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사학자 레베카 스팽

"두려움이 대지를 휩쓸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거대한 부가 형성되고 있다. 공포에 떠는 소비자들은 휴지와 식음료, 무기를 사재기하고 있다. 정부의 대처는 일관성이 없고 무능하다. 일상의 상거래는 멈춰서고 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찾을 수 없다. 정치적 당파싸움은 점점 심해진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있다."

레베카 L. 스팽 교수. 출처:인디애나대학교

미국 인디애나대 역사학 교수이자 '레스토랑의 발명 : 파리와 현대의 미식문화', '프랑스혁명기 물질과 돈' 저자인 레베카 L. 스팽은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은 1789년과 1790년 프랑스 혁명 초기에서 벌어지던 일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6일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기고에서 "그렇다면 미국도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또 다른 혁명의 시작점에 있는가, 미국민은 과연 혁명을 원하는가"라며 "미국이 거대한 전환기의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또 다른 경제불황의 시작이라든가, 2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도전과제를 맞았다든가, 국가적 중년기의 위기가 왔다는 등 다양한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순간을 혁명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조 바이든의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 유력, 버니 샌더스의 몰락과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히려 혁명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샤디 하미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혁명을 죽였다'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가 사람들이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 대신에 익숙한 과거의 정상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8~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전공한 스팽 교수는 그같은 주장이 잘못됐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격변적 상황에서 신속한 해결책을 찾는 안정희구 심리는 모든 혁명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절대적 특성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프랑스 제헌국민회의 소속의 한 의원은 1789년 10월 자신의 친구에게 "나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이 격동적 상황이 끝나기를 기도한다"고 편지를 썼다. 물론 제헌의회는 2년을 더 지나서야 임무를 마쳤다. 그 이후 또 다른 의회가 선출됐고 공화정이 선포됐다.

루이 16세(1754~1793년)는 재판을 받고 1793년 1월 처형됐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1769~1821년)은 1799년 제1 집정관이 된 데 이어 1804년 황제에 올랐다. 유럽은 1792년부터 1815년 전쟁의 화마에 휩쓸렸다. 즉 당시 프랑스인의 삶은 1789년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스팽 교수는 "미국은 현재 혁명을 겪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혁명기를 살아가고 있는 건 확실하다"며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언론의 보도와 일상의 대화 모두 비인간적 매개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선견지명을 갖춘 지도자 또는 성난 군중 대신에 바이러스와 시장, 기후변화가 오늘날의 이벤트를 규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는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보통 과거의 혁명이 주도면밀하게 계획됐고 자의식이 강한 혁명가들 덕분에 이뤄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같은 혁명은 만약 있다고 쳐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한다. 스팽 교수에 따르면 대개의 혁명은 각기 다른 어젠다를 가진 사회적 행위자들, 즉 토끼를 훔치는 소작농들, 공회당을 약탈하는 도시 거주민, 헌법을 만드는 입법의원, 바스티유 요새에서 무기를 찾아나선 성난 파리 사람들이 크든 적든 안정적인 집합체로 융합되는 '시기'를 말한다.

그는 "프랑스혁명에서 가장 소중한 교훈은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이라며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가 취하는 행동과 선택이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등 두 가지를 규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혁명 첫 단계와 현재 미국 상황의 유사점을 나열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감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를 종종 나서지 못하게 막거나 무시한다. 비슷한 인물로 루이 16세 시대 명망 있던 재무총감 자크 네케르(1732~1804년)가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재정보고서를 간행해 국민에 재정수지를 알렸다가 궁정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결국 1789년 7월 초 해고됐다. 이는 당시 재앙으로 인식됐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장 실뱅 바이(1736~1793년)는 비망록에서 "아버지를 잃는 것처럼 슬펐다"고 썼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와 탄약의 구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무기와 화약을 찾겠다는 기대심에서 바스티유 요새를 습격한 파리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도시와 주정부,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코로나19 관련 폐쇄를 두고 갈등하는 건 1789년 시정혁명과 직접 비교될 수 있다. 당시 일부 도시의 시장들은 재빨리 새로운 국민의회에 충성을 선언했다. 반면 다른 도시의 장들은 여전히 절대군주의 구체제에 충성했다. 나머지 다른 도시의 시장과 부시장들은 폭력적 방법으로 축출됐다.

스팽 교수는 "물론 프랑스혁명 시작과 오늘날 미국을 비교할 수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도 혁명기의 공포정치나 혁명 이후 나폴레옹 식의 군사독재를 겪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모든 것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은 외부의 압력과 자체의 심각한 내적모순으로 폭발할 수 있다. 또는 시대정신을 재해석해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과거의 익숙한 정상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의 기준은 미국인 절대 다수에게 더 이상 옹호될 수 없다는 게 스팽 교수의 진단이다.

