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적극적 참여 요구

"시장 압도하는 조치해야"

정부가 100조원 규모의 금융시장안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속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25일 현 석 연세대 동아시아국제학부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는 "규모면이나 신속성,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대상까지도 기존의 틀을 깨는 등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며 "시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목표가 그냥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것인지, 정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현재의 정부 정책은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채권시장안정화펀드 규모를 확대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같은 옛날 방식의 시장지원은 우리나라만 고수하고 있다"며 "미 연준이 무제한 양적완화를 한다는 것은 기업의 회사채와 CP를 중앙은행이 다 받아주겠다는 의미라고 보면,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이 참여해 일시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는 대기업들의 회사채 등을 매입하는 등의 시장충격 흡수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0조원이라는 규모 측면에서는 시장 기대를 넘어섰지만 과거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주요국들의 과감한 정책에 비해서는 한계가 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기상황에서 시장참가자들의 기대를 압도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게 교과서에 나오는 정책 처방"이라고 말했다.

◆100조원 지원 어떻게 하나 = 정부의 100조원 공급방안을 보면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경영안정자금(대출·보증)이 58조3000억원이다. 당초 1차 비상경제회의 보다 29조1000억원 증액됐다. 경영안정자금 지원대상에는 중견·대기업도 포함됐다.

금융시장안정을 위해서는 41조8000억원이 공급된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20조원 규모로 조성해 회사채, 우량 기업어음(CP)과 금융채를 매입하기로 했다. 이미 조성된 10조원을 우선 가동하고 10조원을 추가할 예정이다. 증권시장안정펀드는 10조7000억원 규모로 조성해 급락하는 증시의 안전판을 만는다는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2조2000억원 상당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시행하고 1조9000억원 상당의 회사채 차환발행도 지원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의 상환을 위해 기업들이 사모 방식으로 회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80%를 인수해 기업의 위험을 줄여주는 제도다.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한 6조7000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프로그램도 시행한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힘든 기업의 신규 발행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을 통해 유동화 증권을 발행, 기업이 직접금융 시장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지원하는 제도다.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시장에도 7조원이 투입된다.

◆한국은행 적극 참여 없으면 금융권 부담 커 = 정부가 100조원의 금융지원을 밝혔지만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금융기관들이 상당한 부담을 안아야 한다.

채안펀드는 정책금융기관이 일부 자금을 공급하지만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자산규모에 따라 출자를 해야 한다. 금융위기 당시 산업은행이 2조원, 나머지 은행들이 6조원 등 은행권에서 8조원을 출자했고, 보험사가 1조5000억원, 증권사가 5000억원을 부담했다. 2017년 1월 재가동된 채안펀드는 약정비율이 조정됐다. 산업은행은 2조원으로 동일하지만 나머지 은행의 부담금이 4조7000억원으로 변경됐다. 10조원이 추가로 조성되면 은행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여기에 10조7000억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펀드와 관련해 신한·KB금융·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가 각 1조원씩 부담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의 재정투입이 이뤄지지만 상당 부분은 금융회사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다.

박 교수는 "채안펀드를 충분하게 준비해서 부실 가능성이 있는 회사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하고, 우량 회사채 등은 한국은행에서 매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항용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금융지원 규모가 적지 않지만 필요한 곳에 신속한 지원이 이뤄지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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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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