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메이슨대 경제학 교수 스티븐 펄스타인

경제학자들은 공짜점심은 없다고 말한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가치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일 수 있다.

조지메이슨대 경제학 교수이자 워싱턴포스트(WP) 필진인 스티븐 펄스타인은 7일 이 신문 기고에서 "미국인들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2조달러 경제부양책에서 공짜점심 비슷한 것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와 '부채의 화폐화'(monetizing the debt)로 불리는 마법 덕분"이라고 말했다.

펄스타인 교수에 따르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는 기업과 가계, 병원, 지방정부 등에 약속한 돈을 확보하기 위해 미 재무부는 다양한 만기의 국채를 시장에 내다팔아 돈을 빌려야 한다. 재무부가 단기 중기 장기 국채를 내다팔면 연준은 국채시장에서 비슷한 액수의 국채를 다시 사들인다.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유동성을 아낌없이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면 연준은 국채를 사들일 돈을 어디서 구할까. 매우 쉽다. 필요한 만큼 조폐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면 된다. 돈을 찍어내는 연준의 능력은 미국인이 사용하는 지폐 상단에 표시돼 있다. 모든 종잇돈엔 '연방준비제도 지폐'(Federal Reserve Note)라는 문구가 있다.

달리 말하면 연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그것도 무려 2조달러나 된다. 그런 뒤 재무부에 빌려준다. 그러면 재무부는 다시 가계와 기업, 병원과 지방정부에 거저 주거나 빌려준다.

연준은 '국가부채의 화폐화'라는 개념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은 공개시장에서 국채를 사고 파는 것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추는 방식도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이뤄진다. 다만 현재의 슈퍼 부양책은 단기국채뿐 아니라 모든 만기의 국채를 아우른다는 점, 그리고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을 사들인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도움으로 돈을 찍어내 세수보다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다면, 항상 그렇게 하면 안되느냐'고. 세계 각국이 내놓는 단순한 답변은 '그렇게 할 경우 오래지 않아 물가가 급격히 오른다'는 것이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타국이 그 화폐를 받고 물건을 팔려 하지 않을 것이며, 투자자들은 국채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부채의 화폐화는 공짜점심이라기보다 터무니없이 값비싼 식사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 은행과 기업의 도산 물결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르헨티나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미국의 경우, 그같은 위험은 극히 낮다. 우선 미국은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갖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외환시장에서 자국통화가치를 부양할 때, 또는 외채를 갚을 때 달러가 필요하다.

또 석유와 광물은 물론 마약과 무기 등 전 세계 교역과 거래에서도 달러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물론 각국 중앙은행들과 글로벌 교역기업들이 달러를 금고에 쌓아두는 건 아니다. 보통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채를 사들인다. 채권이기에 이자를 받을 수 있고, 국채시장에 내다팔면 손쉽게 달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미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국채 이자는 낮아진다. 그 덕분에 미국은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재정, 무역적자를 내면서도 달러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미국채를 사들이는 건 중앙은행들만이 아니다. 위기가 닥치면 전 세계 주식, 채권 투자자들도 미국채로 피신한다. 최근 미국채 수요 급증세는 미 정부가 수조달러 신규 국채를 발행하려는 때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다. 미국에 운이 좋은 경우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매우 역동적이다. 달러가치가 급격히 올랐다. 반면 미국채 이자는 최저치로 하락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필사적으로 달러를 구하려고 애쓴다. 이를 위해 연준은 새로 찍어내는 달러를 해당 국가 통화와 바꿔주는 특별한 스와프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근본적 이유는 달러가 기축통화이고 미국이 금융 피난처이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미국 경제가 전 세계 가장 큰 규모인 데다 생산성이 가장 높고 회복탄력성도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미국의 공공기관들에 신뢰감을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 일각에선 신규 발행 국채를 연준이 사들인다면, 최종적으로는 납세자가 2조달러 원금과 이자를 연준에 갚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그렇다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야바위게임'(shell game)이다.

법적으로 연준이 국채 보유로 벌어들인 이자는 다시 미 재무부에 귀속시켜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연준이 빌려준 2조달러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영구적으로 상환을 연장하면 된다. 만기가 되면 또 다시 국채를 발행해 차환하면 된다. 실제로 빚을 갚으려면, 연방정부가 재정흑자를 내면 된다. 현재 워싱턴 정가의 씀씀이를 보면 그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정부의 부채와 지출을 갚아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실물경제가 회복하고, '경제에 많은 돈이 풀려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리스크가 커진다'고 연준이 판단하면 그런 상황이 닥칠 수 있다.

그런 경우 연준은 양적완화의 반대인 양적긴축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보유한 국채를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다. 그동안 찍어냈던 달러를 회수한다는 의미다. 재무부가 빚을 연장하기 위해 내야 하는 이자가 오르는 것은 물론 경제 전반의 각종 이자율도 상승한다. 경제성장이 둔화된다.

이는 미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침체를 벗어났다는 판단 하에 연준이 몇년 전 수차례 시행했던 과정이다. 그럴 때마다 월가는 발작적 모습을 보였고, 증시는 고꾸라졌다. 그러면 연준은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사라졌다'고 선언한 뒤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되풀이했다.

실제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저성장과 과도한 저축이라는 특징으로 얽히고설킨 글로벌 경제에서 통화공급과 인플레이션의 역관계는 깨진 상황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10여년 동안 부채의 화폐화를 통해 재정지출을 댔다. 하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한다. 그리고 유럽중앙은행(ECB)이 대규모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시행한 유럽에서도, 인플레이션은 꿈쩍할 기미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연준의 국채 매입과 화폐 발행이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 해도, 과도한 빚내기를 부추기고 주식과 채권, 부동산, 기타 투자 자산의 가격을 급격히 부풀리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같은 거품이 결국 터질 경우 수백만 미국인의 부와 소득, 일자리는 허공에 날아간다. 중산층 이하 국민들은 벼락경기 때 별다른 혜택을 보지 못한 반면 불황기 때의 타격은 고스란히 떠안는다.

펄스타인 교수는 "결국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수조달러를 지출하는 데 따른 실제 비용은 증세나 인플레이션 형태는 아닐 것"이라며 "그 대가는 벼락경기와 불경기가 오가는 경제 구조 속에서 중산층 이하 국민이 '혜택은 쥐꼬리 피해는 산더미' 형식으로 치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가 미국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여 미국이 달러의 과도한 특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될 때까지 그 패턴은 지속될 것이다. 1세기 전 영국의 선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펄스타인 교수는 또 "그같은 티핑포인트가 언제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미국은 이미 전 세계 최대 채권국에서 최대 채무국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빚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2조달러 공짜점심의 혜택을 즐길 때 저명한 경제학자 허브 스타인(1916~1999년)의 명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인 교수는 "영원히 갈 수 없는 건 언젠가 멈춘다"(If something can't go on forever, it will stop)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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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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