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한국 부품 절대적 의존도 보여줘"

한국 대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구미산업단지가 있다. 2600개가 넘는 기업과 생산공장이 들어선 곳이다. 조용하고 작은 도시지만 제조업 허브다. 서구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구미의 중요성은 계속 높아졌다. 미국의 애플은 물론 삼성 등 아시아 기업들이 스마트폰과 TV, 클라우드컴퓨팅 등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을 이곳에서 집중 생산하면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 "코로나19의 확산은 글로벌 스마트폰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고 있다"며 "구미 인근의 대구는 한국의 코로나19 발병의 중심지로, 19일 오전 현재 8413건의 확진자 중 85%가 이 지역에 몰려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국 전후 경제기적의 중심이다. 메모리칩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카메라모듈의 세계 최대 수출업체다. 이같은 핵심부품의 생산공장은 구미와 서울 외곽의 소수 지역에 집중돼 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이미 아이폰과 아이패드 공급이 줄어드는 걸 체감하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19로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소매처와 모바일 운영자들은 일부 모델의 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 전 세계 학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이러닝으로 전환하면서 아이패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중국 이외의 모든 나라에서 매장을 닫았다. 그리고 1분기 예상매출을 크게 줄였다.

삼성과 화웨이 스마트폰의 물품인도 지연도 길어지고 있다.

전 세계 소비자 가전의 절대량을 조립하는 중국은 지난해 12월 우한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한 이래 확진자의 감소를 보고 있다. 그리고 공장들은 서서히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생산 가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해도, 부품 부족 상태는 심화될 수 있다. 중국이 한국의 주요 부품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코로나19 상황은 중국보다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공급망 차질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S&P글로벌 박준홍 이사는 "공급망 단절이 지속된다면, 베트남을 비롯한 삼성과 LG의 해외 공장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FT는 "원자재 부족과 운수송 제한, 생산라인 폐쇄 등으로 제조업체의 정상조업 재개는 더 지연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스마트폰이 취약하다. 최신 버전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액정스크은 삼성과 LG가 생산한다. 애플은 아이폰X와 아이폰11프로 모델에 쓰는 OLED 스마트폰 패널 전부를 두 기업에 의존한다. 삼성과 LG도 자사 스마트폰에 동일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 화웨이의 최신 모델도 삼성 패널을 쓴다. 구글 픽셀폰, 아이폰 카메라모듈, 애플와치 스크린은 LG가 공급한다.

IHS마킷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스마트폰 OLED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과 LG 점유율은 94%를 넘었다. 두 기업이 전 세계 일반 가정에 미치는 존재감은 가히 절대적이다. 소니와 뱅앤올룹슨, 파나소닉, 필립스 등이 만드는 OLED TV도 LG패널을 쓴다. LG는 최신 디스플레이를 전 세계에 생산 공급하는 유일한 주요 기업이다. 한해 거의 300만개를 생산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델과 아마존 등 거대 클라우드서비스 기업들이 쓰는 컴퓨터와 서버에는 삼성 칩이 들어간다.

전 세계 D램 메모리반도체의 3/4는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만든다. 이 칩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인터넷 서버를 이용할 수 없다.

부품 부족으로 인한 타격은 광범위하다. 관련 기업들의 다운스트림(보급·판매)에 파문을 일으킨다. 공급이 제한돼 가격이 상승한다. 한국 내 공장들은 올해 초부터 전력가동 중이었다. 적시공급망과 최대 여섯달이 걸리는 복잡한 칩제조 공정이 연계돼 있어 신속한 증산이 어렵다. 애널리스트들은 한국 기업의 서버칩과 OLED 스크린, TV 패널, 무선 이어폰 등의 수요가 3월달에만 평균 30%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증권은 "공급충격이든 수요충격이든 간에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미치는 코로나19 충격은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미 의존도 점차 높아져

전 세계 디지털 경제는 구미산업단지에 점차 의존하게 됐다. 서구에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곳이다. 하지만 21세기 기술 공급망에 중요한 지역이다. 구미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린 유일한 때는 1995년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구미에서 만든 15만대의 휴대폰에 여러가지 결함이 발견되자 이를 불태우고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삼성이 갤럭시S20과 노트10 등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을 만드는 곳도 구미다.

이 모델들은 삼성 스마트폰 사업 매출의 47%, 863억달러를 담당한다. LG 디스플레이 공장도 근처에 있다. 집중생산기지는 더 나은 품질관리를 가능케 한다. 삼성과 LG 공장들은 공급업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상당한 이득을 본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공장 인근 회사에서 제공한 주택에 거주한다.

노동자들은 대구 인근에서 구미로 모여들기도 한다. 구미 남쪽 243만명이 사는 도시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곳이다. 삼성 스마트폰 공장은 4건의 확진사례가 확인된 뒤 2월에만 두 차례 폐쇄됐다. LG 자회사인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역시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모듈을 만드는 공장을 일시 폐쇄했다. 삼성은 임시적으로 생산공정 일부를 베트남으로 옮겨야 했다.

