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아시안리뷰

코로나19 확산으로 비틀거리는 아시아 기업들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이번엔 국제유가 급락이다. 닛케이아시안리뷰(NAR)는 10일 "석유시장의 급격한 출렁임은 아시아 기업들의 운영 환경을 바꿔놓을 위험이 크다"고 전했다.

특히 아시아 에너지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유가전쟁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에너지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는 "유가 급락은 산업 재편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 변동성의 파문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감지된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주가는 이번주 13% 하락했다. 저유가로 값비싼 전기자동차 수요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에서다.


업종을 가릴 것 없이 시장 심리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유가 하락에 아시아가 급격한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견해가 힘을 받는 모양새다. SMBC닛코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요시마사 마루야마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투자자들은 부정적 연쇄반응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일반적으로 저유가는 아시아 경제에 도움이 된다. 석유 순수입국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 아시아 에너지업체들은 상황이 다르다.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2015~16년에도 아시아 에너지업계를 뒤흔든 국제유가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일제히 증산에 나선 때였다. 하지만 당시 시장 수요는 현재보다 훨씬 건강했다. 이번엔 다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봉쇄하기 위해 여행제한 등 조치를 취하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글로벌 수요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미국 셰일석유 업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의 추가 감산 거부는 결국 사우디의 국제유가 전쟁을 촉발했다. 이는 아시아 에너지 기업들에게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0일 아시아 에너지 기업들의 실적 전망을 45%나 줄였다.

저유가가 지속된다면 에너지 기업들의 자본지출 계획이 어긋날 것으로 예상된다. 말레이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나스는 배럴당 50달러에 맞춰 투자계획을 짰다. 국내 자본지출에 280억링깃(66억달러), 업스트림(원유탐사·생산)에 340억링깃 등이다.

싱가포르 투자은행 'UOB카이이언'은 리서치 보고서에서 "페트로나스는 자본지출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국제유가(업스트림 매출), 정유·석유화학 판매(다운스트림 매출), 액화천연가스 장기 수출에 대한 차질 등 세 방면에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유가전쟁의 승자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샤먼대학교의 에너지경제연구센터장 린보챵은 "중국 에너지기업들에게 저유가는 축복이 될 것"이라며 "중국산 정유제품은 배럴당 40달러에 맞춰져 있다. 유가가 낮아질수록 중국의 정유업자, 운송업자 이익은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페트로차이나) 주가는 10일 2.57% 상승했다. 종합지수보다 더 올랐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 중국석유화공집단 역시 각각 2.96%, 1.05% 상승했다.

중국 정부의 가격통제 덕분에 녹색에너지 기업들이 받을 타격도 크지 않아 보인다. 린보챵은 "보통 유가 하락은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자동차 기업에 타격을 준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입을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액화천연가스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한국전력공사도 유가하락의 수혜자로 꼽힌다. 키움증권은 유가가 1달러 하락할 때마다 한전의 이익이 연간 1100억원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한전 주가는 9일 8.1% 상승했다.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가스기업 페르타미나도 유가하락에 안도하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무역적자가 커지면서 페르타미나는 정부로부터 원유 수입을 자제하라는 강한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유가가 하락하면서 그같은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이 기업 대표인 니케 위드야와티는 현지언론에 "업스트림 사업엔 일부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다운스트림(정유·천연가스 유통 판매)에는 좋다. 우리는 가격이 내려갈 때 더 많이 구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년 간 높아진 국제유가로 페르타미나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운송비가 많이 드는 섬 지역에도 동일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항공·여행업

모닝스타 주식 애널리스트 이반 수에 따르면 중국 항공업계는 국제유가 하락의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그는 "중국국제항공과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 등 항공업체들은 유가에 대해 헤징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가가 하락하면 가장 많은 혜택을 본다"고 말했다. 반면 케세이퍼시픽과 싱가포르항공 등은 배럴당 50~60달러에 상당 몫을 헤징했다. 따라서 헤징 손실은 불가피하다.

싱가포르 DBS은행의 항공운송 리서치 애널리스트인 폴 영도 중국 항공업계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했다.

그는 "유가하락을 헤징하지 않아 상대적 이득을 볼 뿐만 아니라 중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진전되면서 중국 내 항공수요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동남아시아 항공사들은 올해 대략 30~70%에 해당하는 항공유를 헤징했다. 헤징 비율이 낮을수록 혜택을 본다"고 전했다.

