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째 2~3 교대로 임직원 피로 누적돼 우려

"국내산 자재만 사용하면 생산량 절반으로 감소"

경기도 내 마스크제조업체 A사, 한달째 공장이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직원들은 2교대로 생산현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마스크 판매가 저조했다. 날씨 탓이다. 황사 지속일이 짧았다. 마스크 재고가 쌓였고 생산량이 줄었다. 갑자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재고가 소진됐다. 발주도 급증했다. 공장이 오랜만에 제대로 가동된다. 회사 매출이 오르고, 월급봉투가 두툼해질 것을 기대하며 즐거웠다.

한달이 지난 요즘엔 걱정이 앞선다. 임직원이 24시간 생산에 지쳤다.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존 거래업체 관계도 곤혹스럽다. 마스크 공급이 발주량보다 턱없이 부족해서다. 일부 업체는 약속을 지키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 생산현장. 직원이 마스크 생산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 김형수 기자


전량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하는 A사 입장에서는 발주사(유통업체) 눈치가 상당히 신경 쓰인다. 정부가 생산량의 80%를 공적물량으로 배정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원부자재 재고가 떨어지는 상황도 고민거리다. 항상 원부자재는 2개월 생산량만큼 확보해 뒀었다. 이제 한달 분량 밖에 남지 않았다. 4월부터는 현재 생산량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A사 대표는 "원부자재 수입이 해결되지 않으면 4월부터는 생산량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대부분 제조업체 상황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국내산 원부자재만으로는 현재 생산량을 맞출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마스크 생산은 OEM 방식이 대부분 = 마스크업체 사정은 A사와 비슷하다. 대부분 공장은 2~3교대로 돌아가고 있다. 직원들은 누적된 피로를 안고 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기계를 돌리고 있지만 너무 힘들다"고 전했다.

이들을 지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떼돈을 벌었다'는 오해다. 물론 예전보다 생산량이 늘고, 납품가격이 올라 매출이 많아졌다.

마스크 제조사 대부분은 OEM 업체다. 주문받은 만큼 생산만 한다. 극히 일부 대형제조사만 자기 브랜드로 제조해 유통한다. 유한킴벌리 등 유명 기업들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유한킴벌리는 제조업체 우일씨앤텍으로부터 납품받아 판매한다.

웰크론 헬스케어 마스크는 세창에서 생산한다. 웅진그룹 자회사인 웅진 투투럽 마스크도 마스크 전문생산업체 씨엔투스성진 제품에 웅진브랜드를 단 OEM 마스크다. 시중에 판매되는 마스크는 거의 유통업체 브랜드인 셈이다.

마스크 유통은 '유통업체 발주-제조사 생산-유통업체 매입 후 판매망 공급-개별 매장 판매' 과정으로 이뤄진다.

이익은 제조보다 유통쪽에서 훨씬 많이 나온다. 유통단계만 최소 2~3단계다. 단계마다 마진이 붙는다. 특히 시장상황에 따라 유통가격은 달라진다. 최근 마스크가 부족해지자 평소 가격의 5배까지 올랐다.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는 마스크 확보에 나섰다.

9일부터 생산량의 80%를 공적물량으로 배정했다. 제조업체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가격은 900~1000원이다. 원부자재와 생산 비용을 반영한 가격이다.

보통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 제조원가는 300~400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마스크 대란 이전에는 개당 판매가격이 보통 600~700원이었다. 요즘엔 2500~3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정부는 공적물량을 제조원가의 3배 정도로 구입했다. 제조사 이익을 충분히 보장해 준 셈이다.

공적물량 유통업체는 구입가에 100원의 마진을 붙여 약국에 1100원으로 공급한다. 약국은 1500원에 판매한다.

마스크 생산과 유통에 정부가 개입해도 마스크 부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공장이 24시간 가동해 생산해도 마스크 대란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급기야 정부는 마스크 구매 5부제 시행에 들어갔다.

문제는 앞으로다, 원부자재 부족이 코앞이다. 지난 한달동안 24시간 공장가동으로 확보한 원부자재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원부자재가 없어 공장이 멈춘 곳도 있다. 부산지역 소재 네오메드는 마스크생산 기계 11대 중 2대만 작동하고 있다. 마스크 심장이라 불리는 MB(멜트블로운)필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40만개를 만들 수 있는 공장에서 현재 7만개 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마스크 대란 극복 대안에 골몰 = 그동안 원부자재를 확보하고 있던 제조사들도 걱정이다. 평소보다 공장을 많이 돌려 원부자재가 급속히 소진됐다. 중국수입도 막혔다. 국내산 원부자재는 거래 규모가 큰 기업들 차지다. 중국산 원부자재에 의존하던 공장은 이미 멈췄다.

업체들은 "국내 원부자재만으로는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말한다. A사도 생산량이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마스크 대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9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제조업체들은 KF80 생산 확대을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제조업체 대표는 "KF80도 코로나19 예방에 충분한 만큼 KF80 위주의 생산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KF80은 KF94보다 MB필터가 20% 가량 덜 들어가 빠른 생산이 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KF80은 평균 0.6㎛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차단한다. 황사·미세먼지를 막는다. KF94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94% 이상 방지한다.

새로운 필터 시험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나노섬유의 마스크필터 기능과 함께 독성안전성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속한 설비확대 승인도 주문했다.

일부 제조업체들은 식품안전처에 생산설비 승인을 요청했다. 생산확대를 위해 설비를 추가한 것이다. 하지만 승인이 미뤄지고 있다.

A사 대표는 "지금은 비상상황인 만큼 이미 생산하고 있는 업체부터라도 임시사용승인을 내줘 생산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KF80 생산 유도 = 한편 정부가 보건용 마스크 생산량을 확대하고자 'KF94' 대신 필수 재료가 적게 드는 'KF80' 제품 쪽으로 생산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생산량이 최대 1.5배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양진영 차장은 12일 마스크 수급 상황 브리핑에서 "보건용 마스크 제조업체들이 KF80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조업체들은 KF94 제품을 만드는 게 경제적이라고 판단해 KF80보다는 KF94 생산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보건용 마스크 생산의 필수 부자재인 MB(멜트 블로운)필터가 KF80보다는 KF94에 훨씬 많이 들어간다는 것.

국내에서는 MB필터가 아직 재고량이 있지만, 공급량 부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마스크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독일 미국 등 여러나라에 수입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양 차장은 "MB 필터의 수급을 조금 더 원활히 하고 업체들이 필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을 완화해주고자 단일계약자인 조달청을 통해 KF80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되도록 KF94보다는 KF80 쪽으로 생산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KF94에서 KF80 쪽으로 생산시설을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다.

양 차장은 "이렇게 해서 KF94에서 KF80으로 생산을 전환하면 단순 계산으로 원자재량은 20% 감소하는 대신 실제 생산량은 최대 1.5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고 말했다.

보건용 마스크 제품(KF80 KF94 KF99)에 적혀있는 KF는 '코리아 필터'(Korea Filter)를 숫자는 입자차단 성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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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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