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대척점서 형제의 도시로 발전

달빛동맹·병상나눔으로 연대 깊어져

"저희 아들이 광주에서 살고 싶대요." 대구 확진자 가족 4명이 지난 11일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은 달빛동맹 병상나눔으로 광주에서 1주일간 치료를 받다 완치돼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 가족은 문자 메시지에 "환대해준 광주시민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며 "광주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적었다.

◆위기에서 빛난 달빛동맹 = 항상 정치적 대척점에서 대립해온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적대적 관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만들었다. 최근 광주시는 대구시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자 '병상나눔'으로 대구돕기에 나섰다. 마침 경기도가 대구시의 병상나눔 제안을 거절했던 때여서 광주시의 '달빛동맹, 병상나눔' 결정은 빛이 났다.

"쾌유를 기원합니다" | 13일 오후 전남 순천시 매곡동 순천의료원 앞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이 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대구 지역의 코로나19 경증환자 30명은 순천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순천 연합뉴스


광주시가 이번에 대구시에 선뜻 손을 내밀수 있었던 것은 그간 '달빛동맹'으로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됐다. '달빛동맹'은 대구와 광주의 옛이름인 달구벌과 빛고을의 앞글자를 따 만들었다. 지난 2009년 의료산업 공동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에서 '달빛동맹'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됐다. 지난 2013년부터는 대구 2.28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서로 참석하는 것이 정례화됐고, 2015년에는 관련 조례가 만들어지고 민관협력위원회도 구성됐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이번 '병상나눔'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형제의 도시'라는 용어를 쓴 것도 그간 '달빛동맹'으로 다져온 신뢰가 있어 가능했다. 이 시장은 "어려울 때 도와야 형제"라고 말했다. 실제 대구시는 경증환자 19명을 광주빛고을전남대병원 등으로 이송했다.

광주시가 앞정서자 전남도 대구·경북돕기에 나섰다. 전남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사랑의 도시락'은 대구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됐다. 지자체에서 시작된 대구·경북 응원은 광주·전남 전역으로 퍼졌다. 병상나눔과 마스크 보내기는 기본이고, 지금도 각 지역의 특산물을 대구에 보내는 응원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13일에는 대구·경북 경증 환자 30명이 전남 순천의료원에 도착했다.

◆'병상나눔'이 결정적 역할 = 현재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지자체와 주민들간 이뤄지는 정서적 연대감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다. 대구와 광주의 시민들도 그동안 닫힌 마음을 열고 서로의 도움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구시민들은 "광주의 진정성을 믿게 된 것은 대구 경증환자 광주이송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대구 달서사랑봉사단은 지난 11일 광주시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광주자원봉사센터에 115만원을 기부했다. 대구 달서사랑봉사단 관계자는 "대구 코로나19 경증환자를 받아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난 14일 정세균 총리 주재 현장간담회에서 "전남도에서 매일 도시락 500개씩 보내주는 등 광주·전남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에 지역민들도 고맙게 생각한다"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동서는 물론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열린 마음도 한 몫 했다. 지난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5.18 망언으로 광주시민들이 힘들어하자 권 시장이 이 시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위로했다. 권 시장은 당시"광주시민에 대한 저의 사과와 위로는 사적인 차원이 아닌 달빛동맹의 파트너인 대구시장이라는 공적인 것"이라며 "자유한국당 소속 단체장인 제 양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광주시민들을 위로했었다.

◆대립 아닌 협력·경쟁의 시대 = 그동안 정치권 등이 나서 동서화합을 외쳤지만 망국적 지역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망국적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광주와 대구는 달빛동맹을 맺고 그동안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이런 틀을 깨지는 못했다. 이번 4.15총선 때도 이 같은 구도는 허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물꼬를 뜨면서 희망섞인 전망도 나온다. 영·호남이 대립하는 시대는 지나고 나라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시대라는 취지다. 한 시민은 '코로나19가 일깨워 준 평범한 진리'라는 제목으로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그간 영·호남이 서로 싸움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무의미해졌다"며 "전남 진도군이 낙지를 보내고 전국이 대구·경북을 응원하는 것을 보면 어느 한곳을 고립시켜 나머지가 사는 시대는 지났고 협력의 시대가 됐다는 뜻"이라고 적었다.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눔과 연대는 광주의 정신일뿐 아니라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을 자랑하는 대구의 정신이기도 하다"며 "그동안 정치권이 부추겨온 낡은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연대와 나눔의 정신으로 가까워지고 하나되는 역사를 영호남 시민들이 앞장서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위기 확산" 연재기사]

대구 최세호 광주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

홍범택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