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서 협력요청 '러브콜'

문 대통령 21번째 정상간 통화

우수한 의료진들 헌신도 큰 몫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며 감염자 수가 150만명에 육박한 가운데, '한국형 방역 모델'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정상 통화를 하고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칼유라이드 대통령은 "에스토니아는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스토니아도 대량의 진단검사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벌이는 등 한국의 경험을 답습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대응은 '강제성'보다 '자발성'에 무게를 두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산 진단키트를 계속 공급받고 싶다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서울 동작구 서울대학교병원운영 서울시보라매병원에 설치된 '글로브-월'(Glove-Wall)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의심환자의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이 검체 채취실에서는 의심환자가 투명한 아크릴벽 밖에 있으면 의료진이 장갑이 달린 구멍을 통해 손을 뻗어 상기도와 하기도에서 검체를 채취한다. 의료진이 의심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으므로 레벨D 방호복을 입지 않아도 무방하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문 대통령의 이날 통화는 21번째 정상간 대화다.

2월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코로나19 관련 첫 통화를 한 뒤 3월 5일부터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12개국 정상이 통화를 요청했고 이달 들어서는 8일 동안 콜롬비아, 호주, 에스토니아 등 8개국 정상으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의 요청은 한결같다. 한국이 보건 위기에 대처하는 데 세계적 모델이 되고 있으며, 전염병 예방·통제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공유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지난 6일 문 대통령과 통화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오는 5월 화상으로 개최될 세계보건총회에서 아시아 대표로 대통령이 기조발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WHO의 최고 의결기관인 세계보건총회에서 전 세계 정상에게 한국의 이런 방식이 공유되도록 문 대통령이 직접 독려해 달라는 당부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 마련된 워크스루 방식 선별진료소에서 한 시민이 검체채취를 받고 있다. 검체 채취실 컨테이너 창문으로 장갑이 연결도 있어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지 않고 의심환자와의 접촉 없이 검사가 가능하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드라이브 스루 이어 이동형 음압 부스까지 = 한국은 2월 중순 신천지 집단 감염으로 한때 어려움을 겪었으나 보건당국과 의료진의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진단검사,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확진자의 역학경로 확인과 정보공개 등으로 뚜렷한 확산 차단 효과를 거뒀다. 여기에 지역봉쇄(lockdown) 대신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기초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난 1월 12일 첫 확진자 발생 뒤 약 3개월이 지난 현재 확진자 1만384명, 사망자 200명(8일 기준)에 그쳐, "코로나19 검사방역의 세계적 롤 모델"로 불리고 있다.

한국형 방역모델인 코로나19 대응전략이 K팝, K드라마, K무비에 이어 'K보건의료'로 국제표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세계 각국의 한국형 방역모델 채택도 이미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미국은 드라이브 스루 검사 방식을 도입했고, 앞서 영국, 독일, 벨기에,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도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운영에 나섰다.

8일 현재 한국의 코로나19 누적 검사 수는 48만6003건이다. 전국 344개 병원이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돼 있고, 차량에 탑승한 채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73곳을 포함해 전국 613곳에 선별진료소가 마련돼 있는 덕분이다.

여기에 서울 인천 부산 제주 등에서는 한국형 '워크 스루'(도보이동형) 진료부스까지 활용하고 있다. 워크 스루는 의료진이 공중전화부스처럼 생긴 '이동형 음압 채담부스'에 들어가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밖에 있는 유증상자들의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선제적 방역 조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이나 지원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달 7일까지 한국으로부터 진단키트를 들여오기 위해 문의한 국가는 미국을 비롯해 126개국에 이른다. 이 중 외교 경로를 통해 진단키트 수입이나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 국가는 100개국이다. 수입만 요청한 국가가 36개국, 지원만 요청한 국가가 28개국, 두 가지 방법모두를 타진한 곳이 36개국으로 각각 집계됐다. 나머지 26개국은 직접 한국의 업체에 구매를 문의했다.

◆시민 자율적 참여와 창의적 첨단기술 접합 = 이처럼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국형 방역모델은 5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게 국내외의 평가다. 첫째는 투명성이다. 투명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환자의 이동 동선 공개, 매일 실시되는 두 번의 정기 브리핑 등과 같이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김강립 중앙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지난달 8일 외신 브리핑에서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알릴수록 국민은 정보를 신뢰하고 사회 공동체를 위한 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민주주의이다. 개방적인 민주주의와 공동체 정신을 존중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코로나19 대응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개인위생 준수,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시민들의 참여로 물리적인 봉쇄와 동일한 방역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고, 국민의 삶의 피해가 큰 강제봉쇄를 피하고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물리적 봉쇄와 격리를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감염병 대응체계에 선을 긋는 방식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고 초기부터 감염력이 크고 확산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전통적 대응체계는 코로나19의 최소 유입 시기만 늦출 뿐 이후에는 오히려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도 공동체 의식을 위해 감염병으로 인한 검사비 치료비 등의 부담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 방역을 위한 의료기관 손실도 국가가 보상하고 있다.

셋째는 선진기술이다.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특히 발달된 IT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검체 채취나 GPS 정보를 이용한 역학조사 등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개방적 사회를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역 성과를 달성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넷째는 집행력이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많은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진단검사는 일일 2만여건까지 가능하며 누적 검사건수는 48만건이 넘는다. 의사들은 코로나19가 의심된다면 어떤 제한도 없이 검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검사비도 무료다.

영국 BBC방송은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검사키트가 부족하지 않으며 4개 회사가 키트를 생산해 일주일에 14만개의 샘플을 확보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의 검사정확도는 98%로 가장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다섯째로는 높은 의료수준이 꼽힌다. 잘 훈련받은 우수한 의료 인력과 수준 높은 의료기관들이 사명감을 갖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 특허청에 공유된 한국형 방역모델 = 한국 모델을 요약하면, 투명하고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가운데 시민의 자율적 참여와 창의적인 첨단기술이 잘 조화된 대응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국형 방역 모델은 이제 세계 주요 특허청에 그 내용이 공유됐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지난 6일 오후 9시 미국·중국·유럽·일본·인도 등 주요 16개 특허청장과 프란시스 거리(Francis Gurry)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총장과 함께하는 원격회의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모델을 소개했다.

박 청장은 대표발언을 통해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국가 중 하나였지만 승차진료형 선별진료소(드라이브 스루), 빠르면서 정확한 진단시약의 선제적 개발·생산 및 보급 등 체계적인 검진과 확진자 격리시스템을 적시에 갖춰 상황이 점차 안정화 돼 가고 있다"고 소개한 뒤 "우리가 서비스 중인 코로나19 특허정보 내비게이션 등 각국 특허청의 코로나19 관련 특허정보 분석결과를 WIPO에 제공해 이를 전 세계 연구기관,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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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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