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간스탠리 루치르 샤르마 "연준 조치 효과 불확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미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겠다고 밝힌 다음날 전 세계 금융시장은 또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달 9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유전지대 설치된 펌프잭이 석유를 뽑아올리고 있다. 코로나19 타격과 산유국 간 치킨게임으로 가뜩이나 많은 빚을 진 미국 셰일석유 기업들이 존폐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사진AFP=연합뉴스


모간스탠리 글로벌투자전략 수석인 루치르 샤르마는 16일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전 세계 경제는 1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는 다른 취약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 코로나19가 금융시장을 감염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샤르마 수석에 따르면 전 세계는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깊은 부채늪에 빠져 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웅덩이는 미국 가계와 은행에서 전 세계 기업으로 바뀌었다.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갑작스레 중단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자감당이 버거운 '좀비기업'들은 새로운 빚을 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인적이 끊긴 공항과 철도, 텅빈 식당 등 암울한 현실은 이미 각국의 경제활동을 타격하고 있다.

샤르마 수석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오래 지속된다면, 실물경기 침체는 금융위기로 옮아간다"며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처럼 좀비기업을 시작으로 연쇄적인 디폴트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20세기 이후 대부분의 불황은 고금리를 지속한 기간에 시작됐다.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 불황은 없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이라 해도 그 피해기간은 일반적으로 3개월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팬데믹으로 역대 가장 깊은 부채늪에 빠진 세계 경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2008년처럼 유동성 경색이 금융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전망에 대경실색하고 있다. 연준이 16일 2008년과 동일한 방식으로 과감한 통화부양책을 꺼내든 이유다.

샤르마 수석은 "하지만 연준의 조치가 시장의 더 큰 파장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1980년 즈음부터 전 세계 부채는 빠르게 늘었다. 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금융 탈규제로 빚내기가 손쉬워졌다. 특히 현재 전 세계 부채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보다 3배 늘었다. 2008년 이후 기록적인 저금리 때문이다.

연준이 통화완화 정책을 시작하고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맞장구쳤다. 경제회복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주입한 돈의 상당수는 주식과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으로 흘렀다.

해를 거듭할수록 경제가 확장되면서 은행들도 점차 느슨해졌다. 의문스러운 재무구조를 가진 기업에 값싼 대출을 쏟아부었다. 현재 글로벌 부채 부담은 또 다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중이다.

미국 기업의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75% 정도다. 2008년 기록을 이미 넘어섰다. 미국 대기업 가운데 자동차와 접객업, 운수송 분야가 특히 위태로울 정도로 빚이 많은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직접 타격을 받는 산업부문이기도 하다.

샤르마 수석은 "글로벌 회사채 시장엔 좀비기업을 포함해 잠재적인 골칫덩어리들이 숨어 있다. 저금리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서 자연스레 생긴 부작용"이라며 "투자자들은 저금리 상황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으려 더 높은 위험을 무릅쓰고 회사채 상품을 집어삼켰다"고 지적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미국 상장기업 중 약 16%, 유럽 상장기업 중 약 10%를 좀비기업이라고 추산한다. 좀비기업들은 특히 원자재 산업에 몰려 있다. 광산업과 석탄, 석유기업이다. 현재 미국 경제의 주요 동력인 셰일석유 산업에 대격변이 몰아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물론 좀비기업이 유일한 골칫거리는 아니다. 2008년 이후 상장기업에 부과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비상장으로 전환했다. 사모펀드가 지배하는 기업들은 보통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다. 사모펀드 소유 미국기업들은 평균 연 수익의 6배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다. 이는 신용평가사들이 정크(투기등급) 수준으로 분류하는 기준보다 2배 높은 것.

부채 압박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는 산업에서 가중되고 있다. 운수송과 레저, 자동차 등이다. 최악은 석유산업이다. 코로나19가 석유 수요를 무너뜨리는 상황에서 전 세계 산유국들이 공급 과잉을 마다않고 치킨게임을 벌이면서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35달러 아래로 급락했다. 이런 유가 수준이라면 많은 석유기업들이 원금은 물론 이자도 못 갚는다.

투자자들은 비틀거리는 기업의 채권을 살 때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한다. 이른바 위험 프리미엄이다. 투자자들이 미국 정크등급 회사채를 사들이면서 요구하는 프리미엄은 지난달 중순 이후 2배 높아졌다. 지난주엔 정크등급 석유기업 회사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프리미엄 요구는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본격적인 경제침체에 돌입한 건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한 팬데믹이다. 경제활동 위축에 대한 직접적 타격은 빚이 많은 좀비기업뿐 아니라 이미 부풀어오른 금융시장에 있는 기업들에게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금융시장이 침체하면 수백만 투자자들은 덜 부유하게 느끼면서 소비를 줄인다. 때문에 실물경제가 둔화된다.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에 비해 더 커질수록, 이와 같은 부정적 '부의 효과'는 더 강력해진다. 1980년 이후금융시장, 특히 주식과 채권시장은 글로벌 GDP 경제 규모의 4배로 커졌다.

여전히 미국 월가의 강세장 옹호론자들은 최악의 상황이 빨리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서 벌어지는 고무적인 상황 전개를 주목한다. 중국에선 지난해 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보고된 이후 지난달 13일 확진자 수 증가 정점을 찍었다. 단 7주 만이었다. 초기 대폭 손실을 기록한 중국 증시는 다시 회복됐다. 중국 실물경제도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6일 공개된 중국의 소매부문과 채권 관련 자료는 중국이 올 1분기 역성장할 것을 가리키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코로나19의 중심무대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다시 중국으로 역유입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새로 불거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수출 수요를 다시 꺾어놓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 기업 부채는 4배 커져 20조달러를 넘었다. 전 세계 가장 많은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기업부채 가운데 약 1/10이 좀비기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의 직접 지원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기업들이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중국처럼 직접 기업을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샤르마 수석은 "정부가 무엇을 하든, 관건은 오로지 코로나19에 달려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얼마나 빨리 둔화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현재 속도로 계속 확산된다면, 좀비기업 파산이 속출할 전망"이라며 "이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금융위기 가능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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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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