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관투자자그룹, 투자기업에 주문

코로나19 위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반면교사

해고 안한 독일이 신속한 위기 극복 전례도

수천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배당 등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글로벌 기관투자자그룹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고용유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해고의 남발과 인력구조조정으로 능력있는 종업원을 떠나 보낸 기업들이 결과적으로 경쟁력을 잃었던 경험도 기관투자자들의 인식전환에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전체 운용자산이 54조달러에 이르는 '국제기업 지배구조연대' (ICGN)는 지난 23일 투자대상 기업들에게 "배당이나 임원들의 보수를 늘리기보다 종업원의 해고를 피하고 거래처를 우선 배려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지난 8일에는 일본 노무라그룹과 다이이치생명그룹, 네덜란드 연기금인 PGGM 등 50여개 기관투자자그룹이 글로벌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의료기관의 공급망 유지에 협력하고 연구 데이터를 공유해 코로나19 치료제를 공동으로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연기금 및 기관투자가들이 당장의 이익을 보장하는 배당 확대보다 고용을 유지하고 코로나19 대처에 집중하라는 주문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일본의 유력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보다 사회적 과제에 부합하는 방향이 장기적으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주주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의 잘못된 선택이 교훈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시 위기에서 빨리 탈출한 독일의 사례가 거론된다. LG경제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독일이 보여준 실업률 관리에 주목했다. 실제로 독일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실업률이 급격히 상승했던 다른 나라에 비해서 고용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예컨대 글로벌 위기 직전인 2007년 2분기와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4분기를 비교할 때 △미국 4.5%→10.0% △스페인 8.0%→19.0% △영국 5.1%→7.8% △일본 3.8→5.2%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업률이 급증했다. 하지만 독일은 같은 기간 실업률이 오히려 8.5%에서 7.5%로 낮아졌다.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연대성과 산업별 노사간 신뢰에 기초해 고용을 중시하는 독일의 고용관계도 작용했다. 이처럼 해고없는 위기극복을 선택한 독일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이러한 주문은 최근 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용유지를 위한 정책드라이브에도 원군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 유럽 각국은 코로나19로 실업자가 폭증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차원에서 막대한 규모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3500억달러(429조원) 규모의 고용지원금이 조기에 바닥나면서 추가적인 기금의 조성에 나섰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실업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급여보장프로그램(PPP)'제도를 도입해 중소기업 근로자 인건비의 2.5개월치에 대해서 지원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입이 조업시간 단축을 한 기업에 정부가 종업원의 임금 감소분을 보전해주는 '시간단축수당'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은 기업의 실적악화로 10% 이상의 일자리가 영향을 받으면 12개월까지 단축조업의 실시가 가능하고, 이에 대해서는 근로자 임금의 60%를 지원해 준다. 프랑스는 도산 위험에 처한 기업에 대해 추가적으로 1인당 2000유로(266만원)을 지원한다.

일본도 고유유지지원금의 대상과 액수를 크게 늘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존에 고용보험을 6개월 이상 납부한 근로자만 대상으로 했던 것에서 보험료 납부와 무관하게 비정규직과 신입사원에 대해서도 적용한다고 보도했다. 보조금 규모도 중소기업은 급여의 2/3, 대기업은 1/2을 지원했던 것에서 중소기업은 9/10, 대기업은 3/4까지 늘려서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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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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