지난달 단 1주 동안 330만명의 미국 노동자가 신규로 실업수당을 청구했다. 그 다음주엔 660만명이상의 노동자가 새롭게 실업수당을 청구했다. 은퇴를 위해 모아놓은 돈을 주식에 투자한 미국의 중산층들은 최근 급격한 손실을 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도, 미국 흑인들의 평균 재산은 백인 재산의 7%에 불과했다. 미국 원주민은 그보다 적었다. 히스패닉을 제외한 백인들 사이에서 약물 오남용과 자살,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5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 선거인단과 의회를 포함한 공공기관 또는 제도에 대한 신뢰는 이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낮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식음료 쇼핑을 가는 게 안전할까. 마스크를 써야 할까. 스팽 교수는 "아무도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미국과 서구 유럽의 지난 40년과 매우 유사하게, 유럽의 1700년대는 경제, 사회, 기술의 중대한 전환기였다. 비교적 값싼 대량생산 상품이 영국과 중국에서 쏟아졌다. 역사가들은 이를 '18세기 소비혁명'으로 부른다. 1780년대 파리 노동계급 가정의 4/5는 찬장에 10개 이상의 그릇을 갖고 있었다. 절반 이상의 가정은 금시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1720년대엔 그 비율이 각각 20%, 5%에 불과했다.

완전히 새로운 매체도 등장했다. 현대소설은 쉽게 대량인쇄가 가능했다. 대중시장을 겨냥한 신문이 등장해 많은 광고를 실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물리적 공간(커피숍과 책 대여 도서관, 프리메이슨 집회소)과 가상공간(문단과 공공여론)이 생겨 그같은 작품과 매체를 논의하고 논쟁했다.

정보의 원천이 확산되면서, 권위와 정보의 당초 원천이었던 군주와 귀족계층, 국교의 장들은 권력을 잃어버리는 데 두려움을 느껴 시대의 반동으로 변했다. 동시에 사회와 문화 혁신에 대한 장기적 전환기가 형성됐다. 유럽의 해외 제국이 커졌고, 정착형 식민주의가 등장했다. 중남미에서의 대량의 은 수출이 이뤄졌고, 대서양을 오가는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18세기 60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팔려나갔다. 일각에서 이 때를 '계몽의 시대'로 부른다.

1789년 여름 프랑스의 소작농들이 귀족의 성을 공격하고 혁명가들이 특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하면서, 엘리트 계급은 자신이 구축한 공고한 성이 일순간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해체되는 과정이었다. 스팽 교수는 "1790년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구질서는 경련을 일으키며 막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로 항공예약 취소, 출입국 금지조치가 쏟아지기 전에도 환경운동가들은 기존 여행의 방식과 패턴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필수사업장이 아닌 기업들이 정부 조치로 폐쇄되기 전에도 온라인쇼핑과 당일배송은 소매상거래 시장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환경파괴 우려와 반 소비주의 물결도 패션업계에 대변혁을 압박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공공보건의료의 위기로 갑작스럽지만 바람직한 노동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다. 세탁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 식음료품점 매대 노동자, 운·배송 노동자 등은 그들이 늘 해오던 필수불가결한 노동에 대해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두 합쳐도 혁명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아무도 그 상황이 닥치는 것을 알아챌 수 없다.

프랑스혁명은 가장 낡은 유럽 군주제 중 하나인 프랑스를 남성의 보편적 참정권에 기반한 공화제로 바꿨다. 과실 책임이 없어도 이혼이 가능해졌고, 입양이 쉬워졌다. 공식적으로나마 모든 이는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상을 심었다. 최소한 짧은 기간이나마 고용과 교육, 생존을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했다. 이런 과정엔 참고할 모델도, 계획도, 미리 동의된 플랫폼도 없었다. UCLA 역사학자 린 A. 헌트는 "파리 사람들은 묵묵히 걸어가면서 혁명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스팽 교수는 "미국인들은 오늘날 마주한 전환의 교차로에서 프랑스혁명의 결과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 혁명가들이 보여준 에너지와 창의력, 낙관성을 모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되돌아보면 하나의 혁명은 단일한 이벤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혁명은 그런 방식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혁명은 일상생활의 익숙함이 사라지고 기존의 의례가 의미를 잃는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 혁명은 대단히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창의성의 시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스팽 교수는 "어떤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위협을 피해 자신의 집을 피난처로 삼고 있다. 다른 이들은 목숨을 담보 삼아 위협과 싸우고 있다"며 "우리는 확실성을 잃어버렸다고 슬퍼할 수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이 순간을 혁명으로 부르려면 우리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로나19(COVID-19)' 비상" 연재기사]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