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영향 "장기적이고 구조적"… BBB 미만 투기등급 기업, 재무실적 악화시 등급조정 신속처리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업 실적이 떨어지고 자금 조달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기업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향조정됐다. 신용등급 강등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부정적 등급전망 기업 급증 =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기업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한기평은 14일 신원(BBB-)과 롯데쇼핑(AA)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13일에는 SK에너지(AA+), 에쓰오일(S-Oil)(AA+), 풍산(A)의 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낮췄다. 지난 주에도 한기평은 롯데컬처웍스(A+)와 메가박스 중앙(A-), 호텔신라(AA) 등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나이스신평 또한 한화호텔앤드리조트(BBB+)와 넥스틸(BB), 대성엘텍(BB+)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고, 풍산(A)의 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하향했다.

한형대 나이스 신평 연구원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등급전망 하향조정 사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사업환경 악화로 추가적인 실적 저하가 예상되는 점 △주력 사업인 리조트부문의 투자부담과 제한적인 실적 개선 전망 감안시 중단기적으로 현금창출능력 대비 높은 수준의 차입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달 들어 국내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오르거나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은 기업은 15곳에 달한다. 지난해 4월 1개사에 비해 급증했다.

신용등급 전망은 향후 신용등급의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다. '부정적'으로 전망된 기업은 실제 수개월 안에 등급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신용등급 하향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스 신평은 "BBB급 미만 투기등급 기업에 대한 평가때는 재무역량이 사업역량보다 더 중시된다"며 "코로나19로 급격하게 사업기반이 약화돼 주요 재무실적이 악화된 만큼 등급 조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등급 기업에 대해서는 재무역량보다 사업역량을 더 중요시 할 계획이다. 환경변화에 따른 적응이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면 등급 조정이 유보될 수 있다.

◆6개월 ~1년의 침체 후 완만한 경기상승 예상 = 나이스 신평은 코로나19상황이 6개월에서 최대 1년 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장기적이고 구조적이라는 판단하에 기업들에 대한 신용평가 방침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나이스 신평은 코로나19사태가 곧 정점을 찍고 올 하반기 경기회복이 시작되는 V자형 반등보다는 시간이 걸리는 U형 반등 시나리오의 발생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또한 신뢰할 만한 치료제가 6개월 안에 나오고 백신이 1년 안에 개발된다는 가정 아래서다.

장기 불황으로 진입하는 L형 경기전개에 대해서는 전망을 배제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하지 못하고 현저히 하향 안정화되는 L형은 심각한 경우 경제공황을 가정할 수 있다. 나이스신평은 "이런 상황은 국제 정치경제 질서의 지각변동을 수반하고 전개 양상을 예단할 수 없으므로 현단계에서 신용평가사의 분석범위를 초월"한다고 배제 이유를 설명했다.

나이스 신평은 'U'형 경기반등이 현실화 되더라도 산업별 전망은 달리 적용할 계획이다. 소비 회복과 생산 회복도 구분한다. 산업별 10~30% 수준의 생산 판매 위축을 가정하고 산업별로 각기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생산 공급망이 복구되 더라도 소비 회복의 지연으로 수급여건이 좋지 않은 산업이 있을 수 있는 반면, 소비심리는 급격히 회복되지만 공급망 회복이 더딜 경우 공급부족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소비 회복 측면과 아울러 생산공급망 복구의 속도와 강도도 중요한 평가 요인이다.

김명수 나이스신용평가 신용평가 총괄 부사장은 "생산공급망이 복구되더라도 소비회복이 지연돼 수급 여건이 빠르게 살아나지 않는 산업이 있을 수 있다"며 "반대로 소비 심리가 회복되더라도 공급망 회복이 더디면 공급 부족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 회복과 함께 생산 공급망 복구의 속도와 강도를 중요한 평가 요인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유동성 대응 능력 중요 = 기업들이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동성 대응 능력이다. 극심한 실적악화와 금융시장 경색이 발행할 경우 기업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량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간접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이스 신평은 각 기업의 회사채 차입금 만기 도래금액과 사업 부진에 따른 자금 소요를 면밀하게 파악할 예정이다. 지급보증과 약정상 차입금 조기 상환 부담 등 우발 채무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진행한다. 외화자산부채와 외화현금흐름은 별도로 분석할 방침이다. 과거 두 번의 외화유동성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회사별로 어떤 대응체제를 갖추고 있는지 가 중요한 평가 포인트가 될 것이다. 특히 금융업의 경우 외화자산 부채 현황과 아울러 해외금융상품 편입비율, 나아가 금융쇼크가 올 때 손실가능성이 높은 위험상품 투자규모도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보유현금이 많을 수록 유리한 것은 당연하고 6개월에서 1년의 중기 침체를 가정할 때 매각 혹은 담보 제공이 가능한 우량 자산의 보유여부가 중요하다"며 "단순히 신용도가 우수한 계열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보다 그룹 내 위치가 확고할 때 신용도 유지가 용이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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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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