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필라델피아·세인트루이스의 스페인독감 대처

온라인매체 '쿼츠', "한국은 현대판 세인트루이스"

1918년 가을 미국 필라델피아시는 수천명의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갈 퍼레이드를 강행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준비중인 병사들 사이에 인플루엔자가 퍼질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했다. 20만명이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참전 용사들을 격려했다. 사흘 뒤 필라델피아 31개 병원 전 병상이 죽어가는 환자로 가득찼다. 이른바 '스페인독감'에 감염된 것이다(내일신문 3월 2일 10면 '트럼프, 1918년 독감 교훈 무시' 참고).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에 따르면 퍼레이드가 열린 그 주의 마지막 날, 스페인독감으로 4500명 이상의 필라델피아 시민이 사망했다. 당시 필라델피아 시당국은 도시를 봉쇄했지만, 이미 늦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에 따르면 스페인독감으로 인한 최종 사망자수는 이 도시에서만 1만2500명이 넘었다.

1918년 9월 28일 미국 필라델피아시는 스페인독감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준비중인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시가행진을 강행했다. 20만명의 환송인파가 거리로 나왔다. 독감 사망자가 급증한 직접적 원인이었다. 사진 출처: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1400여킬로미터 떨어진 이웃도시 세인트루이스에선 다른 이야기가 전개됐다. 첫 번째 독감환자가 보고된 뒤 이틀 내 세인트루이스시는 학교와 운동장, 도서관, 법원, 교회를 폐쇄했다. 도심 전차 탑승도 엄격히 제한됐고, 20명 이상 모이는 회합이 금지됐다.

당시 세인트루이스시의 극단적 조치는 현재 전 세계 보건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부르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한 목적이다. 2007년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따르면 당시 세인트루이스의 감염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필라델피아보다 크게 낮았다.

'(감염 또는 사망) 곡선 낮추기'(flattening the curve)라는 개념은 코로나19 등 전염병에 대처하는 공중보건의 핵심이다. 일단 바이러스를 봉쇄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된다면, 목표는 확산을 둔화시키는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감염이 확산되면, 보건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동시 발병이 줄어든다면, 의료 체계는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어 사망자가 줄어든다. 의사들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연구개발자들이 백신을 개발할 시간을 벌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의사이자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 대표인 리처드 해쳇은 "하지만 언제나 그같은 과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해쳇은 2007년 국립과학원회보의 공동 집필자이기도 하다. 그는 쿼츠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늘 보건당국의 신뢰를 받은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 때엔 무시됐다. 2000년대 들어 스페인독감을 재분석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보여준 해쳇의 논문을 포함해 여러 개의 보고서가 발표됐다. 그리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훗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염병 예방 가이드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해쳇은 "모델링과 역사적 연구에서 얻은 핵심 교훈은 다수 개입조치가 일찍, 즉 전체 인구의 1%가 감염되기 전 도입될수록 효과가 극대화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는 감소한다. 특히 다수의 사람이 치료를 요할 정도로 아프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코로나19도 그같은 경우다. CDC에 따르면 확진환자의 19%만 심각한 증상을 드러낸다. 무증상 또는 미미한 증상의 보균자들은 쉽사리 노약자 등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옮긴다. 해쳇은 "초기부터 적극적인 개입을 했던 홍콩이나 싱가프로 대만 등의 상황을 중국 우한이나 현재의 이란과 이탈리아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과 이탈리아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첫 사례가 발견된 뒤 수주가 지나서야 양국은 어쩔 수 없이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중국 정부는 후베이성 주민 6000만명을 격리했다. 또 나라 전체적으로 수억명의 이동을 제한했다. 이제 이탈리아가 6000만 국민에 공공집회와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 중 처음이다.

미국에서 그같은 제한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뉴욕주는 대형 공공집회 장소를 폐쇄했다. 또 뉴욕시 북쪽 뉴로셸 내 '봉쇄구역'에 주방위군을 투입해 건물을 방역하고 음식 등을 배달하고 있다.

쿼츠는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꼭 강압적일 이유는 없다"며 "한국의 경우 현대판 세인트루이스 모델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시민을 강제격리하거나 도시를 봉쇄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학교 입학 연기와 공공집회 취소, 재택근무 확산 지원 등 정부부처간 합동 조치로 확진자 급증세가 꺾였다.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투명하고 공개적인 사회'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인 시민 참여와 선진 기술의 창조적 적용을 혼합해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위기 확산" 연재기사]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