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 1만건 육박

원격의료 가능성 보여

지난 2월 선원경력 3년이 채 안 된 20대 청년 A씨가 선박에서 갓 이륙한 헬기에서 추락했다. A씨는 머리가 찢어지고(열상) 많은 피가 흘렀다. 혈압도 떨어졌다.

선박에서는 즉시 멀리 육지에 떨어져 있는 부산대학병원 해양의료연구센터로 전화를 했다. 부산대병원은 해양에서 일어나는 선원들의 응급상황이나 만성질환 등의 치료를 돕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전화로 선박과 연결된 담당의사는 선박에 비치된 의약품을 활용한 치료법을 조언했다. 수액요법을 통해 혈액을 보충하고, 지혈과 봉합법을 통해 혈압저하를 예방하도록 지도했다.

추락에 의한 내장손상이나 다른 문제들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활력징후를 점검하고 감염예방을 위한 적절한 항생제 투여도 안내했다.

A씨는 부산대병원 해양원격모니터링의 도움을 받아 응급처치를 하며 병원으로 이송, 건강한 상태로 회복하고 현재 선원생활을 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해양의료연구센터는 해양원격의료서비스를 개척, 선원들에 대한 복지수준을 높이고 있다. 사진 부산대병원 제공


코로나19로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정부는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가벼운 감기환자나 만성질환자 등에 대해 전화상담이나 처방 화상진료 등 비대면 진료를 활용하게 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정부가 추진할 한국판 뉴딜에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원격의료를 둘러싸고 그동안 우리 사회 내부에서 진행된 논란은 '코로나19'라는 비상한 현실 앞에서 부차적 문제로 바뀌었다.

해양에서 원격의료서비스는 코로나19보다 먼저 진행되고 있다. 태평양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원이나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상선의 선원들 건강을 살피고 생명을 구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게 해양수산부와 부산대학병원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선원위한 의료서비스 = 해양원격의료서비스는 2015년 해양수산부의 제안을 부산대병원이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의료기술과 보험제도를 갖고 있지만 먼 바다에서 일하는 선원들은 이런 혜택에서 소외돼 있었다. 섬마을이나 산간 오지보다 병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멀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배를 타고 생활하는 선원들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고, 응급상황이 발생할 위험에도 종종 노출됐다. 이는 선원업무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졌고, 선원 구하기가 힘들어 지게 되자 해기사협회 등 관련 기관은 선원감소를 막기 위한 직업만족도 조사와 대안마련에 나섰다.

선원들은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불만족의 원인으로 건강관리 어려움(68.8점), 사고와 질병위험(75.3) 등을 중요 문제로 꼽았고, 해수부는 선원복지개선을 위해 원격의료서비스를 구상했다.

서성현 부산대병원 해양의료연구센터 팀장은 "특히 원양선박 선원은 바다 위 선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장시간 근무하고 생활하면서 제한적 신체활동, 장시간 반복 노동, 식재료 한계로 인한 불균형한 영양섭취, 의료기관 접근 제한 등으로 육상근무자보다 질병위험이 매우 높다"며 "부산대병원은 해양도시 부산에 있어 선원복지를 위한 해수부의 해양의료서비스 제안을 적극 수용했다"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은 융합의료연구원 산하에 해양의료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해수부와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등과 함께 2015년부터 '해양원격의료서비스'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라온·이사부호도 원격의료 = 부산대병원은 지난해까지 80척의 원양선박과 원격의료서비스 협약을 맺고 선원건강을 살피고 있다.

상선이 68척으로 어선 10척보다 많다. 해양수산부 산하 극지연구소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소속 연구선 이사부호도 협약을 맺고 원력의료서비스 시스템을 갖췄다.

원격의료서비스는 부산대병원에서 구성한 의약품을 선박에 구비해 두고, 선원과 육지의 부산대병원이 전화나 영상 등으로 연결해 진행한다. 해양의료연구센터는 센터장, 팀장, 내과 외과 의사 각 1명, 간호사 5명, 연구원 4명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부산대병원에 근무하는 500여명 의료진도 모두 협업하고 있다.

서 팀장은 "센터는 먼 바다에서 일하는 선원들과 시차를 고려해 24시간 운영하는데, 밤에는 부산대병원 응급실에서 센터를 살핀다"고 말했다.

부산대병원은 지난해까지 원격의료서비스 참여선박 뿐만 아니라 비참여선박 수백여척도 포함해 9700건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최근엔 고열 오한 기침 가래 인후통 등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는 선원에 대해 해양원격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담당 의사는 입항까지 한 달 걸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고, 선박에 있는 약품을 먹고 즉각 격리조치와 선박소독을 안내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모니터링했고, 한국 입항 후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

한국의 해양원격의료서비스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섬나라를 포함 국제사회에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원양에서 해양원격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정보통신기술(ICT)과 의료기술 복지정책 등이 결합돼야 해 부산대병원의 경험은 선원복지 향상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을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장보고 후예를 찾아서" 연재기사]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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