 이 짓을 닷새마다 하라는 거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어르신은 “마스크도 제대로 조달 못하는 정부가 무슨 큰일을 하겠나”며 혀끝을 차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정부의 마스크 수급대책이 나온 지 닷새가 지났지만 국민들의 원성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는 ‘공적 마스크’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사재기 심리까지 겹쳐 마스크 구매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민원을 해소해야 할 기초지자체들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기초단체장과 지자체 관계자들은 ‘마스크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생산량을 늘리고, 과수요를 억제하면서 무상배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일 전국 지자체들에 따르면 정부의 마스크 수급대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다. 하루 최대 생산량이 1200만장인데, 정부가 공적 물량으로 절반을 가져가고 나머지 600만장이 일반에 판매되는 상황이다. 전 국민의 20%인 1000만 명이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절대량이 부족하다. 때문에 공장을 지어서라도 생산량을 늘리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지역 한 단체장은 “ 대도시일수록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면서 “양산체제를 갖춰서라도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 한 공급량을 맞출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마스크 생산을 늘리는 것만큼 '과수요'를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스크를 갖고 있어도 불안한 마음에 마스크를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 서울 자치구 관계자는 "어느 어르신 자택을 방문하니 40장을 갖고 있더라. 여기저기서 받아서 불안하니 계속 모은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1억장 공급해도 줄서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들이 권고하는 '이동제한'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외출을 자제하면 마스크 쓸 일이 없는 만큼 올바른 마스크 사용과 이동제한 캠페인 등을 병행할 때 수요조절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마스크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면 약국에서 건강보험카드 등을 활용해 실명판매제를 도입하거나 동사무소 등 행정체계를 활용해 '노마진' 판매(배부)를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재준 경기 고양시장은 '마스크 거래 실명제' 도입을 촉구했다. 이 시장은 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대안은 '마스크 실명제'밖에 없어 보인다"며 "불필요한 대기시간과 사재기를 줄이고 두 번, 세 번 헛걸음을 막는 큰 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실명제와 함께 1인 2~3장의 제한판매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마스크 물량이 확보될 수 있다면 약국에서 건보카드로 실명을 확인해 판매하는 게 효율적"면서 "재난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마스크 제작원가를 고려하면 정부가 행정망을 통해 무상배부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 세대별로 공급하면 날짜와 시간을 배정받아 혼란과 일방적인 수급을 방지하고 세대가 고르게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일부에 편중될 수 있는 수급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세대별 공급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원시 등 지자체 관계자들도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면 동사무소를 통해 '노마진' 판매하거나 통·반장 등 행정체계를 통해 무상배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대처가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자체들이 감염병 국내 발생 이후 마스크 물량 확보에 나선 것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부산시 기장군은 지난 1월 말부터 마스크 제조업체들과 공급계약을 맺어 물량을 확보, 전체 주민에게 무상배부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와 충남 논산시도 지역 소재 마스크 제조공장과 계약을 맺어 저소득층 등에게 공급했다.

복수의 지자체 관계자들은 "중대본이 미리 예측해 마스크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수 있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지 40일이 지났는데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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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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