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테크놀로지리뷰

실리콘밸리 자성 목소리 전해

전 세계 '혁신의 산실' 하면 미국 실리콘밸리가 첫 손에 꼽힌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실리콘밸리 혁신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고 MIT테크놀로지리뷰가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인의 가장 기초적인 요구에도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등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MIT테크놀로지리뷰는 27일 "사람들이 절실히 요구하는 개인 보호장구와 집중치료 장비 등 의료품과 물건을 만들지 못하는 무능력은 치명적인 사례"라며 "실리콘밸리와 빅테크는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데 절름발이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인 '구글플렉스'. 이 건물 정원이 코로나19 격리로 텅 비어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물론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은 '줌'을 만들어 사람들이 자가격리 상태에서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실리콘밸리가 만든 넷플릭스는 코로나19 위기에도 영화관에 견줄 만한 영상물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은 사회적 접촉을 멀리하는 요즘 사람들의 구원자로 등장했다. 아이패드는 수요가 치솟고 장보기 애플리케이션인 '인스타카트'는 자가격리중인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하지만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코로나19는 공공보건 위기를 맞아 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기업들의 한계와 무능력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이라는 말을 듣는 나라"라며 "빅테크는 그 어떤 것도 만들고 짓지 않는다. 백신이나 진단키트를 생산할 것 같지도 않다. 실리콘밸리는 하다 못해 의료용 면봉을 만드는 방법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또 기술산업계가 팬데믹에 대항해 싸우는 혁신의 발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적 웹브라우저의 초기모델인 '모자이크'의 공동발명가이자 '넷스케이프' 공동창업자, 현재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인 마크 안드레센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격한 절망감을 토로했다.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준비하고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행동의 실패, 특히 만들고 건설하는 것과 관련해 너무 무능력하다"며 "왜 우리는 백신과 치료제는 고사하고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도 제때 얻을 수 없는가" 하고 절규했다. 안드레센은 "미국은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갖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특히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과 공장, 시스템 등을 갖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만들지도 건설하지도 않는 것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실리콘밸리의 상징적 인물인 안드레센의 말은 지극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평했다.

기자이자 소설·극작가인 조지 패커는 최근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에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의 정치와 사회에 무엇이 붕괴하고 무엇이 썩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불만은 새로운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침체 때, 실리콘밸리 초기 거물로 인텔 명예회장이었던 고 앤디 그로브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미국이 제조업 위력을 상실했다"며 절규했다.

그는 혁신을 널리 보급하려는 야심찬 공학자들이 어떻게 실리콘밸리를 형성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며 "비루한 창고에서 창조의 신화적 순간이 나왔다. 기술은 시제품을 대량생산 제품으로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을 제조하는 낡고 지친 기업들을 도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혁신의 보급과 이를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은 공장을 건설해 수천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로브가 우려한 건 아이폰과 반도체 생산이 해외로 넘어가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점만은 아니었다. 그는 "혁신을 보급하고 확산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 결국 미국의 혁신 능력도 함께 파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코로나19는 미국의 곪은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더 이상 국민의 가장 기본적 욕구와 관련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내놓는 데 능숙하지 않다"며 "우리는 밝은 것, 주로 소프트웨어가 이끄는 편의적 제품을 고안하는 것엔 능숙하다. 하지만 보건의료를 재발명하는 것,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것, 식량생산과 분배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기술적 노하우를 통해 경제의 거대 부문을 해방시키는 기량은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의 생산성 향상 지표는 기대 이하였다. 실리콘밸리와 하이테크 산업의 호황기였을 때도, 미국의 생산성 향상은 둔화됐다. MIT 경제학자이자 '아이디어 보고서'의 저자인 존 반 리넨은 "지난 10년은 특히 실망스러웠다"며 "혁신은 미국처럼 선진국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성 둔화 원인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지만, 주요한 이유는 기업과 정부가 연구개발 투자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실패 중 하나는 진정으로 중요한 영역들, 즉 헬스케어와 기후변화 등에서 혁신능력이 감퇴했다는 사실"이라며 "코로나19 위기는 미국이 그같은 문제에 반드시 대처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경고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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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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