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 전 편집자, NYT 기고

"미국 에너지 '독립'은 월가 금융공학에 '의존'"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독립은 민주당 공화당 가릴 것 없이 모든 미국인의 꿈이었다. 이는 달성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압파쇄법(프래킹) 등장으로, 미국에서 셰일석유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2019년 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에너지 독립을 넘어 에너지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논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튿날 국제유가는 약 1/3 급락했다. 30년래 최대 하락폭이었다. S&P500 에너지업종 주식도 하루 만에 20% 하락했다. 이 부문 역대 최악의 기록이었다. 셰일석유 기업들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때 주당 150달러를 자랑하던 '화이팅 페트롤리움'은 유가전쟁 파장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퍼미안 분지와 기타 셰일지대에서 일하던 수만명의 텍사스 지역민들이 해고되고 있다. 석유산업 전반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일로다.

포춘지 전 편집자이자 현재 월간 배니티페어 편집자, '사우디 아메리카 : 프래킹의 진실과 세계의 변화' 저자인 베서니 매클라인은 11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에너지독립의 꿈은 현실적으로 늘 환상이었다. 그 꿈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셰일석유 수압파쇄법은 수지타산을 맞춘 적이 없다. 미국의 에너지 '독립'은 역설적으로, 월가의 금융공학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속에 구축돼 왔다.

셰일기업들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수십억달러에 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는 월가 투자자들 없이는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국제유가가 어느 정도 높게 유지되는 한 투자자들은 언젠가 수익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과감하게 베팅했다. 하지만 천하제일이라는 미국도 국제유가를 입맛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미국 셰일업계 내 자본은 말라가고 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된 현재 자본의 수도꼭지는 완전히 잠겼다.

셰일업계의 지속적 손실은 비밀 축에 끼지도 못한다. 2015년 초 헤지펀드 매니저 데이비드 아인혼은 투자컨퍼런스에서 "증시에 상장된 셰일석유 기업 16곳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봤더니 2006~2014년 석유를 팔아 번 돈보다 지출한 돈이 800억달러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근본이유는 셰일석유 광구에서 뽑아올리는 원유량이 첫 해 이후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2년째엔 앞선 해의 절반도 못 뽑아올린다. 셰일기업들은 수익을 내기도 전에 수십억달러를 들여 또 다른 광구를 찾아 나서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반면 셰일석유 찬성론자들은 보다 큰 광구를 굴착하거나, 여러 개 유정이 모여 있는 지역을 찾게 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수익성이 개선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수압파쇄법은 제조업이기 때문에 기술적 발전과 인간의 지능이 결합하면 비용을 줄이고 지리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매클라인은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핵심 문제는 '모자유정'(parent-child wells)이다. 셰일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먼저 시추한 유정인 '페어런트 웰' 인근에 신규 유정 '차일드 웰'을 뚫는다. 하지만 신·구 유정들은 서로 간섭 현상을 일으킨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양쪽 유정 모두 생산량이 줄어든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생산한 지 한 달 이상된 기존 유정의 산유량은 매달 하루 35만배럴씩 감소하고 있다.

당연히 셰일업계가 약속된 이익은 실현되지 않았다. 2019년 상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55달러일 때도, 최우량 기업 몇 곳만 수익을 올렸다. 투자기업 '세일링스톤 캐피털 파트너스'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셰일석유 사업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부문 최고의 실적을 내는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독립을 자랑하고픈 미 당국은 이런 사실에 개의치 않았지만 투자자들은 서서히 인내심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셰일 투자자들은 2018년 초 기업들에게 '잉여현금흐름'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수익이 아니라 원유생산량을 늘렸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후한 급여를 가져가는 보상모델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초저금리 때문에 수익에 목마른 투자자들은 셰일석유 기업들의 채권을 떠안았다. 지난 10여년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발행한 투기등급 채권은 4000억달러가 넘었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점차 셰일석유업계를 경계하게 됐지만, 셰일채굴은 지속됐다. 자금조달의 거대한 원천이 뒤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모펀드였다. 사모펀드는 일반적으로 모집하는 투자금에 2%의 관리수수료를 부과한다. 은퇴자들에게 약속한 돈을 지급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의 연기금들이 사모펀드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헤인즈빌과 유티카 셰일스 등 거대 천연가스 지대에서 시추활동을 벌이는 기업의 절반 이상은 사모펀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석유가 풍부한 퍼미안 분지의 경우 약 1/4의 기업이 사모펀드와 연계돼 있다.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2015~2019년 미국 사모펀드 기업들은 셰일석유 생산활동에 약 800억달러 자금을 끌어들였다.

사모펀드들은 자금을 댔던 기업들을 더 큰 상장기업에게 팔아넘기면서 수익을 챙기는 출구전략을 썼다. 셰일 사업모델이 돈을 벌어들이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자본시장이 셰일업계에 의심을 갖게 될 때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마감되고 있다.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환상을 떨치고 있다.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이 대표적 사례다. 2019년 옥시덴탈은 쉐브론과의 입찰 경쟁에서 이겼다. 380억달러를 들여 아나다코 페트롤리움을 인수했다. 아나다코는 메이저 셰일석유 기업 중 하나다. 인수 직후 옥시덴탈 주가는 거의 80% 급락했다. 아나다코의 수익성이 워낙 낮아 인수기업까지 몰락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퍼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옥시덴탈은 배당금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해 국제유가가 급락한 1990년대 초 이후 처음이다.

옥시덴찰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달 들어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미국 원유생산량이 올해와 내년 하락할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았다. 셰일석유 생산량이 급격히 늘던 시대는 끝났다는 점을 시사한 것.

지난달 10일 퍼미안 분지 메이저 시추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CEO 스카 셰필드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유가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내년 미국 원유생산량은 하루 200만배럴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월 말 CNBC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뭔가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트럼프는 올해 말 대선에서 에너지로 먹고 사는 주에서 패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사우디의 감산 협상에 적극 개입했다. 그 결과 12일(현지시간)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는 5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두 달 간 하루 970만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협상타결과 그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셰일업계의 생존을 잠깐이나마 도울 수는 있다. 하지만 수익성과 관련한 근본 문제점은 고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매클라인은 "미국의 에너지 독립은 들뜬 환상이었다. 저렴한 빚, 거품이 팽배한 자본시장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남은 것을 결산하면, 환경적 피해와 재정적 피해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로펌 헤인스 앤 분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215개 셰일석유·가스 기업이 파산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합해 약 1300억달러 빚을 지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지난해 3분기 디폴트 처리된 미국 회사채의 91%가 석유·가스 기업이 발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북미지역 석유·가스 채굴기업들은 향후 4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약 10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셰일채권을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는 대개 불확실하다. 추정상으로 일부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로 구조화돼 헤지펀드가 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일부는 은행에 담보자산으로 잡혀 있을 것이다.

셰일기업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이미 주가하락의 피해를 보고 있다. 사모펀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 연기금들 역시 조만간 커다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매클라인은 "확실한 건 셰일기업 CEO와 사모펀드 업자들이 에너지 독립의 환상을 퍼뜨려 막대한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이라며 "게다가 그들은 이런 위기상황을 뒷수습하는 이들도 아닐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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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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