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 세계 각국 정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재정이 거덜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은 그에 더해 자본유출로도 고통을 받고 있다. 달러현금이 절실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들 국가를 대상으로 대출을 개시했다. 그에 더해 IMF는 특별인출권(SDR) 한도를 늘려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최근 "SDR는 긴급 요구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다"라며 "SDR는 지분에 비례해 주어지기 때문에 정작 돈이 필요한 국가들은 많은 유동성을 받을 수 없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현재 약 2040억SDR이 전 세계 국가들의 재무부와 중앙은행 자산으로 할당돼 있다. 이론상 각 나라는 1SDR을 1.36달러로 교환할 수 있다. 가난한 국가의 정부에서는 투자자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채무를 갚기 위해, 의료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달러현금을 간절히 원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SDR 주입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과연 SDR 해법이 코로나19 위기를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SDR은 1969년 도입됐다. 전 세계의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많은 나라들이 자국 통화를 달러 가치에 연동했었다. 동시에 달러는 금 가치와 맞물렸었다. 이런 상관관계는 고정환율제인 브레턴우즈 체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요소가 상충관계에 있었다. 미국이 수입을 덜하게 되는 등으로 전 세계에 달러 유동성이 지나치게 적어지면, 각 나라는 달러 가치와의 연동비율을 지키기 위해 달러를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곤 했다. 그 결과 국제무역은 크게 후퇴했다. 반면 글로벌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달러를 너무 많이 발행할 경우 금과 달러 사이의 연동관계가 위태로워졌다. 달러를 대신할 비축 자산을 고안한다면, 이런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다. SDR의 탄생 배경이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생각이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41년 주창한 '방코르'(bancor)가 그랬다. 방코르와 마찬가지로 SDR의 목적은, 미국이 전 세계에 달러 유동성을 주입하면서 얻는 '화폐주조 차익'(seigniorage)을 전 세계가 두루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재정을 달러로 보강하기 위해, 각국 모두는 재화와 용역을 미국에 판매한 뒤 거기서 얻는 달러대금을 어떻게든 틀어쥐고 있어야 한다. 반면 SDR이 발행되면, 모든 나라는 대가를 지급할 필요 없이 달러와 언제든 교환가능한 비축 자산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SDR은 정착하는 데 실패했다. 1971년 미국이 달러와 금의 연동을 끊어낸 뒤 SDR 필요성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SDR 발행액수가 너무 적은 탓이기도 했다. 케인스는 국제무역이 증가하면 방코르 총량을 그에 맞춰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치적 논쟁이 거세 SDR 도입 이후 추가 발행 및 할당은 단 세 차례에 불과했다. 최근 사례는 2009년이었다. 금을 제외한 전 세계 외환보유액 가운데 SDR이 차지하는 비중은 3%도 안된다. 반면 달러는 절반을 넘는다.

하지만 유동성의 한 원천으로 SDR이 지닌 장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SDR은 실제 통화가 아니다. IMF 회원국들끼리 교환하는 것으로, 민간시장에서 거래되는 게 아니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UC버클리대 모리스 옵스펠드 교수는 SDR을 리스크 공유의 방법으로 파악한다. 각국은 IMF 재원 분담 비율과 의결권에 따라 SDR을 할당 받는다. 어떤 나라가 유동성 경색에 직면할 경우 부유한 나라에 SDR를 주고 달러 등 기축통화를 받을 수 있다. 교환하고자 하는 SDR에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현재 이율은 0.05%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긴급자금을 빼서 쓰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SDR은 코로나19와 싸우는 효과적인 무기일까. IMF는 최근 "여러 가난한 국가들이 SDR을 요청하고 있다며 이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SDR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은 "부유한 나라들은 자국 시민들에게 거의 무조건적으로 현금다발을 안기고 있다"며 "IMF가 고통에 신음하는 빈국을 대상으로 그같은 조치를 왜 취할 수 없는가"라며 반문하고 있다. 경제학계 일부에서도 SDR 규모를 4조달러로 늘려 필요한 국가들에게 할당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가장 주요하게는, 미국이 SDR의 추가 발행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 이유는 'IMF가 돈을 찍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IMF가 SDR을 추가 유통할 경우, 유통 달러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적대국인 이란, 다방면에서 경쟁중인 중국 등이 SDR 할당으로 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미국이 반대하면 IMF의 SDR 구상은 실현되지 못한다. 6480억달러 이상의 SDR 발행은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설령 그보다 적은 액수의 SDR을 발행하더라도 IMF는 회원국 의결권의 85%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미국 의결권은 16.5%다. 미국이 반대하면 IMF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일각에서는 'SDR 할당을 확보하는 것이 얻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정치적 자본만 탕진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SDR을 확대하면 2/3는 부유한 나라로 가거나 외환보유고가 넉넉한 나라로 간다는 것. 컨설팅기업 '이코노믹스 어드바이저리'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IMF는 1830억SDR(약 2500억달러)을 발행했다. 하지만 2009~2010년 중국과 유럽연합 소속 국가를 제외하고 신흥국에 할당된 건 19억SDR에 불과했다.

하지만 SDR이 자산에 계상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에 대한 SDR 할당 비율이 너무 적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IMF가 5000억달러를 발행할 경우 라이베리아나 남수단과 같은 빈국에게 돌아갈 몫은 이들 나라 GDP의 7~8%나 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지금은 글로벌 수요가 붕괴해 각국이 달러로 몰려드는 상황"이라며 "각국에 지급능력이 있는지, 진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지를 따질 때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신속한 도움이 절실하다. 그런 나라들이 SDR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는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미국이 달러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SDR에 대해 마뜩잖은 느낌을 갖는 건 이해할 만하다"며 "케인스는 영국 파운드화가 제1의 기축통화 지위를 잃은 뒤 방코르를 제안했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달러패권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져야 비로소 SDR의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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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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