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현금지원 빨라야 다음 달부터 … 대출심사도 일손부족에 정체돼

비정규직 일자리 위험

항공사 대규모 지원책

일본 아베정권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경제대책으로 108조엔(1200조원 상당)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면서도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불만이 터져 나온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속도와 공정성이다. 이미 바닥에서는 죽겠다고 아우성인 데 일부 현금 지원은 빨라야 5월 말이나 되어야 가능해 지원의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일본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밀려드는 대출 심사에 처리는 느려터져 = 일본 정부의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한 지원대책은 현재까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최대 200만엔(개인사업자는 100만엔)에 달하는 현금 지원과 무이자·무담보 대출이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일 조간에서 1면 톱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신속한 심사와 빠른 지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가구를 대상으로 30만엔의 현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진은 일본 TV방송에서 지원금 규모와 지급 기준, 절차 등을 소개하는 화면. 출처 일본 민영방송 TBS


이 신문에 따르면 매출이 급감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현금 급부는 일러야 5월 말이나 되어야 가능하다.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할 때 지금하는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부터 지원까지 2개월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경제동우회의 사쿠라다 대표는 "돈을 지급할 때는 신속하게 심사하고, 빨리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겨서는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도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정책금융공고가 시행하는 실질적인 무이자 대출과 신용보증협회가 실시하는 100% 보증 업무가 3월 이후 급증하면서 현장에서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신청이 급증해 두 기관에만 21만건의 신청서류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대출 승인이 떨어진 경우는 아직 60%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가구당 30만엔을 지급하기로 한 것도 지급 기준과 대상이 모호해 혼란스럽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중앙정부가 내놓은 지원책만 놓고 보면 지역과 직업, 산업 등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질 우려가 있어 공정성 시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대책의 일환으로 지급기준을 전국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구주의 월급을 연수입으로 환산해 총액이 주민세 비과세에 해당하는 저소득층과 월수입이 절반 이상 줄어서 당장 생계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는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비정규직 보호대책 나서는 노동계 = 일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급증해 40%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외식업과 숙박업 등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경제주간지 '겐다이비즈니스'는 분석했다.

파트타임 근로자 등 비정규직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전국 유니온'의 스즈키 츠요시 회장은 인터뷰에서 "지난달 7일부터 창구를 열어 여러가지 상담을 받고 있는데, 직종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산업에서 충격이 오고 있다"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본격적인 해고에 들어간 느낌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큰 피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전국유니온에 걸려온 상담 내용에 따르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 한 여성 파견사원은 "미열이 계속돼 의사한테 휴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파견회사로부터 37.5도 이상이 아니면 계속 출근해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파견직 여성도 "창고에서 짐을 꾸리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2월 5일부터 16일까지 휴업을 했는 데 휴업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했고, 또 다른 남성 파견사원은 "주 5일 파견직으로 일하는 데, 코로나19 영향으로 주 1일밖에 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스즈키 회장은 정부가 지급하는 고용지원금에 대해서도 제대로 쓰이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해고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 중소기업은 90%, 대기업은 75%까지 고용조정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맞다"면서도 "지원금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에 지원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신청해서 지급받고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구당 30만엔을 지급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가구가 많고, 그러면 불공정 문제가 생겨난다"며 "가구에 일률적으로 지원급을 지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토 히로시 경제저널리스트는 겐다이비즈니스 기고에서 "정부가 내놓은 각종 지원금과 고용조정금, 무이자 및 무담보대출 등은 '보상을 대신하는 메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30만엔 지원금이 일시적인 피난처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사업주에게 고용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요타 1조엔, 닛산 5000억엔 대출 요구 = 코로나19의 공포는 대기업에도 닥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닛산자동차는 9일 5000억엔 규모의 자금을 대출해 달라고 금융권에 요구했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의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판매가 급감하면서 향후 경영 환경이 불투명해져 자금을 미리 확보하려는 조치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닛산자동차는 최근 중국시장에서 3월에 40% 넘게 판매대수가 줄었다. 미국서도 1~3월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30% 줄었다. 앞서 도요타 자동차도 최근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에 1조엔 규모의 대출을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일본 항공업계도 치명타를 입었다. 일본내 국내선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스카이마크 사야마 노부오 회장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항공회사는 고정비가 전체 비용의 2/3를 점하는데,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고정비가 많아서 매일 현금이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며 "정부가 신속하게 항공사에 대해서 대출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했다.

일본정부는 일본 최대 항공사의 하나인 ANA사에 대해 1조3000억엔을 비롯해 전체 항공산업에 2조엔 가량을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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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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