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메드 엘-에리안, 앤서니 롤리 등 전문가

블룸버그 "미국 이미 경기침체 진입했을 수도"

코로나19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국의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급속히 출렁이고 있다. 공급-수요의 붕괴에서 시작된 충격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으로 번지고, 이는 다시 실물경제를 덮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저명한 전문가들은 수년 동안 쌓여왔던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으로, '아프지만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은행의 통화부양책에 의존하는 관행을 버리고 각국 정부가 지속가능한 경제정책으로 정면승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에 9일(현지시간) 종가(2만3851.02)와 하락폭(-2013.76)이 게시돼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먼저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이자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 내정자인 모하메드 엘-에리안은 1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수년 동안 쌓이고 쌓인 문제가 세계 경제와 시장을 덮친 것"이라며 "현재의 어려운 시기는, 각국 정부의 대응책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에리안이 보는 경제충격의 직접적 이유는 그동안 시장을 떠받치던 3가지 버팀목이 무너졌기 때문. 첫째 공급과 수요의 동시붕괴, 둘째 중앙은행들의 약발 하락, 셋째 국제유가 전쟁이다.

그는 "그동안 펀더멘털이 약화됐음에도 오히려 금융시장을 지속적으로 상승시켰던 버팀목들"이라며 "부풀 대로 부푼 자산가치는 이제 펀더멘털이 가리키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각국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의존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의 통화부양책은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했다.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50%p 인하했지만, 시장 변동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엘-에리안은 "악화하는 실물경제가 금융시장을 끌어내리고, 다시 시장이 실물경제를 끌어내린다"며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정부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가능한 경제적 기반 조성이다. 그는 "먼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 의료보험이 없는 계층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나 치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의학적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며 "또 범정부적으로 생산성 향상 개혁조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동이코노믹리뷰 국제금융 에디터와 싱가포르비즈니스타임스 도쿄 특파원을 지낸 앤서니 롤리는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기고에서 "아무리 코로나19처럼 치명적인 역병이라 해도,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고질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이처럼 신속하고 극적으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즉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끊없이 이어진 통화완화정책과 저금리, 그로 인해 부풀어오른 자산가치, 신용으로 유지된 소비·지출 등을 기반으로 이룩한 '모래 위에 경제성장'이 문제라는 것.

그는 "코로나 확산이 둔화되고 있고 따라서 곧 정상 상황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단서를 찾아보기 위해 사람들은 매일 신문 헤드라인을 훑는다"며 "하지만 그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국제금융협회(IIF) 등 기관들은 거의 매일 다양한 경제 분석을 쏟아낸다. 그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국제마케팅정보회사인 JD파워는 최근 특히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JD파워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성인의 2/3는 코로나19로 인해 예기치않은 의료비용과 충분한 시간을 일할 수 없는 무능력, 주식포트폴리오의 하락하는 가치 등의 상황이 벌어져 자신의 재무상황이 악화될 것을 걱정한다"며 "소비자들은 여행을 안 가고 외식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JD파워는 또 "연준이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려고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미 증시가 계속 하락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큰 우려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 소비는 여전히 '매우 강하다'(very strong)고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많이 다르다.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줄어드는 소비가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과 중국, 일본, 아세안, 유럽에서 산업생산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애초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글로벌 공급망이 휘청거렸지만 이젠 코로나19로 인해 결정타를 맞고 있다. 각 기업의 재고는 쌓여가고 현금흐름은 급감하고 있다.

롤리는 "중앙은행들이 아무리 통화부양책을 써도 과거처럼 필수품 이상의 소비를 자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되레 경제활동과 고용에 대한 위협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더 심한 금융적 경제적 고통이 있을 것"이라며 "과도한 부채, 과도한 소비, 과도한 자산 부풀리기 등을 멈추는 과정이다. 촉매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코로나19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용으로 부양된 소비, 그같은 소비가 이끄는 경제호황 등은 이제 인프라와 보건, 복지, 교육 등 불평등을 줄이는 부문에 대한 지속가능한 투자로 대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는 최신호에서 "미국 역사상 최장기 경제확장이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끝났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자리가 풍부한 때에 경기침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헛소리로 들릴 수 있다. 최근 미국 노동통계국은 2월 실업률이 3.5%로 하락했다며, 50년래 최저치라고 발표했다.

BBW는 "하지만 경기침체는 상황이 나쁠 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절정기 기준만큼 좋지 않을 때 침체가 된다"며 "역으로 경기확장은 경제가 최저치로 하락한 때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BBW는 "일자리 실적은 가계와 기업에 대한 조사에 기반한다. 매월 12일이 포함된 주에 조사를 실시한다. 2월 중순을 전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2월 12일 기준 미국에서 보고된 코로나19 감염사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3월 5일 기준 99명의 확진자가 있었고, 이 중 10명은 사망했다.

이 매체는 "경제사학자들이 훗날 현재를 회고한다면, 2009년 6월 시작된 경제확장 국면이 2020년 2월을 정점으로 끝났다고 기록할 수 있다"며 "그렇다면 무려 128개월의 수명을 자랑한 것으로, 전미경제조사회에 따르면 이는 1854년 첫 기록 이후 최장기 확장국면"이라고 전했다.

인식하지 못한 새 경기침체에 돌입한 과거 사례가 있다. 2008년 여름 연방준비제도는 08~09년에 완만한 경제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전미경제조사회가 나중에 조사한 결과 전년인 2007년 12월부터 이미 침체가 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테이트스트리트어소시에이츠와 MIT의 최근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코로나19가 충격을 안기기 전에도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았다. 올해 1월 기준으로 '향후 6개월 동안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약 70%였다. 당시 증시는 전년 대비 약 22% 상승하던 상황이었다.

스테이트스트리트의 선임 매니징디렉터 윌 킨로에 따르면 최근 주가 상황을 반영하면 침체 가능성은 약 75%로 높아진다. 킨로는 "만약 미 증시가 지난 12개월 동안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다면, 침체 가능성은 80%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미국이 올해 경기침체를 맞을 가능성은 최소 50%"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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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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