DBS 추산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에어아시아그룹은 올해 소비할 항공유를 대략 73% 헤징했다. 반면 싱가포르항공은 약 65%를, 홍콩 케세이퍼시픽은 약 35%를 헤징했다.

다이와캐피털마켓은 케세이가 올해 24억홍콩달러의 헤징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금융리서치기업 MIDF의 애널리스트 애덤 라힘은 "전반적으로 항공유 가격이 낮아졌지만, 여행객의 급격한 감소를 상쇄하기엔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리서치노트에서 "일본과 한국 독일 프랑스는 코로나19 감염자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들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여행업과 항공업에 침체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는 9일 "올해 글로벌 항공여객 사업이 코로나19 때문에 최소 630억, 최대 1130억달러 손실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금융업

아시아 은행들은 경제성장 둔화에 흔들리고 있다. 석유업계에 대출비중이 크지 않다고 해도 또 다른 타격에 직면한 상황이다. 씨티그룹은 "성장 둔화와 자산의 질에 대한 우려는 에너지기업에 대한 직접 대출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유가와 은행의 실적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씨티그룹은 "아시아 은행들 가운데 중국은행의 홍콩지점, HSBC의 자회사 항셍은행, 싱가포르 3대 은행(DBS은행, OCBC, UOB) 등의 실적이 국제유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직면한 한 가지 리스크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서 비롯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추가적으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홍콩과 싱가포르 시장의 단기금리 역시 하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결국 은행의 순이자마진을 축소시키게 된다. 순이자마진은 금융기관 수익률을 보여주는 핵심지표다. 순이자마진이 0.1%p 하락할 때마다 이익은 8%씩 줄어든다.

아시아 지역 은행들은 현재 20억달러 이상 매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악성대출에 대해 완충자본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가 3월 내 통제 단계에 접어들지 않는다면, 그 충격은 2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S&P글로벌레이팅스는 지난달 "코로나19로 중국 본토 은행들의 악성대출이 7700억달러 늘어나는 한편 이자지불 불이행 대출 비율도 3배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닛케이가 설문한 애널리스트들은 중국 최대 은행들마다 각 3억달러 이상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대출과 상품판매가 감소하고 거래와 자본주선 등 수수료가 줄어들면서다.

아시아 비중을 늘릴 계획인 HSBC는 코로나19로 6억달러의 추가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수요 급감에 직면한 기업들이 영업활동을 줄이면서 은행 대출 수요도 함께 하락했기 때문.

자산규모로 동남아시아 최대 은행인 싱가포르 DBS은행은 매출이 최소 1억달러 감소하고 신용비용은 5000만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신흥국에 초점을 맞춘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은 코로나19와 수개월째 지속되는 홍콩 시위로 올해 5~7% 매출신장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소재 동아시아은행도 지난달 코로나19 때문에 매출과 수수료 수입 목표치를 크게 낮췄다.

유통과 소비재

아시아 소매판매 중 특히 사치재 부문에서 큰 고통이 예상된다. 사람들은 주가가 크게 출렁이면 사치재 소비를 자제하기 때문이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토미 우는 "사치재 부문은 코로나19 때문에 이미 아시아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며 "금융시장에 글로벌 충격이 닥치면서 이미 위축된 심리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 필수재와 달리, 재량적 소비재는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상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 관계를 '부의 효과'로 설명한다. 투자소득이 높아지면 소비를 더 한다는 의미다. 반면 소득이 낮아지면 소비를 줄인다.

OC&C 스트래티지 컨설턴트의 파스칼 마틴은 "증시가 오를 때, 주식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더 낙관한다. 그래서 사치재를 비롯한 재량적 소비재와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네트워크 확대에 대거 투자했다. 맥킨지&컴퍼니의 2019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중국 소비자들은 럭셔리 제품에 1150억달러를 소비했다. 이는 전 세계 총량의 1/3에 해당한다. 중국 가구당 연평균 럭셔리 소비액은 1만1500달러에 달한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보석류와 화장품, 쇼핑몰 운영 기업들의 주가는 10일 오후 대부분 하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상승했지만 이들 업체는 미국 증시 하락세를 뒤따랐다. 신다 리서치 인터내셔널의 애널리스트 헤이먼 추이는 "시장 급락은 사람들이 거시경제에 비관적 관점을 갖고 있다는 신호"라며 "따라서 사람들은 소득 감소를 예상하고 재량적 소비를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OC&C의 마틴은 "럭셔리 판매는 과거 위기를 보면 곧바로 회복탄력성을 보였다"며 "하지만 현재 상황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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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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