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 스페셜리포트 V

"해소돼야 할 의문 많지만 가능성 높아"

홍콩 번화가 코즈웨이베이는 다시 일상을 재개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여전히 폐쇄와 격리 상태에 있는데도, 홍콩의 중심 상업지구는 조기 폐쇄를 극복하고 다시 고동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정상화는 아니다. 중국 대륙의 거대한 영향력을 상징하는 중국공상은행 홍콩지점엔 여전히 바리케이드가 쳐 있다. 이곳 임원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다시 은행을 겨냥할 것을 우려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이 글로벌 야심을 추구하는 과정에 계속 갈등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며 "중국 정치체제는 특정 목표를 추구하면서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기에 문제점들을 빠르게 진압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문제를 곪아터지게도 한다"고 지적했다.


신뢰는 금융시스템 통합의 기반이다. 신뢰를 받으려면 경제주체들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확신을 줘야 한다. 하지만 중국 밖에 있는 경제주체들은 가공스런 중국의 경제성장에 경외감을 가지면서도 안팎의 모든 이에게 공익적일 수 있을지 여전한 의심을 갖고 있다. 영국 자산운용사 애쉬모어그룹의 얀 덴은 "외부 사람들은 중국을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죽음의 별'(death star)과 같다고 생각한다"며 "죽음의 별은 그 어떤 행성도 다 부숴버리는 파괴의 별로, 거대하지만 불가해한 존재"라고 말했다. 외부의 경제주체들은 의도된 은폐로 바이러스를 전 세계로 탈출하게 만든 중국 체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부분적 분열은 막기 힘들 전망이다. 경제와 금융을 무기로 사용하는 건 비용이 저렴하다. 군사적 행동과 달리 타국의 허락이 특별히 필요치도 않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도 계속 달러패권을 기반으로 한 경제·금융 무기를 고집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무기를 오래 휘두를수록 달러시스템을 우회하려는 방법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달러시스템 우회로들은 너무 중구난방이었다. 별다른 무게감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규모가 곧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제 전 세계에 달러체제의 대안이 될 만한 시장과 규범을 만들 힘을 갖게 됐다. 특히 중국은 신흥국에 자국의 매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신흥국은 서구중심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덜하다. 따라서 중국이 그 자리를 파고들기가 쉽다.

중국 회의론자들은 경상수지 흑자와 엄격한 자본통제를 가진 국가가 전 세계에 기축통화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하지만 중국 흑자는 2007년을 정점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제 중국도 적자가 일상화 할 전망이다. 인구 노령화 추세로 저축도 줄어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보다 많은 내수소비를 원한다. 따라서 수입을 늘려야 한다. 게다가 서구 경제권의 성장 정체는 중국의 수출 둔화를 의미한다. 모간스탠리는 중국이 수출과 수입의 간극을 메우려면 지금부터 2030년까지 매년 2100억달러의 외국자금이 순유입돼야 한다고 추산한다.

결국 중국은 금융시장을 더 자유화해야 한다. 물론 중국이 전면적인 탈규제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유동성을 늘릴 조치들, 예를 들어 보다 나은 금융인프라 건설, 더 공정한 가격 산정 채택 등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자본 통제는 이미 완화되고 있다. 중국 내 저축자들은 여전히 상당한 통제를 받지만, 외국 투자자들의 경우 시장이 급락할 때도 자기 돈을 빼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제한적 통제에서 비롯되는 안정성을 통화의 중요 가치로 본다. 따라서 위안화의 팬들을 확보하는 데 완전한 태환성이 꼭 필수적인 건 아니다. 시간이 흘러 충분한 국제 유동자금을 안전하게 끌어당길 수 있다고 판단하면, 중국 정부는 완전한 태환성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금융시스템의 다각화에는 많은 혜택이 있다. 현재처럼 단일 기축통화에 의존할 경우 전 세계는 위기 때마다 유동성 고갈에 시달린다. 보다 효율적인 국가간 지급결제 방법들이 등장하면 그같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다원화된 기축통화는 전반적인 금융인프라를 보다 회복탄력적으로 만든다.

