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배포인데 10시부터 줄

약국은 이미 동나, 우체국서도 허탕

2일 오후 12시 30분, 은평구 서서울농협하나로마트 앞. 어림잡아 300명 이상 주민이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섰다. 오늘부터 농협에서도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모인 동네 주민들이다. 사람들 사이에선 "나까지 살 수 있긴 한가?" "세개씩 들어있는 한묶음에 5800원이라네" 등 이야기가 나왔다. 잠시 뒤 농협 직원이 나와 줄 선 사람 수를 한명 한 명 셌다. "여기서부터는 오늘 마스크 사실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줄 선 이들 항의가 빗발친다. 대부분 어르신들인 대기자들은 직원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공식 판매 시작 시간이 오후 2시였지만 줄은 10시부터 늘어섰다. 앞에서 마스크를 받아 나오는 한 어르신은 "한봉투에 다섯 개 들었으니 이 짓을 닷새마다 하라는 거나"며 불만을 터뜨렸다.



187번째. 간신히 마스크를 샀다. 무슨 복권이라도 당첨된 기분. 내 뒤로 남아 있는 마스크 물량은 대략 10개. 재고가 바닥을 보이자 새치기가 시작됐다. 한 어르신은 직원 제재를 받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계산대를 향했다. 부인에게 자리를 맡게 하고 볼 일을 보다 온 한 어르신은 뒷줄 젊은이들과 한참을 실랑이 하다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떴다. 이날 농협에 준비된 물량은 고작 200개.

농협에서 마스크 구입에 실패한 주민들은 약국을 향했다. 하지만 약국 입구엔 이미 '공적마스크 품절' 문구가 붙었다. 발길을 돌리는 주민들 틈으로 약국에 들어가 물으니 오늘 입고량은 100개뿐. 오전에 이미 다 동이 났다고 했다. 일회용이라도 있냐고 하니 그건 아예 못 본지 오래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군가의 "우체국에서도 판대요"라는 이야기에 10여명 주민이 우체국으로 발길을 향했다. 하지만 우체국 입구에는 '서울·수도권에서는 마스크를 우체국에서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떡하니 걸려있었다. 허탈해하며 발길을 돌리는 어르신들은 "인터넷 못하는 나같은 늙은이는 도대체 어디서 안내를 받으란 말이냐?"며 한숨을 쉬었다. 한 어르신은 "내일은 아예 아침밥도 거르고 약국에 가봐야겠다"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쏟았다.

이후 2시간 넘게 약국 20여곳을 돌아다녔다. 정말 하나도 더 살 수 없는지 궁금했다. 대부분 오전에 물건이 동났다고 했고 '마스크 품절'이란 안내가 붙어있는 곳이 다수였다. 병원 내 확진자 발생으로 손님이 뜸할 것 같은 은평성모병원 근처 약국에서 간신히 1봉(마스크 3장)를 더 살 수 있었다. 약사는 "더 이상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곧 병원이 정상화될 것 같대요"라며 "손님처럼 생각하고 등잔 밑 찾아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4시간을 돌아다녀 마스크 8장을 샀다. 축하까지 받으며. 오늘 구매에 성공한 마스크들은 부모님께 보내드리기로 했다. "우리는 외출 안하면 되니 밖에 돌아다니는 네가 써라"고 만류하는 부모님 댁에 택배를 부치기 위해 다시 우체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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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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