디스플레이패널 공장은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가동한다. 외부 오염원이 공장 클린룸에 들어오면, 공장 가동은 사흘까지 중단된다. 모든 제조세팅을 재조정해야 하기에 완전가동으로 복귀하는 데엔 1주일까지 소요될 수 있다. 삼성은 일반적으로 한달 40만시트 이상의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든다. 각 패널 시트는 200개의 스마트폰에 쓰일 수 있다. 일주일 간 공급이 중단된다는 것은 2000만개 이상의 스마트폰 생산이 지연된다는 의미다. 그같은 지연은 공급망에 타격을 준다. 이 공급망은 '린 생산'(lean manufacturing) 원칙에 충실하기에 여분의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등 다른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칩 제조공장은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초소형 칩 수백개를 만들 수 있는 웨이퍼(실리콘기판) 약 520만개가 매일 이곳에서 생산된다. 지난주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었다.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격리됐다. 반도체칩은 글로벌 기술 공급망의 중심이다. 지난해 한국산 메모리칩의 80%가 중국 조립공장으로 수출됐다. 대만과 일본 베트남 역시 한국산에 의지한다. 생산과정의 작은 차질이라도 생기면 중국과 베트남 전역에 있는 수천 개의 공장이 멈춰선다.

"스마트폰 떨어뜨리지 말라"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한국 부품에 의존하는 기술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자가격리 또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온라인으로 TV를 본다. 때문에 주요 데이터센터들은 폭증하는 트래픽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버에 들어가는 칩의 가격은 2월에만 10% 상승했다. 3년 만에 첫 두자릿수 증가다.

가격 급등은 공급 충격에 대한 시장의 예상을 반영한다.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기존 스마트폰 칩 생산 능력을, 서버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대량생산하는 방향으로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이후 주문은 공급을 20% 이상 초과하고 있다.

타이밍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지난해 수요의 주기적 하락에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차질 때문에 과잉생산이 있었다. 재고가 많이 쌓여 반도체칩 가격이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한국 반도체의 재고 대비 선적 비율이 10여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

이같은 상황 반전으로 올해는 생산과 관련해 그 어떤 차질도 벌어지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칩 제조 공장은 하루 24시간 운용을 요한다.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하루 종일 만든 실리콘 시트 웨이퍼를 몽땅 망칠 수 있다. 코로나19로 공장이 폐쇄된 이후 생산이 당초 속도로 회복되는 데엔 여러날이 걸린다. S&P글로벌 자료에 따르면 일주일치 생산량에 해당하는 조업을 중단하면 칩을 생산하거나 칩에 의존하는 삼성 3개 부서의 영업이익을 4억달러 이상 감소시킨다.

매일의 생산손실 여파는 전 세계 공급망을 따라 함께 공유된다. 워낙 고비용인데다 세팅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에 칩제조 시설은 스마트폰 조립공장처럼 쉽사리 이전될 수 없다. 각 반도체 제조라인은 건설 비용만 30억달러에 달한다. 경기도에 20개 이상의 생산라인, 그 인근에 수백개의 부품공급업체가 있다.

이런 중소 규모 공급업체들은 또 다른 리스크를 갖고 있다. 이들은 주문이 줄어들거나 끊길 때 특히 취약하다. 공장 폐쇄가 오래 간다면, 많은 공급업체들은 몇달 내 현금이 고갈된다. 또 이들의 자체 공장 역시 코로나19 감염 리스크를 안고 있다. 제조와 시험, 포장을 분리하는 구조적 변화로 반도체칩은 많은 노동자들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산의 위협이 배가된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겐 한숨 돌릴 여지가 거의 없다. OLED 스마트폰 스크린의 수요는 지난해 2분기 6배 늘었다. 해당 시장이 전통 LCD 스크린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TV의 경우 올림픽게임이 열리는 해에 전통적으로 엄청난 수요 폭증이 있었다. 도쿄 올림픽의 개최 여부가 미지수이긴 하지만, OLED 수요 폭증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남부 광저우시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 생산능력을 높이려 했지만 때에 맞춰 현실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기술적 문제 때문에 반년 이상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인 생산 다각화도 별다른 위안이 못된다. 120개국 이상이 한국인 여행객의 입국 제한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구미 공장의 임시 폐쇄를 따라 삼성은 스마트폰 생산량의 절반, 즉 1억5000만대 생산을 베트남으로 옮겼다. 하지만 베트나 현지에서 최신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700명 이상의 삼성 엔지니어들이 공장 세부공정을 다시 프로그램화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OLED 패널 등 한국산 부품을 가져와 스마트폰 회로에 끼워야 한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한 격리는 생산 지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물류 악몽에 더해 항공사들은 한국을 드나드는 비행기편의 80% 이상을 보류하고 있다. 조립공장에의 부품 공급과 완성제품의 소비자 배송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물류는 항공편의 추가적인 제한조치를 피하기 위해 선박을 이용중이다. 한국의 원자재 수입 역시 지연될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생산량이 줄어들면 제품 가격은 오르고 배송기간은 더 길어진다.

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노동력과 원자재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 지난 두 달간 아시아에서 벌어진 공급 제한 사태는 이제서야 글로벌 공급망으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의 의미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깨진 스마트폰 액정을 고치는 데 여러달이 걸릴 수 있고, 새로운 스마트폰 모델과 TV의 배송이 지연될 것이고, 새로운 5G 버전 스마트론의 출시가 늦춰진다는 의미다. 공급망 전역의 제조업체들이 부품 부족상황을 맞기 때문에 소비자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거대기업의 경우, 부품이 부족하면 완제품 수요를 맞출 수 없거나 부품 가격이 상승해 이익마진이 줄어든다. 중소규모 기업의 피해는 그보다 더 커진다.

생산과 공급이 정상화된다 해도 소비와 지출을 줄이는 탓에 수요는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은 코로나19의 충격이 올해 8월을 넘어서도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FT는 "이는 여행제한이 계속되고, 장기간 격리, 소비자가전에서의 소비와 수요 급감을 의미한다. 그같은 영향은 내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며 "글로벌 기술 공급망의 깊이와 복잡성은 코로나19로 인한 차질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매우 예측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현재로선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망가뜨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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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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