비동조화냐 탈세계화냐

중국이 다원화된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연결할 것인지를 알아볼 고무적인 실마리가 있다. 2005년 중국은 세계 16위 채권국이었지만, 지금은 3위다. 2016년까지 인민은행 외환보유고에 쌓아둔 돈과 자산이 중국의 최대 해외투자 유형이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 민간영역의 해외투자 자산이 4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인민은행의 외환보유고를 능가한다. 이는 중국의 자본이 보다 생산적으로 활용된다는 의미다. 중국이 금융산업을 개방하면 내국인의 저축이 보다 효율적인 곳에 할당될 것이다. 중국 금융시장의 성장은 국제 투자자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미국에서 과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중 양국 금융 디커플링(비동조화)이 완전한 탈세계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양국 금융의 비동조화로 3가지 위험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는 10년 전 시작된 금융시장의 분열을 가속화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새로운 규제를 시행하면서 금융위기에 대응했다. 금융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때로 규제당국들은 글로벌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북돋우기보다 자국 내 통제를 강화하려는 데 주안점을 뒀다.

보다 분절된 시장은 위기의 시대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같은 시장은 금융기관들의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방해한다. 그러면 리스크는 집중된다. 영국 은행 스탠더드차터드의 호세 비냘스는 "분절된 시장은 과도한 저축을 가둬 자본이 부족한 곳에 효율적으로 투자되는 것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지정학적 갈등은 그같은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도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시장의 분절화로 인한 비용은 만만치 않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 분열로 전 세계 GDP가 1% 정도 낮아졌다. 중국과 인도 등 여러 나라 정부는 기업들에게 자국내로 데이터센터를 이전하라고 강제하고 있다. 이는 금융 디지털화가 가져올 미래의 이익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을 더욱 분열시킨다.

그같은 현지화 규정은 리스크 관리 목적을 위한 데이터 공유도 막는다. 여기서 두 번째 위험이 생긴다. 분절된 시스템 하에서 은행과 핀테크 기업들 간의 다양한 연계는 사이버 사기꾼들에게는 더 많은 출입구를 제공하게 된다. 시스템 붕괴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

세 번째이자 가장 큰 위험은 선의를 가진 리더 없이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기구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각종 위기에도 불구하고, 달러시스템은 수십년 동안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미국은 때로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보다 시스템의 지배자로서 지대추구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8월 미 의회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여러 의원들이 초당적 법안을 발의했다. 연준이 해외 유입 자본에 세금을 물려 달러가치를 낮추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미국이 금융패권국이 되면서 얻는 트레이드오프 측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면 중국은 금융 리더를 기꺼이 맡겠다고, 맡을 준비가 됐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미국의 공격에 다국적 협력으로 대응한다. 거대한 자산을 가진 중국 은행들은 유럽의 경쟁은행들을 통째로 사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하다. 중국은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외부의 진입자는 중국 내 성문화되지 않은 규정으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만약 기업이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담보물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또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가가 사유재산을 강제로 가져가는 것을 막아줄 자유언론과 사법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같은 의심 때문에 많은 시장 참가자들은 중국이 달러시스템에 병행하는 위성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래서 기존의 악마(미국)와 계속 손을 잡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미국은 현재 시스템을 더욱 더 자국이익에 봉사하도록 왜곡할 수 있다.

다른 길이 있다. 중국은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외부의 금융 공동체에게 확신을 주는 방법이다. 중국은 자국을 믿기로 한 나라들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비록 그 권리들이 중국 이해관계에 반한다고 해도 그래야 한다.이코노미스트지는 "수많은 영역에서 미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줄어들 것이다.

중력의 법칙은 전 세계 유일한 중앙은행인 미국의 능력이 조만간 퇴조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이 그 공백을 상당 부분 메울 것"이라며 "결국 미중 양국이 각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완전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평화롭게 공존하고 협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스페셜리포트" 연재기사]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